본인의 감정과 다른 '표정'을 짓고 다른 '말'을 건네야 하는 사람들. 감정노동자들이다. 이젠 뭐, 식상한 단어가 돼 버렸다. 이렇다 할 합의도 없이 내내 입밖에 쏟아내며 시간만 보냈을 뿐인데, 한물간 꼴이라니.
와중에 신선한 언급이 있어 궁금한 점을 펼쳐본다.
"대부분의 감정노동자들은 고객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밝은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채권 추심원은 험한 인상을 지으면서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장의사는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며 슬퍼하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문제가 되는 감정노동은 늘 미소를 짓고 상냥함을 드러내야 하는 분야들에서 주로 수행된다." (<모멸감> 김찬호, 문학과지성사)
궁금하다. 수적인 문제일까? 단순히 웃어야 하는 서비스직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드러나는 문제도 더 많은 걸까? 아니면 난이도의 문제? 배우들은 말한다. 울고 화내는 연기보다 웃는 연기가 더 어렵다고. 이런 맥락에서 장의사의 슬픈 척하기와 채권 추심원의 위협적인 척하기는 백화점 판매직원의 상냥한 척하기보다 비교적 쉽다? 그래서 문제도 적다? 글쎄, 개운치 않다.
돈의 흐름을 따져 보자. 고객은 돈을 지불하는 갑, 판매직원은 돈을 받는 을. 유족과 빚쟁이도 돈을 지불하는 쪽. 장의사와 채주는 돈을 받는 쪽이다. 판매직원, 장의사, 채주 모두 돈을 받는 을 쪽이지만 판매직원만 을 중의 을이다. 도로 제자리.
서비스 제공되는 과정을 보자. 장의사 덕분에 떠올릴 수 있었다. 신부, 목사, 승려. 돈이 오가는 것만 보자면 이들은 신도들로부터 돈을 받는 쪽이지만, 아무래도 신도들과의 관계에서 을이라 하기엔 애매하다. 의식을 주도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지불하는 쪽보다 해당 종교에 있어서 대체로 더 많은 정보 혹은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장하자면, 돈을 지불하는 쪽이 우러러보기 때문이다.
판매직 중에서도 고도의 기술정보를 제공하는 전문 판매원은 갑질 피해자로 흔치 않다(응급실에서 의사를 위협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매장 계산원, 편의점 알바생들이 갑질 횡포의 주 타깃이 된다(이들의 전문성을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달인은 곳곳에 숨어 있다). 결론은, 판매직이나 서비스직이 관건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비전문적인 상대, 의사 같은 전문직이어도 마땅히 본인에게 친절하게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대일 때 몹쓸짓이 튀어나온다는 것.
판단은 제멋대로, 표출은 비겁하게. 흔한 뉴스가 돼버린 갑질의 실체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감사하다는 말이 더 자주 오가는 문화가, 나는 좋다. 그래서. 갑질을 일삼는 이들이 '미안했어요' 사과하는 일은 희망을 가득 가득 담아 상상해 볼 만하다. 반면에 '고마웠어요', '감사해요' 인사하는 모습은 갑질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더 고차원적(?)이어서가 아닐까. 사적인 관계, 일대일 관계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부지런히 감사할 거리 찾기에 나서기를 권하는 이유다. 다 떠나서, 누군가에게 미안해 죽겠을 때보다 고마워 죽겠을 때 기분이 더 죽인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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