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안다'는 말이 왜 이리 싫을까. 그 말에 왜 그리 흥분할까. 자기가 '모른다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진리쯤 되지 않나. 이 정도는 배우고, 새기고, 행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어제도 부아가 뒤집혔다. 누군가의 '그분은 다 아시더라'는 한 마디에.
누군가는 회사 동료, 그분은 상사다. 상사인 그분께서 예상 외로 개인의 업무 능력에 따른 작업 상황과 직원들 간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따라서 어제 그분이 내린 인사에 관한 결정은 일견 타당하는 취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내 생각은 모르지 않냐. 말 없는 이, 소리 내지 않는 이, 문제 제기하지 않는 이의 시선은 모르지 않냐는 말을 하려다, 특정인을 지목하긴 뭣하다는 생각에 '나'를 끼워 넣어 생뚱맞은 말로 삐져나온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말을 무슨 수로 주워담나. 술 취해 저지른 실수마냥 시달리겠지. 2~3일 각이다. 자업자득.
어떤 감정이 날 덮치려 할 때 거기서 빠져 나와 제3자가 되어 감정을 바라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조언에 따르면 성급하고 과도한 반응으로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겠다만, 이런 조언은 불행히도, 정작 감정에 사로잡힌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사후에나마 그랬다면 좋았을걸, 쩝쩝댈 뿐이다.
마땅히 배우고 새기고 행해야 하지 않냐고 적고 보니, 이제서야 문제가 보인다. 나의 오만.
마땅하다 해도, 진리라 쳐도, 아닌 경우는 있을 수 있다. 누군가가 생각하는 마땅한 언행을, 마음가짐을, 나라고 다 지녔을까. 꿈도 야무지지. 그토록 다양성과 다름을 주장하면서도, 나는 아직 진리만 외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진리만.
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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