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그리고 대다수가 무심코 지나치는 말에 유독 귀를 떼지 못하는 때가 있다. 며칠 전 동료가 뱉은 '말 안 해요'란 말이 그랬다. 나는 업무상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고, 내 실수로 이후 작업에 혼란이 생기진 않을까 싶어 동료 C에게 괜찮을지 전화로 물었다. 그는 큰 문제는 없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덧붙였다. 상사에게 나의 실수를 언급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면 그들은 모를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라고. 취지를 곡해할 의도는 없다. 취향을 이야기할 참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은혜는 입고 싶지 않다. 베풀기도 내 취향은 아니다. 정보를 사이에 둔 은혜 주고받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녹을 먹고 있는 이 회사에는 20명 내외의 직원이 있다. P의 친구 세 명, S의 친구 4명, K의 지인 세 명. 이런 식으로 20명이다. 사촌도 있고 고교 동창도 있고 동네 친구도 있다. 이 업계가 '다 그렇다'고 한다. 역시나 거슬리는 이야기, 다른 데도 다 그래, 남들도 다 그래. 치 떨리는 이야기가 치 떨리는 이야기를 낳는다. 이 지역, 이 업계의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여서, 지인의 지인의 지인들끼리여서 '말'이 중요하다. 전해 들은 이야기를 측근에게 전하고 정보는 소문으로 굴러다닌다. 개인사부터 업무상 실수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참고로 업계의 90%는 남성이다. 정확하게는 95% 이상. 뒷이야기를 좋아하기로 유명한 여성 집단이 아니다!
너의 비밀을 나만 알고 있을 거야, 너의 실수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거야 특히 상사에게는. 이런 발언에 고마움을 느낀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결코 고마운 일이 아니다. 당신의 약점을 '쥐고' 있겠다는 뜻이니까. 은연중에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약점은 '빌미'가 된다. 한동안은 잊을지도, 잊었다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빌미로 드러날 사건이 터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없던 일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의 마음 한 켠에 그가 베푼 은혜가 남아 있을 것이고, 값을 치르기 위해 사소하나마 갑질을 시작할 수 있다.
빚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공동체에 해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동의한다. 서로 일정 부분 빚지고, 곧바로가 아닌 추후에 갚는 문화, 돌아돌아 갚게 되는 문화가 분명 바람직하다. 그러자면, 나의 실수를 C만 알고 있는 것으로 빚지는 걸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만 알고 있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너의 비밀을 알고 있지만 다른 이에게 발설하진 않겠어, 그러니 고마워해야 할 거야, 라는 식의 말로 빚졌음을 선언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 선언이 한 켠에 '남겨두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말이 없어도, 아니 말이 없어야 빚진 마음, 갚고 싶은 마음, 기다려주는 훈훈함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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