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27쪽
정액제 스트리밍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가 어떤 곡을 한 번 들으면 그 곡의 작곡가, 작사가, 편곡자, 가수, 연주자는 1.12원을 나눠 갖는다는 사실을 그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됐다. 그것도 그 소비자가 할인 없이 정가로 상품을 결제했을 경우에. 

48쪽
더구나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보다 일관성을 중시하게 된다. 말은 상황에 좌우된다. ...... 나는 성실히 읽고 쓰는 사람은 이중 잣대를 버리면서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반성하는 인간, 공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는 약간 무겁고, 얼마간 쌀쌀맞은, 진지한 인간이 될 것이다. ...... 현대사회는 진지한 인간들을 싫어한다. ...... 그런 이들은 '왜' 같은 질문에 긴 답을 품은 사람들을 떨떠름히 여기고, 진지충이라고 놀린다. ...... 진지한 인간들을 공격하는 가장 쉽고도 파괴적인 방법은 그들의 핵심인 일관성을 역이용하는 거다. ...... 개고기 먹지 말자면서 삼겹살은 왜 드세요? "그냥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곤란해하지 않을 이런 질문에 진지충들은 발목이 걸려 넘어진다. 

54쪽
예의는 맥락에 좌우된다. 윤리는 보편성과 일관성을 지향한다. ......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136쪽
그런 상황에서 나는 진행자의 예의가 정직한 서평이라는 윤리에 앞선다고 판단한다. 못생긴 아기를 데리고 있는 어머니에게 "아기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는 예의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의무에 앞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83쪽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말은 얼핏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순진하고 낭만적인, 그리고 불가능한 환상이다. ...... 중요한 것은 어느 공동체가 개인을 배제하느냐가 아니다. 그 배제에 원칙이 있는지, 그 원칙이 우리가 믿는 보편 윤리와 인권 의식에 부합하는지다. 

99쪽
가만히 놔두면 우리는 자꾸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든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 ...... '뒷담화 본능이 언어를 만들었다'고 할 때의 언어는 말하고 듣기의 언어다. 읽고 쓰기의 언어는 말하고 듣기의 언어보다 훨씬 나중에 출현했다. 읽고 쓰기의 언어는 적어도 말하고 듣기의 언어보다는 뒷담화에서 자유로운 것 같다. ...... 책은 우리의 대화가 뒷담화로 번지지 않게 하는 무게중심이 되어준다. 

124쪽
다른 사람의 진심이나 역량을 단숨에 간파하는 능력보다는, 표정이나 목소리로 상대를 판단하려 들지 않는 신중함과 겸손함을 얻고 싶다. 

137쪽
오늘날에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읽고 - 쓰기와 말하고 - 듣기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오가는 대화는 글자로 이뤄져 있고 당사자 간의 물리적 거리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대화는 말하고 - 듣기에 가깝다. 우리는 그 대화에 감성적으로 참여하고, 부지불식간에 상대에게 윤리보다 예의를 요구하게 된다. 그건 그것대로 큰 문제다. 상대가 펼치는 주장의 옳고 그름보다 무례함의 여부가 더 중요한 그런 공간에서 공적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156쪽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읽고 쓰는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일관성을 더 추구하며, 그래서 보다 공적이고 반성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이웃을 경멸하는 오만하고 재수 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내가 그렇다). 

192쪽
에세이를 쓰면 치유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내게 에세이 작업의 매력은 거기까지다. 세계에 맞선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세상과 함께 흘러간다는 느낌이다. 긴 장편소설이나 논픽션을 쓸 때 비로소 세계와 싸운다는 기분이 든다. 

200쪽
의미를 묻고 따지는 것은 나의 고약한 버릇이고, 읽고 쓰는 세계 거주자들의 운명인 것 같다. 그것은 힘이고 은총이며 고통이자 저주다. ...... 중력을 버티기 위해 골조를 세우는 것처럼 시간을 버티고 싶어 의미를 구하는 것 아닐까. ...... 말하고 듣는 사람들이 읽고 쓰는 사람들보다 현재를 더 많이 사는 것 같다. 읽고 쓰는 부류만이 수십 년, 수백 년 뒤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게 된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읽고 쓰는 이들은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걸까? 대신에 우리는 외로움을 덜 탄다고 할 수 있을까? 

215쪽
편당 결제 시스템 덕분에 작가들의 수입이 엄청나게 올라갔지만 동시에 창작자들이 독자의 반응에 종속되는 현상도 널리 퍼졌다. 남성향이고 여성향이고 주 소비자층의 감상 수준이 그리 성숙해 뵈진 않는다. 독자들의 악플이나 인터넷 조리돌림 때문에 정신과를 찾는 작가도 있다. 

261쪽
두 소설에서 오웰의 관심은 명백하게 '누가'보다 '어떻게'를 향한다. 저널리스트였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 지식인들이 진영 논리('누가'의 문제)에 빠져 소련의 실체를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눈 감았을 때 오웰은 그러지 않았다. '누가'를 따진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파시즘과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 체제라고 믿었다. '어떻게'를 살핀 오웰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공통점을 봤다. 

266쪽
그 목록에 대해 '이 작품이 여기 왜 있는 거야' 하고 의문을 품고 때로 분개하는 것이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책] 책, 이게 뭐라고 -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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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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