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세상이다. 결과가, 현상이, 제목이 시선을 끈다. 원인, 배경, 내용을 들여다볼 틈이 없다. 의미를 따져볼 시간 따위, 언감생심이다. 바빠도, 곧죽어도 배경을 뜯어보아야 후련한 이가 있으니, 가십을 나누며 두루뭉술한 사회생활을 하기에 영 삐그덕거리는, 나다.
가사분담. 서로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집안일을 나누어 맡으면 그것으로 족할까? 한 가지가 더 충족되어야 한다. 다음에 관한 합의가 필요하다. 가사는 전적으로 아내(남편)의 책임이며 남편은(아내는) 도울 뿐이라는 생각, 혹은 당연히 함께 하는 것이므로 한쪽의 책임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 어느 쪽이 되었든 둘 중 하나로의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필히.
전자에 합의했다면 한 단계를 추가로 거쳐야 한다. 한쪽이 다른 쪽을 돕는 차원에서 가사를 분담한다면 돕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간상 한계 때문인지, 물리적으로 힘이 달려서인지, 아빠의 육아 휴직 등 현실적인 추세에 발맞추기 위함인지, 넘치는 사랑의 표현 방법 중 하나로써인지.
돕는 이유에 대한 합의까지 마쳤다면, 수월할 것이다. 어떤 일을 무슨 요일에 누가 담당할지 나누는 것이. 그리고 가사분담과 관련한 갈등이 불거졌을 때 문제를 짚어 내고 풀어 내는 것이. 사실 (가사분담 관련해서라면) 아예 문제가 안 생길 가능성이 크다.
내가 우리 부부의 분담에 만족하는 이유는 배경에 대한 합의 때문이다. 남편이 요리를, 화장실 청소를, (맙소사, 이것밖에 없나) 맡고 있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집안일이란 공동의 책임이라는 합의가 공고하다. 일반적인 성역할을 거부하고, 동성커플 못지 않게 서로를 동등히 여긴다. 이러한 바탕에서 각자가 잘하는 것, 각자가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또는 상대가 어려워하거나 꺼리는 것을 기준으로 분담한다. 그 결과, 가사분담 관련 갈등은 생길 일이 없다.
문제는 이유다. 분담하는 이유, 돕는 것이라면 돕는 이유 말이다. 갈등 상황에서 삐져나오는 이야기에 귀기울여보면 이유에 대한 합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24시간이 모자라다,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이 뛰어다니는 거 안 보이냐, 어깨가 빠질 것 같다, 다들 이 정도는 남편이 해준다더라, 사랑이 식은 것 아니냐 등등. 누가 무슨 일을 맡을지에 앞서, 기본적인 합의 단계로 되돌아가 같은 일로 맘 상하는 일의 뿌리를 뽑아버릴 것을 권한다.
그는 오늘도 나의 '김밥 식욕 폭발 주사'를 못 견디고 야밤에 김밥을 말았다.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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