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적 - 정지아

26쪽
무언가를 죽도록 하고 싶다는 말은 그외의 다른 것을 죽도록 하기 싫다는 말이기도 하다.

27쪽
이룰 수 없는 꿈인 것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자는 성실하다.

 

32쪽
소설집이 나오면 두어달 뒤, 현남에게서 전화가 온다.
또 썼더라.
뭐지 이건? 욕인가 싶어 가만히 있으면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다.
뭘 그렇게 써대.
역시 욕이다. 문제는 그런 욕을 먹고 내가 반성을 한다는 거다. 자폐가족에게 물든 게 분명하다. 반성의 수준에서 가만있으면 더 센 펀치가 날아온다.
정 쓰고 싶으면 혼자 써. 쓰고 버려.
별것도 아닌 걸로 자원 낭비하고 세상에 민폐 끼치지 말라는 거다. ...... 그러면 될 걸 나는 왜 꼭 어딘가 발표해서 누구에게 읽히려고 하는 거지?

36쪽
이들은 생활의 편리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할 줄 아는 자잘한 기술에 감탄한다. 그러나 자폐가족은 감탄할 뿐 굳이 배우려 하지는 않는다. ...... 그래서 이들의 감탄에는, 뭐 이런 쓸모없는 재주를, 그런 의미가 숨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37쪽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의 부재는 익숙한 것에 대한 애착과 닿아 있다.

39쪽
좋기는 하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이전의 것에 대한 애착을 포기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다. 배가 고프지만 먹고 싶지는 않다. 좋지만 갖고 싶지는 않다. 이게 자폐가족의 생활패턴이다. 그러니 노동자의 월급으로도 불편하지 않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 중요한 것은 경제적 수준이 아니라 자폐가족의 자족적 상태다. 

 

58쪽
뽑아봐야 어차피 금세 또 날 거, 그녀는 잠초 뽑기를 쉽게 포기했다. 더 많이 심고 더 적게 거두면 되지 뭐. 그녀의 판단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무섭게 자라는 잡초 틈에서도 작물들은 죽지 않고 자라 그녀가 미처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내놓았다. 그녀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자신의 농법(고작 열평 농사도 농사라 칠 수 있다면)을 투기농법이라 불렀다. 살아남은 자, 먹어주리라,라는 투기농법으로 키운 작물은 거친 잡초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살아남은 덕인지 정성 들여 키운 어느 집 작물보다 향이 짙고 맛도 강했으며 식감도 질겼다. 
* 투기(投企) :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 하이데거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의 기본 개념이다. - 네이버 국어사전

65쪽
일주일에 한번만 오셔서 청소하고 밑반찬 좀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넉넉하게 드릴게요,는 꿀꺽 삼켰다. 그건 돈으로 사람을 사본 적 없는 하층계급의, 계급끼리의 예의인 것 같아서였다.

84쪽
목숨을 걸었던 산에서는 나오지 않던 눈물이 살아 내려온 세상에서는 멈추지 않았다.

151쪽
사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손발 오그라드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었다. 스텔라가 만드는 작은 세상이라니. 그 작은 세상은 퀴퀴한 옷장 안에 쳐박혀 있는데. 그런 사진들이 돌고 돌아 뜨개질을 힙하게 만든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울어야 하는 것일까?

242쪽
취향이란 그런 것이다. 취향은 돈이 결정하지 않는다. ...... 취향이 곧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그게 그였다. 토고 소파가 잠을 불렀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 집의 공간을 채운 것들이 곧 그였다.

256쪽
그거 한벵 더 묵는다고 살 놈이 죽겄냐, 죽을 놈이 살겄냐?
너그러워 그런 건지 독해 그런 건지, 나는 어머니 마음이 헤어려지지 않았다.

261쪽
술이 술술 들어가면 잊고자픈 것이 술술 날아가붕게라. 술은 고 맛이지라.

273쪽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원하지도 않은 결승점에 도달한 기분이랄까.

276쪽
어느 땐가 번개를 맞은 팽나무는 반으로 쪼개진 상태였다. 그러고도 반은 여직 살아 예전만은 못하지만 사람 몇은 충분히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정지아 자본주의의적 수록작품 발표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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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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