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반경 - 장대익


20쪽
이에 따르면 공감은 적어도 정서적 공감, 인지적 공감 두 유형으로 나뉜다. 정서적 공감이란 쉽게 말해 감정이입니다. 즉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고 쉽고 자동적이다.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관점(입장, 생각)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역지사지가 알맞은 표현이다. 한데 정서적 공감과 달리 자동적이지 않아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8쪽
인간 세계에는 잔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평화는 대개 그 수많은 전쟁의 막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도 공감과 매우 흥미로운 관계를 지닌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내집단인 '우리'에 대해서만 강한 정서적 공감이 일어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쟁은 공감 부족 때문이 아니라 외집단보다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발생하는 비극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감정이입이 공감의 반경에 구심력으로 작용해 더 넓어져야 할 공감의 힘을 좁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4쪽
이 감정이입은 강도는 세지만 지속력이 짧고 반경도 작다. 나는 이런 성향을 '부족 본능tribal instinct'이라 부르고자 한다. 비교적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에게는 자기 사람들을 더 챙기는 부족 본능이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도 여전한 힘을 발휘하는 부족 본능은 갖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43쪽
더 정확히 말해 옥시토신은 내집단 편애를 강하게 유발했고 외집단 폄훼는 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의미하게 유발했다. 이는 공감 호르몬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사랑 호르몬은 누군가에겐 차별 호르몬인 양면성을 갖고 있다. 심지어 옥시토신이 내집단을 위한 부정 행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하면 옥시토신은 집단 사이에 깊은 갈등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는 편협한 공감 호르몬이다.

54쪽
실험 결과는 공감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가해자에 대해 더 가혹한 처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비인간화 역시 내집단에 너무 깊이 공감한 나머지 상대방을 이해할 여유가 없거나 그러고 싶지 않아 손쉽게 딱지를 붙여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공감의 깊이와 넓이는 상충한다. ...... 한쪽에 과잉 공감하는 순간 다른 쪽에는 폭력이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58쪽
인류 진화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수렵 채집기의 우리 조상들은 상한 음식, 썩은 냄새, 피부 발진 등에 혐오(역겨움) 반응을 일으키는 식으로 그 위협에서 벗어났다. ...... 실제로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일수록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진화심리학 연구도 있다.

64쪽
반향실 효과echo chamber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만 소통을 함으로써 획일적 견해로 수렴하는 현상이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정보만을 필터링해주는 소셜미디어로 인해 정보 편향이 증폭되는 현상을 말한다. ...... 나는 혐오나 경멸과 같은 부정적 정서가 집단으로 빠르게 전염되는 현상을 '이모데믹emodemic, emotion+epidemic'이라 부르고자 한다.

72쪽
우리 인간은 물리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사회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종이다.

76쪽
저명한 의학사학자 프랭크 스노든이 <감염병과 사회>라는 책에서 서술했듯이 모든 팬데믹에는 희생양 찾기와 혐오, 새로운 세계관이 공통적으로 뒤따라왔다.

85쪽
노렌자얀의 이 '심판자 가설'은 심판자로서의 신 관념이 작은 규모로 갇혀 있던 인류를 대규모의 사회로 격상시키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는 입장이다. ...... 그렇다면 종교는 원래 공감의 구심력으로 작용했지만 어느 순간 강력한 원심력이 되었다는 얘기다. ......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96쪽
그런데 문제는 이 추천 시스템들은 사실상 사용자의 과거 행동과 성향을 '넘어서는' 추천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기반한 추천이 아니라 과거에 '갇힌' 추천인 셈이다. 선택하면 할수록 내 과거와 내 성향에만 맞는 추천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101쪽
이처럼 다른 이들이 우긴다고 줏대 없이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것을 사회심리학자들은 '동조conformity'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어떤 특정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실체적이거나 가상적 압력을 받아서 자기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을 바꾸는 것'이다.

102쪽
에고 네트워크ego-network란 자기의 절친한 친구, 이른바 '절친' 다섯 명까지의 이름을 적게 한 후에 그들 간의 관계를 표시한 네트워크다. ...... 가설은 밀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더 정확한 예측을 한다는 것이다.

106쪽
동조 심리가 진화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집단에서 배척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규범적 영향). ...... 또 다른 이유는 다수의 의견이 자신의 견해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정보적 영향). ...... 이렇게 동조의 관점으로 보면 기존 추천 알고리듬의 추천을 승낙하는 순간에 사용자에게는 자신의 과거와의 동조(CBF) 또는 자신과 성향이 유사한 타인과의 동조(CF)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동조 본능은 타자가 알고리듬인지 사람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108쪽
즉 단 한 사람이라도 이견을 내는 이가 있으면 집단의 압력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결과다. ...... 집단 내에서 새로운 생각이 싹트게 하려면 주류와는 다른 어떤 의견이라도 투입하면 된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116쪽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제시 그레이엄은 모든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도덕의 토대로서 다섯 가지 기준, 즉 '도덕 기반moral foundation'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기반들은 '피해harm' '공정성fairness' '내집단ingroup' '권위authority' '순수성purity'이다. ...... 도덕 기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면 누구나 이 다섯 가지 기준을 갖고 있지만 어디에 가중치를 주는지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달라진다.

119쪽
문제는 도덕적 역겨움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해한다고 해서 역겨움이 자동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겨움은 시스템1의 작동이기 때문에 시스템2의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겨우 완화될 수 있다.

122쪽
우는 아이를 상상해보자. 우선 그/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배고픔, 목마름, 아픔 같은 상태에 있다는 정보를 자신을 돌보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정보 전달 기능) 둘째로 단순히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돌보는 이가 자신의 불만 상태를 해소해주도록 조작(조작 기능)한다.

트롤리의 딜레마(공감의 반경 - 장대익, 130쪽)


180쪽
수렵 채집기와 농경 시기를 거치며 진화한 우리의 뇌에는 '움직이는 모든 건 의도를 가지고 있음'이라는 명제가 박혀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움직이는 것 중 쇠로 만들어진 것은 동물이 아니고 기계임'이라는 명령은 우리의 오래된 뇌 속에 없다. 인류의 기계 문명은 아주 최근에야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뇌는 착각을 한다. 동물에게 의인화를 하듯이 기계에게도 의인화를 하는 것이다. ...... 지금은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기계가 우리의 공감 대상 목록에 오르는 순간이라 할 만하다. 수만 년 전에 개와 고양이가 길들여지면서 우리의 공감의 대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210쪽
사회적 갈등과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공감은 감정이입이 아니라 역지사지다. ....... 과연 어떤 문화적 토양이 인간의 인지적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까?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다양성이 높은 사회다.

214쪽
문화적 엄격함의 차이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생태적 위협에 빈번하게 노출되었던 집단일수록 사회적 규범에 대한 민감도가 높다. 여기서 생태적 위협에는 전쟁, 자연 재해, 전염병, 높은 인구 밀도 등이 포함된다. 이런 위협에 자주 노출되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합심하고 협력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엄격한 사회 규범이 필요했다. ......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엄격함이 강한 국가일수록 코로나19 희생자(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적다. 희생자가 많은 국가는 문화적으로 느슨한 유럽과 남미에 포진해 있다.

247쪽
그렇다면 이런 생애사 이론의 관점에서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경쟁이 치열하다고 느낄 때 출산을 미루거나 적게 하는 저출산은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적응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다시 말해 내 주변이 사람들로 넘쳐난다고 감지하면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성장해 경쟁력을 길러야겠다'는 판단 회로가 작동해 출산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고 지각하면 지각할수록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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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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