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고쳐 살기 - 전희식

31쪽
농촌의 살림집은 복합공간이다. 안방이 곧 주방이고, 밥상 위에 책을 펴 놓으면 공부방이 되고 밥그릇을 놓으면 식탁이 된다. 화장실은 거름간이고 외양간이다. 시골집에 대해서는 이런 복합공간으로서의 이해와 수용이 필요하다. ...... 생태적 삶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불편함은 건강한 삶을 보장받는 보증수표와 같다. ...... 집의 구조뿐 아니라, 물, 에너지, 생활쓰레기, 곳간, 광 등 공간을 배치할 때 생태 원칙이 반영되게 하는 것은 옛 농가의 집 구조와 배치를 자세히 살피면 다 보인다. 시골집을 고쳐 사는 것은 이처럼 옛 선조의 주거 지혜를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32쪽
빈집을 고치는 데엔 큰 원칙이 필요하다. ...... 기둥이 가장 먼저다. ...... 지붕을 고치고 나면, 내부 구조를 변경하거나 벽채 보강 공사를 한다. ...... 그다음 난방을 하거나 상하수도를 수리한다. ...... 마지막으로 하는 작업은 창호 작업과 마당, 담 쌓기, 축대, 대문, 조경 등이다.

48쪽
생태 집짓기에서 늘 강조되는 것이 바로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나무를 쓰라는 것인데, 이 집이 그랬다. 집터 주변에서 수백, 수천 년을 살아온 돌멩이와 흙덩이는 그를 둘러싼 뭇 생명체 모두와 무생물 모두를 아우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65쪽
집을 다 지은 뒤 막상 살림을 들이고 살 때보다 일 하면서 요모조모 궁리를 거듭할 때가 더 행복하다. 

75쪽
어느 자연의학자는 옛날 어머니들에게 부인병이 없었던 것은 하루 세 번씩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거나 퍼질고 앉아 불을 때면서 아랫도리에 원적외선을 많이 쬔 덕분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원적외선은 파장이 긴 열선으로 장작불에서 많이 나온다.

97쪽
며칠 전에는 아랫동네 사는 사람이 산일을 하고 내려가다 우리 집에 들렀다. 그는 작업복에 흙투성이였다. 나는 바로 이 툇마루에 그를 앉게 해서 같이 귤도 먹고, 차도 한 잔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방으로 모시자면 본인도 어려워했을 것이나 툇마루 덕분에 그분이나 나나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갈 수 있었다.

122쪽
구들 문화를 가진 한민족은 태생이 '평화인'이다. 좌식 문화의 상징인 구들 문화는 퍼질고 앉는다. 퍼질고 앉은 사람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지 않는 자세다. 그 얘기는 외부의 침략을 받을 짓을 안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아닐까? 입식 문화권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있고 곁에 창이나 칼을 세워둔다. 여차하면 한판 붙기 좋은 생활 문화다.
어디 그뿐이랴. 구들방은 네 자리 내 자리가 없다. 겨울 날 집에 찾아온 손님과 아랫목 이부자리 밑으로 다리를 같이 집어넣고 얘기를 나누면 '너, 나'가 따로 없다. 사람들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앉기에 따라 모두 다 수용한다. 참 평화적이다. 입식 거실에 있는 소파를 생각해보자. 주인이 앉는 자리가 딱 정해져 있다. 

134쪽
사람들은 때로 일상의 번잡함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스스로와 만나는 시간이 필요한 존재다. 단절과 폐쇄의 개념이 아니라 독립과 성찰의 개념이다.

137쪽
시골집 하나 고쳐 지으면서도 아프리카 커피농장을 생각하고, 유소년 노동에 대해 반대하는 행위를 한다. 우리가 먹는 밥 한 끼, 쓰는 생활용품 하나가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163쪽
자고로 방에 붙은 방문은 낮고 작아야 한다. 머리를 약간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아야 한다는데 요즘의 '도어'는 뻣뻣하게 서서 드나들게 되어 있다. 석유화학 합성물로 만들어진 재질 덕분에 단열에 대한 자신감이 문짝을 크게 키운 것으로 보인다. 문이 작아야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여미면서 방 안에 고요히 쉬러 들어가는 자세가 될 텐데.

167쪽
"온 천지가 다 이 집 정원이군."
그렇다. 눈길 닿는 데까지가 다 우리 집 정원이다. 이 넓은 정원은 정원사 한 사람도 두지 않았지만, 사시사철 너무도 화려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이토록 넓은 정원을 가졌지만, 나는 세금 한 푼 안 낸다. 나라에 미안할 정도다. 내 앞으로 등기가 되어 있지 않으니 나중에 자식들이 상속문제로 다툴 일도 없다. 그냥 물려줄 수는 있다. 그래서 참 홀가분하다.
일과를 끝내고 문 닫고 방에 들어가면 그 넓은 정원은 사라진다. 그리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내는 달콤한 시간이 시작된다. 산과 냇물, 들판과 집이 내 앞으로 등기가 되어 있든 말든 아무 상관없이.

186쪽
부조화의 매력. 기우뚱한 균형. 엇박자 장단. 이런 게 삶의 파격이고 묘미다.

190쪽
내가 '시골집 고쳐 살기' 강좌에서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시골집을 구해서 살게 되면 수맥이나 본체의 방향 등을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지금 그대로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렇다고 보면 된다.

시골집 고쳐 살기 - 전희식

214쪽
장식품이라고 하면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배부른 호사가들의 값비싼 미술품이나 골동품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정한 장식과 치장은 그게 아니다. 삶의 호흡이 느껴지고 미적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면 다 해당된다. ...... 이 곶감꽂이가 우리 집의 멋진 가을철 장식품이 되는 것은 어떤 값비싼 장식품보다도 어머니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이것을 볼 때마다 구성을 달리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려나오기 때문이다. ...... 어머니는 두어 달 넘도록 마루에 앉아 감이 말라가면서 곶감이 되어가는 과정을 즐기셨다. ...... 집 안은 값이 나가는 물건이 아니라 가치가 충만한 물건으로 채우기를!

222쪽
타작하는 날 아침에 농기구를 하나 만들었다. 철물점에 가면 기껏 3,000원밖에 안 하지만, 사는 대신 직접 만들기로 했다. 내 창의력과 손재주와 보람과 집중의 시간을 돈까지 줘가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225쪽
형님은 장갑장수도 돈 좀 벌어먹고 살게 한 번 빨아 썼으면 이제 버리라고 하셨다. 장갑장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장갑이 더 측은하다.

225쪽
노동해방은 노동자들이 장갑을 빨아서 끼고, 닳아 떨어진 작업화를 기워 신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살리는 노동'이 존중되는 작업장이 많이 늘어나야 할 텐데.

226쪽
전기안전검사와 LPG가스 설치가 또 문제였다. 전문업체의 인증서를 받아서 내라는 것이 아닌가? ......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왜 전문업체를 끼고 그들의 검사대행증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인지 물었다. ...... 결국 모두 통과했다. 담당 공무원은 '인간승리'라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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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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