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31쪽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46쪽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다. ...... 누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가 있으면 작은 무리는 더 큰 무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 이 임계치 아래에서는 공동체, 사업체, 사회적 네트워크, 군대 등 모든 조직이 친밀한 관계와 소문 퍼뜨리기를 주된 기반으로 삼아서 유지될 수 있다.

49쪽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53쪽
국가는 공통의 국가적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세르비아인 두 사람은 상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 ...... 서로 본 적도 없는 변호사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다른 사람을 변호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칠 수 있다. ......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사람들이 지어내어 서로 들려주는 이야기의 바깥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 우리는 '원시인'들이 유령과 정령을 믿음으로써, 그리고 보름달이 뜰 때마다 불 주위에 모여 함께 춤을 춤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강화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한다.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은 현대의 사회제도들이 정확히 그런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62쪽
다시 말해서, 원시인류의 행동 패턴이 수십만 년간 고정되어 있던 데 비해 사피엔스는 불과 10년 내지 20년 만에도 사회구조, 인간관계의 속성, 경제활동을 비롯한 수많은 행태들을 바꿀 수 있었다. 190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사람이 1백 세까지 장수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녀는 어린시절을 빌헬름 2세의 호앤촐레른 제국에서 보냈고, 성년기에는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제3제국 그리고 공산주의 동독에서 살았고, 죽을 때는 재통일된 민주주의 독일의 시민이었다. 그녀는 매우 다른 다섯 가지 사회 정치 체제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녀의 DNA는 계속 똑같았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사피엔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이다. ...... 네안데르탈인은 사자가 어디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었지만, 픽션을 창작할 능력이 없어 대규모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었다. ​

67쪽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 오늘날 핵탄두를 제조하려면, 전 세계의 서로 모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협력해야 한다. 

83쪽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102쪽
바다라는 장벽은 인간만 가로막은 것이 아니다. 아프로아시아 육괴에 살던 동식물 중 많은 종이 '외부세계'로 나아가지 못했고, 그 결과 호주나 마다가스카르 같은 먼 곳의 생물들은 고립된 상태로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하여 형태나 성질이 멀리 아프로아시아 친척들과는 아주 달라지게 되었다. 지구라는 행성은 각기 구별되는 여러 생태계로 나뉘어 있었고, 구역마다 각자 독특한 동식물이 살고 있었다. 바야흐로 호모 사피엔스는 이 같은 생물학적 풍요로움에 종말을 가져올 참이었다.

123쪽
우리 조상들이 잡거나 채취했던 수천 종의 동물과 식물 중에 농업과 목축업에 맞는 후보는 몇 되지 않았다. 이들 종은 특정 장소에 살았고, 그 장소들이 바로 농업혁명이 일어난 지역이다.

124쪽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125쪽
어떻게 이 잡초는 그저그런 식물에서 출발해 어디서나 자라는 존재가 되었을까? 밀은 호모 사피엔스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그렇게 해낼 수 있었다. ...... 밀은 바위와 자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밭을 고르느라 등골이 휘었다. ......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126쪽
수렵채집인은 수십 종의 먹을거리에 의지해 생존했기 때문에 설령 저장해둔 식량이 없더라도 어려운 시절을 몇 해라도 견뎌나갈 수 있었다. 특정한 종을 손에 넣기가 힘들어지면 다른 종들을 사냥하고 채집할 수 있었으니까. ...... 농촌 마을이 강력한 적의 위협을 당할 경우, 후퇴는 곧 목초지와 집, 곡물창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엇다. 많은 경우 이런 피난민들은 굶어 죽었다.

129쪽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134쪽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또 있었다. 죽을 더 많이 먹이면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 정착촌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그들은 또한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가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또한 풍년에 넘쳐나는 창고는 도둑과 적을 유혹할 것이며 이를 방비하려면 성벽을 쌓고 보초를 서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42쪽
불행하게도 진화적 관점은 성공의 척도로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할 뿐, 개체의 고통이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아마도 진화적 성공의 사례이겠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인 것도 사실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일련의 야만적 관행을 기반으로 이뤄졌고, 관행은 수백 수천 년이 흐르면서 더욱 잔인해졌다.

147쪽
만족한 코뿔소는 자신이 자기 종족의 마지막 개체라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송아지의 종이 수적으로 성공한 것은 개별 개체들이 겪는 고통에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한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151쪽
수렵채집인들은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데다 먹을거리나 소유물을 저장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 역설적이게도 수렵채집인들은 그 덕분에 많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자기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일을 걱정해봐야 무의미했다.

152쪽
미래에 대한 걱정은 생산의 계절적 사이클뿐 아니라 농업 자체의 근본적 불확실성에도 뿌리를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은 아주 제한된 종류의 재배작물과 가축을 기르며 살았기 때문에 가뭄, 홍수, 병충해에 취약했다. 농부들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해야 비축분을 만들 수 있었다.

153쪽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154쪽
역사상의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굶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156쪽
이것은 물론 인상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이집트의 파라오 제국이나 중국의 진 제국에서 운영했던 '대량 협력망'에 대해 장밋빛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진 제국과 로마 제국에 이르는 모든 협력망은 '상상 속의 질서'였다. 이들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규범은 타고난 본능이나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공통의 신화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165쪽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란 사악한 음모도 무의미한 환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함부라비도 자신의 위계질서 원리를 동일한 논리로 옹호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만큼은 기억해두자. 가령 이렇게 말이다. "나는 귀족, 평민, 노예가 날 때부터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다르다고 믿으면, 우리는 더 안정되고 번영한 사회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168쪽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질문은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자들에 관한 문제이다. 그들 스스로가 상상의 질서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남에게 그걸 강요하고 싶어 할 이유가 있을까? ...... 만일 투자자와 은행가 대다수가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는다면, 현대 경제 시스템은 단 하루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170쪽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 그러니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 ......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193쪽
문자체계가 인간의 역사에 가한 가장 중요한 충격은 정확히 이것, 즉 인간이 세계를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이 점차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자유 연상과 전체론적 사고는 칸막이와 관료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193쪽
여러 세기가 흐르면서 자료를 처리하는 관료주의적 방식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에서 더욱더 멀어졌고, 더욱더 중요해졌다. ...... 정부나 기구, 회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은 숫자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물리학이나 공학의 경우 해당 지식 분야 전체가 인간의 말과의 접촉을 거의 잃어버리고 오로지 수학적 문자 체계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다.

200쪽
사람들은 자기 사회의 구성원들을 가상의 범주에 따라 분류하여 사회에 질서를 창조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211쪽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216쪽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양자를 구분하기 좋은 경험법칙이 있는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생물학은 매우 폭넓은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강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금지하는 장본인은 바로 문화다. ......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행동,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 수고롭게시리 남자에게 광합성을 금지하거나 ......

216쪽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장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화한 것이 아니며, 그 사용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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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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