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쪽
다만 어리석은 일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성취나 희생, 또는 그 밖의 좋은 특성을 남들이 '알아 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온 다음날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는 '야, 어제 너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 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49쪽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성실한 사람보다는 세상 사람이 모두 알아보는 도둑이 되고 싶은 것이다. ...... 그들은 그런 식으로만 자신이 살아 있다고, 또 사회의 능동적인 일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81쪽
내게는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새로운 범죄 조직은 더 이상 촌스럽지 않다. 대신 세련되고 기술적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재갈 물린 염소 따위로 만들지 않고 사이보그로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게다가 누군가의 입에 핸드폰을 쑤셔 넣는 것은 그 사람의 성기를 잘라 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소유물 중에서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을 훼손하는 일일 테니까. 그사이 핸드폰은 자연스럽게 우리 육체의 일부가 되었다. 귀의 연장이고, 눈의 연장이고, 심지어 페니스의 연장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그의 핸드폰으로 질식시키는 것은 그의 창자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나 진배없다. '자, 받아, 받아, 메시지 왔어!' 하고 말이다.
85쪽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면 내 앞에는 나쁜 사진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작 내가 본 것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카메라를 던져 버렸다. 이후의 여행에서는 내가 본 것들을 모두 마음에만 담았고,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려고 마음에 드는 엽서를 사기 시작했다.
86쪽
아스팔트 위에 사람의 뇌수가 흘러내린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다행히도 그게 마지막이다). ...... 만일 그때 내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청소년처럼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지 모른다. 그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그 대신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억 속에 저장했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기억 속의 영상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 ENFP
97쪽
나는 우리 세계가 우연으로 생성되었다고 믿기에, 트로이 전쟁부터 오늘날까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대부분의 사건이 예나 지금이나 우연 아니면 다른 터무니없는 짓거리들의 동시적 조합으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체질적으로, 그러니까 회의주의와 조심성에서 늘 모든 형태의 음모론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나 같은 인간은 단 하나의 음모론이라도 실제로 완성하기엔 너무 머리가 나쁘다.
104쪽
음모과 비밀이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건 어설픈 음모이거나 알맹이 없는 비밀, 둘 중 하나다. 비밀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힘은 그것을 숨기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있다고 우리가 믿게 하는 데서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비밀과 음모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갖고 노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 역설적으로, 모든 가짜 음모 뒤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것을 진짜 음모로 믿게 만듦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의 음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123쪽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의 촌스러운 상황을 드러내는 징표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는 콜카타에서 지구의 운명에 대해 토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콜카타에서 누군가가 베를루스코니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지 나쁜 말을 하는지에만 관심을 보인다.
134쪽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 용감하고 신중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에서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왜 불행할까? 그 나라에는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보통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75쪽
심지어 사랑을 표방하는 종교도 근본주의에 빠지면 증오를 부추길 때가 많다. 적에 대한 증오는 국민과 신도를 하나로 묶어 동일한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몇몇 사람을 향해서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증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나 한 국가, 한 인종,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말을 쓰는 인간 집단들을 향해 나와 내 이웃의 가슴을 분노의 불꽃으로 뜨겁게 한다.
211쪽
하지만 인류는 그사이 진보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없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스포츠나 예술적인 즐거움의 형태로 되찾아 오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말을 타고 이동할 필요가 없는 시대임에도 사람들은 승마장으로 말을 타러 간다.
232쪽
따라서 모든 기계적 전기적 전자적 데이터 저장매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그 매체들은 새로운 것에 밀려 시장에서 재빨리 사라지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의 수명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233쪽
내 전자 기억 장치에 아무리 <돈키호테> 작품 전체가 들어 있더라도 그걸 촛불 아래서나 해먹, 보트, 욕조, 그네에서는 읽을 수 없다. 반면에 아무리 불편한 상황에서도 책은 내게 그것을 허용한다. 또한 노트북이나 전자책 리더기가 6층 창문에서 떨어지면 나는 수학적 확률상 모든 걸 잃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종이책이 떨어졌다면 기껏해야 모서리에 조금 손상이 갈 뿐이다.
292쪽
다른 웹사이트에 가면 <용서를 구하는 기술>이라는 제목 아래에 이렇게 적혀 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사죄할 때 자신을 패자로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통제와 힘의 상징으로서 이성으로의 즉각적인 회귀를 의미한다. 그러면 사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깜짝 놀라며 상대의 말을 경청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해방의 몸짓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그것을 좀 더 강렬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결국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계속 살아나갈 에너지를 채워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 책]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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