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쪽
라디오
네, 다음 곡으로 고 장덕 씨의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듣겠습니다.​

136쪽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그때의 은희들에게 
소설가 최은영

209쪽
어른들은 은희에게 말한다. 착하게 행동해. 날라리가 되지 마. 나는 남자아이에게 '착함'이라는 가치가 여자아이만큼 요구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 남자애들은 원래 그런 거야. 다 장난이야. 어른들은 남자아이의 아주 적극적인 수준의 가학성도 용인하면서, 여자아이가 자기 의견을 정정당당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성격이 이상한 애'라고 규정짓곤 했다. ......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예쁘다, 착하다 같은 말 대신 우리 자신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을 하고, 우리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받았다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213쪽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는 가해자에게 언제나 얼마간의 정당성을 주는 것 같다.


붕괴하는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이별한다는 것
변호사 김원영

234쪽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꿈에 복무해야 할지 우리 중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며 삶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이렇게 타인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형성하고, 과거의 자신을 돌보면서, 여러 사람의 존재를 품고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 갈 것이다.

235쪽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 앞에서 애도는 불가능했다.


지금, 여기의 프리퀄 <벌새>
여성학자 정희진

240쪽
근대 가족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제도다. 여성은 전쟁보다 배우자에 의한 살해와 출산 중 사망으로 더 많이 죽었다. 그럼에도 가족 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미투"가 어려운데, 이는 가족이 가부장제의 매트릭스matrix이기 때문이다.

241쪽
"오빠가 때렸어요"라는 딸의 호소에, 부모는 "싸우지 말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평등하게' 취급한다. 

241쪽
한국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는 대단히 도구적이다. 모든 사회복지 비용을 여성의 가정 내 성역할로 떠넘기고, 학자와 관료 들은 이를 "한국형 사회복지"라고 찬양한다. 한국의 가족 문화는 부부 중심이 아니다. 실제 '정상가족'은 해산되었거나 동거하는 이들은 '스카이캐슬'을 꿈꾸며, 스트레스 받고, 불안에 휩쓸리면서, 자녀의 성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물론 앞서 말했듯 부모들의 꿈은 가능하지 않고,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이 들러리, '샌드백'임을 알고 있다.

243쪽
10대의 문제일까, 시대의 문제일까. 은희의 친구, 남자친구, 후배는 모두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필요애 의해 은희를 사랑의 대상으로 이용한다.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대체제가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극단적인 개인의 시대지만, 인권 개념에서 개인은 그 안에서도 다른 누구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존재여야 한다. <벌새>는 그렇지 않은 현실을 보고한다. 
사랑에 필요한 것은 영원한 약속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관계를 끝낼 때,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 말은 언제나 명언이다. 사랑은 윤리적인 사람만이 시도할 수 있는 행위다. 가족은 이러한 윤리를 제도로 대신하려는 체제다.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호주제 폐지 운동 당시의 구호대로, 가족을 지키는 것은 성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이다.

244쪽
뻔뻔스러움의 시대에, 우울은 윤리적 능력이다. 본인의 우울을 타인에게 폭력으로 전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성, 서사, 창작에 대해
김보라 + 앨리슨 백델

257쪽
보라김: 나는 남성 감독들이 3시간, 8시간 되는 영화를 만들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259쪽
보라김: 음, 사람들 손 글씨를 보는 걸 좋아한다. ...... 손 편지에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에는 없는 영혼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손'으로 쓴 편지기 때문이다. 쓴다는 행위에는 깊이 있는 무언가가 있다.
벡델: 동의한다. 글씨를 쓰는 손이 종이에 닿으면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무언가가 종이 위에 배어나게 마련이다.

278쪽
보라김: 다른 여러 가지 말 못할 사연도 많지만, 이 자리에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백델: 알겠다. 그런 '경계boundary'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283쪽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함께 가족사를 써 보기도 했고,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부모님의 모습과 싫어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따라하지만 대물림해서는 안 될 행동들을 쓴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에 대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많은 장점이 지금 내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을 그저 증오할 뿐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준 좋은 영향들에 대해 깨달은 것이 가족에 대한 생각에 균형추 역할을 하게 됐다.

284쪽
보라김: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복잡다단하다.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다. 
벡델: 그게 핵심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어떤 것도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285쪽
벡델: 나는 부모님이 나를 배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고 느낀다.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에. ...... 어쨌든 부모님은 배 밖으로 구명조끼도 던져 줬다. 그 구명조끼는 쓰고 그리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287쪽
보라김: 어쨌든 다시 남성중심적 사회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양성 모두가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된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292쪽
보라김: '자, 영화를 만들기로 했으니 이제부터 무슨 얘기를 할지 생각해 볼까' 하는 식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꼭 하고 싶은 거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걸 해내지 못하면 내가 미쳐 버리고 말 거다'라는 방식에 더 가깝다.
벡델: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쳐 버릴 것 같은' 느낌은 해소됐나?
보라김: 100퍼센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이 가벼워졌다.

297쪽
스스로 확신을 가질 때, 뭔가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고 되물어야 하는 것 같다.

298쪽
벡델: 삶 자체에 이미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리석 덩어리 안에 이미 조각이 있다는 미켈란젤로의 표현과도 비슷하다. 창조가 아니다. 이야기는 그냥 거기에 있고, 나는 그저 이야기가 아닌 부분을 들어내면 되는 거다. <벌새>를 보면서 항상 좋아하던 히치콕의 말이 생각났다. "드라마란 인생에서 재미없는 부분을 잘라 낸 것에 다름 아니다"라는. 그런데 당신은 그 '재미없는 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2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서 밥을 먹는 장면 같은. 당신은 그 순간들을 카메라에 그냥 담았다. 그게 정말 대단하다.

307쪽
벡델: 내가 항상 기억하려고 하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모두 독특하다는 거다. 우리 모두는 아주 특별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아주 별난 자아의 소유자들이라는 거다. 그게 핵심이다. 그게 바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예술로 만들려는 이유다. 때로는 기이하게 보이는, 서로 다른 방식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여 주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서로 다른 이 사람들이 각자 가진 유별난 '다름'이 다 괜찮다고 느끼도록 말이다.


[네이버 책] 벌새 -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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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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