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국인 - 허태균


43​쪽
한국 사회가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한 사회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한국인의 특성, 즉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 주체성, 복합유연성, 불확실성 회피가 있었다. 온 국민이 가족같이 똘똘 뭉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진심을 다해, 나도 한번 잘살아보겠다는 목표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뭘 포기하고 뭘 잃어버리는지 따위는 신경 쓸 틈도 없이, 물질적 풍요와 그것을 가져다줄 기술과 산업에 미친 듯이 매달려온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바로 이런 한국인들이 같이 어울려 살면서 만들어낸 것들이다. 한국인의 특성은 그 자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특성이 환경적 요소와 환상의 조합을 이루어서, 어찌 보면 엄청난 선물을 우리 스스로에게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성공에 대한 욕망, 할 수 있다는 믿음, 배려, 역동성, 기동성, 유연성, 할 때까지 하는 열정, 되게 하라는 열망 등은 정확하게 똑같은 원리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허례허식, 연고주의, 부정부패, 사교육 광풍, 무원칙, 무질서, 물질주의, 예측 불가능, 단기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행복한 지옥'처럼 서로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행복과 지옥이 모두 같은 한국인의 특성에 의해 만들어져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79쪽
그래서 사실 한국의 많은 기성세대들의 존재감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자식, 누구의 상사, 누구의 친구, 누구의 부하 등과 같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결국 존재감이 약한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이 위협받을 때, 대개 갑질을 통해 그 관계를 갑을 관계로 규정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매우 불쌍한 방어적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하나밖에 없다. 더 많은 한국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있게 될 때, 한국 사회의 갑질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121쪽
그동안 우리는 엄청난 발전을 하기 위해서, 수많은 가치들을 외면하고 포기하면서 살아왔다. 머릿속으로는 그 포기한 가치들을 부여잡으면서 겉으로만 포기한 척 살아온 것이 아니다. 실제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과 그 속에서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해왔다. 

122쪽
실제로 국민들이 원하는 군자와 같은 품성으로 군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고 자신의 가족을 잘 돌보며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면, 지금 일련의 사태는 미래의 우리 사회에 희망을 던져줄 것이다. 만약 총리나 장관 후보, 국가지도자나 리더의 기준은 어버이의 기준과 같은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살면 절대 후보가 될 수 없는 이중적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면, 결국 우리 후손들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계속 좌절하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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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쪽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노력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한국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노력하게끔 채찍질하는 거시적 사회 시스템의 본질이 된다.
...... OECD 국가 중에 가장 높은 교육열, 가장 긴 노동시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짧은 수면시간. 이 모든 것들은 바로 노력, 또 노력,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한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모습이다.

245쪽
그렇다면 그런 풍요가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발전함으로써 국민의 심리 시스템이 그에 맞춰 안정적으로 변화되어온 선진국들에는 우리와 어떤 관점의 차이가 있을까? 이들의 인간행동에는 성숙flourish의 원리가 작용한다. 결핍된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고 마음껏 발현하려는 동기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아이들이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걷기를 시도하고, 굳이 어떤 보상이나 혜택이 없어도 무언가를 완성master하거나 향상시키려는 노력,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시도와 고민이 바로 이런 원리로 설명된다. 이런 성숙의 사회는 결핍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와 달리 획일적이 지 않다. 몇 가지의 본능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동기가 지배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행동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숙의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스스로 찾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행동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는 미친 놈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280쪽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런 인지부조화 이론이 한국 사회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믿거나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해도, 그리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일관성만 강조하거나, 자신의 소신이나 자신이 믿는 바에 일치하는 행동만을 고집하는 사람을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상황에 맞추거나 상대에 맞추는 등 여러 요인을 동시에 고려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다. 왜? 바로 한국문화의 복합유연성 때문이다. 이런 복합유연성은 생각이나 행동, 감정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것들을 동시에 추구하게 만든다.
...... 이렇게 하나를 얻으려면 잃을 수밖에 없는 것도 잃지 않으려 하고, 잃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362쪽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 사회는 처벌에 완전히 꽂힌 것처럼 보인다. ...... 왜 대부분의 학교가 책을 읽을 때마다 칭찬과 보상을 주지 않고, 읽어야 할 책을 정해주고 안 읽으면 처벌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을까?

364쪽
한국인의 불확실성 회피 성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더 명확하고 확인이 가능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성향은 막연하고 모호한 꿈을 좇는 것보다는 바로 눈앞에서 일어날 나쁜 일을 막는 데 초점을 두게 만든다. 장기적이기보다는 단기적이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위주로 사고하는 특성을 가지게 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 동기의 예방적 특성이다.
...... 최근의 많은 연구들이 즐거움을 좇는 것과 고통을 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며 서로 독립적이라고 제안한다.
...... 일반적으로 향상적 초점을 가진 사람들은 더 나은 상황, 즉 더 긍정적인 뭔가가 있는 상황을 추구하다 보니 보상에 더 민감해진다.
...... 반대로 예방적 초점을 가진 사람들은 더 나쁜 상황,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다 보니 소극적이고 위험회피형 결정을 하고, 축소적이고 회피적 사고를 하며, 단기적이고 즉각적이면서 완결적인 과제에 잘 어울린다.

381쪽
사실 '왜?'라는 간단한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들에게는 금기시되어왔던 질문이다. 상명하복과 사회적 의무와 규범이 강조되는 가족확장적 집단주의 문화를 가진 한국 사회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명령, 사회적 규범과 행동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곧 거부이며 반항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 우리 사회는 결국 모든 것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의문을 가지지 않는 본질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에 빠져 살고 있다.​


88쪽
사법판단의 본질이나, 더욱더 중요한 그 한계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않는다. 그 한계는 바로 많은 경우에 사법판단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상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이다. ...... 사법판단의 본질은 그 결과, 즉 판결이 얼마나 진실과 상식에 부합하느냐에 있지 않고, 그 판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판단은 상식과 다를 수도 있다.

111쪽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본질이 완전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순진한 과학자naive scientist'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원하는 만큼만 정보를 처리하는 '편향된 전략가biased tactician'에 더 가깝다고 밝혀왔다.

 

127쪽
어떤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던 간에 그 안에서 사소한 가치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인간은 그 사건에 대한 합리화와 정당화 그리고 의의 찾기를 통해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런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 와중에 피해까지 입을 수도 있다니, 이것은 특히 명분을 강조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억울한 고통이 된다.


144쪽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세월호에 관한 한국인의 행동을 '너무 정서적이다' 또는 '너무 과격하다'고 단정하는데, 이런 부정적인 평가는 옳지 않다. 사실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 '너무'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 ...... 다만 우리가 스스로 원하는 모습과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 다르다면, 좀 더 냉철한 분석을 근거로 원하는 모습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고민하면 된다.

154쪽
보다 더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런 한국인의 마음이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그 마음에 어떻게 적절히 대응하느냐일 것이다.

220쪽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자원이나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고스톱을 칠 때도 패가 나쁘면 광을 팔면서 쉬어야 한다.



393쪽
인문학은 결코 교양도, 수단도 아니다.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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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인

한국인에게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심리가 있다!한때는 ‘한강의 기적’을 자랑하던 한국 사회가 이제는 ‘헬조선’으로 바뀌어 버렸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사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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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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