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쪽
혹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상대방이 머리가 나쁘다거나, 가치관이 이상하다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그게 바로 당신이 순진한 사실주의naive realism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 그 순간 상대방도 당신과 똑같이 당신에게 답답함과 한심함을 느낄 확률이 100%다.
105쪽
예전에 자녀를 넷, 다섯씩 낳던 시절에는 자녀들끼리도 차이가 나는 걸 부모라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될 놈이 있고 그보다 덜될 놈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하나만 낳아서 끔찍하게 키우고, 끔찍하게 키우려고 하나만 낳는다. 이 악순환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무엇을 배울 것이며, 그 부모는 어떻게 될까.
나는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세상을 당장 바꾸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냥 내버려두라고. 그냥 자식들이나 잘 키우자고. 한 사회의 수준은 구성원들의 수준의 평균값이다. ...... 우리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지금의 기성세대보다 더 훌륭하다면, 20년 후 우리 사회는 그냥 가만히 둬도 더 나은 세상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빠서, 우리의 청소년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고 있다.
123쪽
본인이 춥거나 덥지 않은 한, 아니 심지어 본인이 더운 걸 원하거나 추운 걸 원하면, 여름에 겨울옷을 입거나 겨울에 여름옷을 입어서 안 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행동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한다. 더 나아가 옳고 그름으로 나누려 한다. 이렇게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그런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을 혼동한다. 이러한 현상을 사회심리학에서는 '본질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 부른다.
...... 모두 같아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은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정상의 범위는 더욱 좁아진다.
129쪽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착각을 '가용성 방략availability heuristic'이라 말한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내릴 때, 그 사건이 일어날 실제 확률보다는 관련 정보가 얼마나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147쪽
우리는 가끔 자신이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만든 것인지, 그렇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인지 헷갈린다. 이러한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 한다. ......
그래서 힘 있는 사람은 가끔 모험을 해야 한다. ...... 혹시 자신이 힘없는 사람에 대해 원래 잘못된 기대와 예상을 한 게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160쪽
우리가 기억을 되살린다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착각이다. 대부분의 기억은 다시 되살려낼 떄 재구성된다.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던 일이라고 믿는 몇 가지 사건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186쪽
이 무서운 연구결과는 우리가 지나친 보상과 처벌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를 시사한다. 어떤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보상과 처벌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 하지만 이러한 행동변화가 마음속 변화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197쪽
존스Ned Jones와 니스벳Richard Nisbett이라는 사회심리학자는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오해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행위자-관찰자 효과actor-observer effect'를 들었다.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 행동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또는 그걸 원했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다고 믿게 되는 경향이 있다.
240쪽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회가치적 판단들, 즉 무엇이 옳고 바람직하고 무엇이 잘못됐다고 하는 판단들은 대부분 절대적 가치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잠정적인 합의에 불과하다.
248쪽
이런 집단적 비극의 시작을 '집단사고group thinking'라는 말로 설명한다. 집단사고는 여러 사람이 모여 집단적으로 의사를 결정할 때, 다양하고 현실적인 방안과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결국 비합리적인 결정에 이르는 현상을 뜻한다. ...... 이때 외부에서건 내부에서건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면, 아니 굳이 반대가 아니라 의문이라도 제시하면, 그들은 모두 간첩, 배신자, 악당, 사탄이 된다.
262쪽
우리로 하여금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심리적 과정들에는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사고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착각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끼지 못하고,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다.
266쪽
신중한 생각을 관장하는 우리의 의식은 한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매우 작다. 일반적으로 동시에 5~9개 정도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
무의식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솔직히 잘 모른다. 그냥 무지하게 크다는 것만 안다. 일부 학자들은 의식의 25만 배라고 한다.
273쪽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이다. 인간이, 사회가, 국가가, 민족이 어떠해야 한다는 방향성과 당위성보다는, 그냥 인간의 본 모습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심리학은 오롯이 어느 쪽 편을 들기가 어렵다. 옳고 그름, 내 편과 남의 편,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논리보다 그 사람이 누구건, 그 주장이 무엇이건, 다 설명하고 이해하려는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그렇게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옳은 주장도 틀린 주장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심리학자는 대부분 양비론적인 주장을 펴고, 세상이 원하는 답을 제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모습보다는, 다양한 가치에서 두 세력으로 나누어져 서로를 죽일 듯 비난하는 모습으로 꽉 차 있다. 한쪽 편을 들지 않으면 마치 생각이 없고 가볍고 시대적 사명이 없는 사람처럼 평가된다.
277쪽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닌데 우리는 착각하고 있고 착각을 막을 수도 없다는 얘기를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가 그냥 딱 하나만 할 수 있게 되길 바라서다. 내 부모가, 자녀가, 친구가, 이웃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가 때로는 나의 적이 나의 믿음에 도전할 때, 딱 하나만 스스로에게 묻자.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
117쪽
착각해야 행복하다면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면 될까? 맞다. 단 하나만 더 하면서 살면 된다. 이 책처럼 가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접할 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자.
[네이버 책] 가끔은 제정신 - 허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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