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쪽
불행하게도 식견 있는 자들이 쓰는 이 대수롭지 않은 단어, 이 '이해하자'라는 슬로건이 바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 그 단어 때문에 이성의 운동은 멈추고, 이성에 대한 신뢰는 파괴된다. 그 단어는 지능의 세계를 둘로 쪼개고,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동물과 지도받은 꼬마 사이, 상식과 과학 사이를 단절시켜 이성을 탈선하게 만든다. 이 이원성의 슬로건이 선포된 이상, 이해시키는 방식의 모든 개선(방법론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의 중요 관심사)은 바보 만들기의 진보가 된다.
51쪽
그가 더 많이 까먹을수록, 그는 자신이 넘어선 자들, 앎의 대기실에, 즉 무언의 책 앞에 남아 있는 자들, 이해할 만큼 충분히 똑똑하지 못해서 되풀이만 하는 자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 설명자들은 그들이 열등하게 만든 존재로 하여금 자신들을 따르게 한다.
61쪽
우리는 텍스트부터 시작하지 문법부터 시작하지 않으며, 완성된 단어부터 시작하지 음절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72쪽
스승이란 구하는 자를 그의 길에 붙들어 두는 자이다.
83쪽
인민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지도 부족이 아니라 인민의 지능이 열등하다는 믿음이다. '열등한 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동시에 '우월한 자들'을 바보로 만든다.
84쪽 불평등에 대한 믿음은 그런 것이다. 우월한 정신이라도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더 우월한 자를 찾곤 한다. 열등한 정신조차도 자신보다 더 열등한 자를 찾아내 멸시하곤 한다.
85쪽
열등한 자들의 보편적 우월성은 우월한 자들의 보편적 열등성과 결합되어 어떤 지능도 그와 평등한 것에서 자신을 인정받을 수 없을 그런 세계를 만들게 된다.
114쪽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모든 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인간과 평등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인간을 자신과 평등하다고 판단할 때, 그 모든 인간이 갖게 되는 힘을 탐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의지란, 자신을 행동하는 것으로 의식하는 이성적 존재가 자기로 되돌아가는(반성하는) 것이다. 이 합리성의 온상, 즉 자기를 현동적인 이성적 존재로 의식하고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지능의 운동을 키운다.
131쪽
하지만 위대한 화가 만들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방된 자 만들기, '그래, 나도 화가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 만들기가 중요하다. ...... '그래, 나도 화가다'는, 나에게도 영혼이 있다, 나에게도 나와 비슷한 자들과 소통할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보편적 가르침의 방법은 그것의 도덕과 같다.
142쪽
이성과 의지가 동의어이듯, 평등과 지능은 동의어다. 낱낱의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을 정립하는 이 동의관계는 사회 일반을 가능케 하는 동의관계이기도 하다. 지능의 평등은 인류를 이어주는 공통의 끈이자 인간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171쪽
진리는 공적 장소에서 벌어지는 어떤 갈등도 딱 잘라 해결하지 않는다. 진리는 고독하게 자기를 의식하는 인간에게만 말을 건넨다. 진리는 두 의식 사이에 갈등이 터지자마자 자리를 뜬다.
172쪽
그것을 파스칼처럼 말하면 이렇다. 사람들은 힘에 정의를 부여할 수단을 항상 이미 찾았다. 그러나 정의에 힘을 부여할 수단을 찾는데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있다.
182쪽
사회는 결코 이성적이지 않겠지만 이성적 순간들의 기적이 사회에 일어날 수 있다.
195쪽
보편적 가르침은 사회의 제도 속에서, 그 제도에 의해 퍼져나갈 수 없다. 물론 해방된 자들은 사회 질서를 존중할 것이다. 그들은 사회 질서가 어찌되었건 무질서보다는 덜 나쁘다는 것을 안다. ...... 보편적 가르침은 개인들에게만 전달되지, 결코 사회에 전달될 수 없다. ...... 보편적 가르침은 뿌리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사회에 수립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정신의 자연적 방법이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모든 인간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201쪽
바보 만들기는 뿌리 깊이 박힌 미신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 앞에서 겁을 집어먹는 것이다. 관례는 무지가 아니다. 관례는 옆 사람의 무능을 확인하는 유일한 쾌락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포기하는 자들의 비겁과 오만이다. 해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203쪽
사실 해방된 자만이 사회 질서가 온통 협약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동요 없이 이해할 수 있고, 또 우월한 자들-해방된 자는 자신이 이 우월한 자들과 평등하다는 것을 안다-에게 충실하게 복종할 수 있다. 해방된 자는 자신이 사회 질서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거기서 커다란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225쪽
영구한 교육 혁명이 정상적인 체제가 된다. 그 체제에서 설명하는 제도는 합리화되고, 정당화되며, 동시에 구식의 원리와 제도들의 영속성을 보장한다.
246쪽
이성이나 평등을 실제 개인들에게 귀속시킬 것인지 아니면 개인들의 허구적 모임에 귀속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평등한 인간들을 가지고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불평등한 인간들을 가지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평등에 조금이라도 애착을 가진 자라면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들은 실재하는 존재들이고, 사회는 허구이니 말이다. 평등은 실재하는 존재들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지 허구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평등한 인간들이 되는 것을 배우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스스로 해방된다는 말이 뜻하는 바다. 하지만 이리도 간단한 것이 이해하기는 가장 어렵다. 더구나 새로운 설명, 즉 진보가 평등과 그것의 반대를 복잡하게 뒤섞어 버린 이후에는 더더욱 말이다.
247쪽
자코토는 진보의 표상 및 제도화를 평등의 지적 도덕적 모험에 대한 포기로 지각하고, 공교육을 해방에 대한 애도 작업으로 지각한 유일한 평등주의자였다. ...... 그는 해방하는 평등을 교육학적이고 진보주의적으로 번역하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186쪽
해방된 자들의 당, 의회 또는 해방된 사회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늘 매순간 스스로 해방될 수 있고, 타인을 해방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알리고, 제 자신을 알고 더 이상 열등한 우월자의 코미디를 연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를 늘릴 수 있다. 그것은 지능들이 일치하는 순간이 아니라 이성적 의지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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