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과 철학하기 - 김광식


35쪽
행복은 삶의 방식, 곧 라이프스타일이다.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부사다. '행복'이 무엇인지 묻기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47쪽
독일 베를린의 어느 지하철 환승 통로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 깊은 글귀가 쓰여 있다. "싸우면 질 수 있다. 싸우지 않으면 이미 졌다."는 독일 표현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말이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에 맞서 싸우다보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꿈을 실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예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이미 졌으므로 꿈은 아예 실현되지 않았다. 꿈꾸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85쪽
차이는 쾌락을 누리지 못할 때 나타난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꿀맛 같은 낮잠을 즐기지 못하면 몹시 괴롭다. 해탈한 스님은 아쉬울 뿐 괴로워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집착하지 않았으니까. 누릴 수 있으면 좋지만, 누릴 수 없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즐겼으니까.

99쪽
에피쿠로스의 행복의 모토는 '욕망하라'가 아니라 '즐겨라'다. 욕망의 역설에 빠지지 않고 즐기려면 자연적이며 어쩔 수 없는 것만 욕망해야 한다.

100쪽
에피쿠로스는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숨어 살라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자연히 경쟁심이 유발되고 명예나 인기를 추구하고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항상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명예나 인기는 주고 싶은 사람들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던가. 그러한 변덕스러운 것에 울고 웃는 삶이 행복할 리가 없다. 
실제로 에피쿠로스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필요한 만큼만 지니고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자유를 추구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친구를 사귀지만, 또한 그 친구를 위해서 괴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편 사랑은 배타적이고 공유할 수 없다. 항상 독점하려고 한다. 남에게 빼앗길까봐 늘 초조하다. 
어쩌면 사랑은 행복할 때보다 행복하지 못할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열정의 산물이지만 우정은 지혜의 산물이다. 

103쪽
애매모호할 땐 '그것이 아닌 것'과의 차이를 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무위는 무엇이 아닐까? 인위가 아니다. 무위라고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인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무위다. 행위를 하되 억지로 애써서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하는 행위가 무위다.

223쪽
엄마가 가족에 매여 자유롭지 못하다면, 남편과 자식은 엄마의 희생 덕분에 자유롭게 사는 듯하다. 그런데 남편과 자식은 과연 진짜로 자유롭게 사는 걸까. 
헤겔은 아니라고 한다. 빚지고 살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헤겔은 그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주인은 남에게 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 역시 사실은 그를 위해 일하는 노예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노예에게 매여 있다. 주인이 오히려 노예인 셈이다. 빚진 자는, 그래서 매여 있는 자는 누구든 자유롭지 못하다.
다른 사람에게 빚지지 않은 자유와 행복이 진짜 자유와 행복이며, 서로 빚을 지지도 지우지도 않는 공동체가 모두 자유롭고 행복한 이상적인 공동체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좇는 가정이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아니라 자유롭고 행복한 이상적인 집안이다.

248쪽
가진 게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가 노동력조차 팔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면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노동자는 세상을 뒤바꾸는 혁명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았을까? 자본주의를 수정하여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어, 노동자들이 구매력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뉴딜 정책이 그것이다. 운하를 만드는 일을 벌여 공장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 노동자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혁명을 일으키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한 것이다. 시장에만, 다시 말해 자본의 논리에만 맡겨두면 이윤의 무한 경쟁이 일어나 결국 망하니까, 수정 자본주의, 복지 자본주의로 옷을 바꿔 입은 것이다.

267쪽
따라서 자유의지에 따라 사는 삶은 세상이 강요하는 가치와 도덕법칙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적 동기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는 초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초인은 '힘을 향한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가는 강인한 인간이다.
(......) 그는 무엇보다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며 자유롭게 창조하는 인간이다.

272쪽
그 약자의 도덕의 중심에 기독교의 신과 그 아들인 예수가 있다. ...... 더 큰 문제는 이 노예의 도덕이 시기심과 의존심의 도덕이라는 데 있다. 노예의 도덕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판단으로부터 시작한다. 노예는 자신의 능력을 긍정하는 자긍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보다 뛰어난 주인을 시기하여 그를 '악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자기보다 뛰어난 자는 모두 악한 자다. 다만 뛰어난 자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양보하여 능력이 모자란 이에게 베풀면 '선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시기심에 사로잡힌 노예는 자신의 능력을 긍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높이려는 의지를 갖지 못한다. 
반면에 주인의 도덕은 자긍심의 도덕이다. 주인의 도덕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판단으로부터 시작한다. 주인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시기하지 않고 잘났든 못났든 자신을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긍정하며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289쪽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하게 살도록 만든다. 평온이야말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삶의 행복은 절절함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마치 무한한 삶이 주어진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산다면, 이러한 절절한 삶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존재'할 뿐이지 '실존'하는 게 아니다.

296쪽
내일 죽는 나에게 신도, 도덕도, 법도, 이웃도, 친구도, 연인도,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그 어떤 의미나 가치를 강요할 수 없다. 그들이 내게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며 요구하는 숱한 의무가 무슨 소용이 있고 어떤 가치가 있을까.
미리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삶의 방식을, 존재의 방식을 뒤바꾼다. 주어진 세계 속에 사물처럼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나의 관심이나 목적에 따라 그 세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본래적인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살게 한다.

311쪽
도대체 왜 사랑에 정의가 필요할까?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사회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식)과 세계의 관계를 평가하는 기준이 진리라면, 사람과사람 사이의 관계를 평가하는 기준은 정의다. 세계에 대한 이론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을지라도 진리가 아니라면 고치거나 버려야 하듯이, 사람 사이의 규칙이 아무리 효율적일지라도 정의롭지 못하면 고치거나 버려야 한다.

336쪽
생각이 아니라 몸이 행동을 낳는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두 가지 종류의 앎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앎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을 안다'고 할 때의 앎과 '~을 할 줄 안다'고 할 때의 앎이 있다. 
...... 안다고 모두 행하거나 행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행하지 않거나, 자전거를 이렇게 저렇게 타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탈 줄은 모르는 경우도 있다.

350쪽
그렇다면 동성애에 대한 낯익음이 몸에 배게 하는 다른 방법은 얿을까? 인사법을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동성들을 포함하여 전 국민 인사법을 고개 숙임이나 악수대신 포옹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벌여보는 것이다. 악수도 처음에는 무례하다고 저항이 거세었지만 보편화되면서 남녀 사이에도 악수를 하면서 심리적 거리와 낯섦을 좁혔듯이 말이다.


[네이버 책] 김광석과 철학하기 - 김광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이 세상의 모든 김광석에게 묻는다!‘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이 떠난 지 20년이 되었다. 채움보다 비움을, 만남보다 헤어짐을, 머묾보다 떠남을 사랑하고 노래한 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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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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