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해야 건강하다 - 리처드 윌킨슨


■ 솔깃

131쪽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도시에서는 소득 불평등과 사망률의 관계가 발견되지 않거나 역의 관계를 보인다. 그 이유는 총소득이, 실제로 시민들이 시장에서 경험하는 혹독한 소득 격차이자 건강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장 소득(임금 금융소득)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는 원칙적으로 시장자본주의 경쟁체제를 따르기 때문에 시장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복지 국가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소득 격차를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부분적으로 보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총소득 불평등과 시장 소득 불평등에 차이가 발생하는 도시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반면 스웨덴의 경우는 이런 이례적인 사례가 포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강력한 사회 민주주의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스웨덴은 복지 급여뿐 아니라 시장에서의 임금 협상을 통해서 적극적이고 일차적인 소득 분배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 소득 불평등과 총소득 불평등의 경향이 유사하며 둘의 격차는 다른 복지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작게 나타난다. 이는 복지 정책이 미약해서 역설적으로 총소득 불평등과 시장 소득 불평등에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는 미국의 사례와 비교했을 때 현상은 같지만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269쪽
학습이 사회생활에서 중요해질수록 출생 이후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기간이 길어진다. 이 때문에 여성은 점차 아이를 기르는 데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우월한 남성과 짝짓기 하는 것보다 남녀가 1 대 1로 결합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나아가 1 대 1 결합의 발전은 분명 여성성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 즉 짝이 아닌 남성에게 짝짓기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여성은 배란기를 잘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언제가 배란기인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배란기가 아닌 때에도 성적 자극에 민감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고, 함께 생활하는 여성들의 배란일이 거의 비슷한 시기로 조절되는 경향도 이런 변화에 속한다. 이 모든 변화 때문에 우월한 남성이 수많은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독점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이는 생식과 여성성이 비위계적이고 평등주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가 발생하기 이전에 우월한 남성들은 매우 짧게 나타나는 발정기 동안 여성에게 접근하는 권리를 독점하기 위해 다른 남성들과 싸워서-대단히 공격적으로-그들을 몰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배란기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여성이 항상 성적으로 민감하다면 상황은 우월한 남성들에게 더는 유리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272쪽
우리는 일반적으로 농업이 발전하면서 이런 희소성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사실 농경 사회는 수렵 채집 사회보다 희소성에 더욱 취약했다. (......) 농경 사회는 소수 경작물에 의존해야 하며, 농사를 짓는 양도 수확이 좋지 못할 때를 염두에 두고 계산해야만 한다. 즉 가뭄에 대비하려면 원래 필요한 식량보다 많은 양의 곡물을 해마다 재배해야 한다. 만약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쓰레기가 되어버릴 여분의 농작물들을 매년 생산하기 위해 엄청나게 일하는 것이 자급자족하는 농민들이 갖추어야 할 유비무환의 자세였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한 양보다 10%를 더 경작하든 100%를 더 경작하든 간에, 흉년이 들거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전혀 수확하지 못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따라서 일이 고될수록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확보할 수 있는 여유분은 줄어든다. 이처럼 농경 사회는 수렵인이나 채집인들보다 갑자기 발생하는 기근에 훨씬 취약했다. (......) 수렵인과 채집인들도 농사를 지어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삶을 영위하는 우월한 방식으로 농업을 채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렵채집 사회는 인구 밀도가 낮았기 때문에 채집한 이후에도 작물들이 저절로 다시 자랄 만큼 시간이 충분했다. 따라서 수렵과 채집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 농업은 인구 밀도의 증가에 대한 반응이었다.

289쪽
인류가 진화하면서 갖게 된 사회적 기술들은 두뇌나 심리적 특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눈동자의 흰자위' 속에도 있다. 고바야시와 고시마는 현존하는 92종의 영장류들 가운데 눈동자에 흰자위가 있는 영장류는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흰 '공막'은 눈가의 피부색이나 눈 중앙의 홍채나 동공의 색깔과도 뚜렷하게 대비된다. 대부분의 영장류는 갈색의 공막을 가지고 있으며, 그 주위의 피부색도 갈색에 가깝다. 공막의 색깔이 주변 색깔과 다른 것은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선택한 특질이다. 이는 우리가 상대방의 눈동자를 보고 그들의 시선을 좇거나 그들의 관심과 사고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추측하는 것이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이로웠기 때문이다. (......) 인간 이외의 모든 영장류에게는 자신이 어디를 주시하고 있는지를 상대에게 보여 주지 않는 편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직 인류에게만 서로에게 시선을 노출하는 것이 진화론적으로 유리했다는 이야기다.

■ 정치

163쪽
신유물론의 지지자들은 심리사회적 요소를 중요한 위치에 둘 경우 정치인들이 이를 핑계로 상대적으로 재정이 많이 드는 물질적인 빈곤 척결을 등한시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듯하다. 심리사회적 요인을 강조하다 보면 빈곤의 부작용을 빈민의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거나 빈민의 건강한 심리를 회복하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들이 물질적 자원에 대한 직접적인 분배와 재분배를 교묘하게 피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 그러나 사회적 관계의 질은 소득 불평등의 격차에 따라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중시한다는 말이 결코 빈곤의 물질적 측면을 간과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관계는 불평등과 소득 격차가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주요한 부작용이다. 때문에 심리사회적 요인은 빈곤과 소득 불평등을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추가적' 근거가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반론이 아니다.

233쪽
당시 영국 정부는 전쟁의 부담을 국민이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부자에 대한 과세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필수품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사치품에 세금을 부과했으며, 공정한 분배를 위해 대부분의 식료품과 물품을 배급했다. 국민건강보험제도 수립을 포함해 전후 복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1941년 '베버리지 보고서'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베버리지 보고서의 목적은 좀 더 공정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전시에 동지애라는 감정은 공공의 적에 맞서 함께 싸우면서 싹트기도 하지만, 평등과 공평을 강조함으로써 고조되기도 한다. 만약 전쟁의 부담을 부자들은 지지 않고 오직 노동자 대중들에게만 지나치게 많이 부과한다면 동지애와 협동심은 틀림없이 분노로 변할 것이다.

335쪽
종업원 지주제와 같은 실험을 계속 추진해야 하며,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339쪽
노동과 경제조직을 민주적 책임성 아래에 두게 되면, 이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의 지위를 변화시킨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타인의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통제력을 판 대가로 임금을 받고 자본가의 권력에 종속되는 교환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동등하고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협력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해서, 노동은 선출되지도 않았고 책임의 의무도 없는 고용주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341쪽
구공산주의 국가들에서 국가가 기업을 소유하고 경제를 통제하는 정책들을 도입하면서 남겼던 부작용 중 하나는 미국으로 하여금 평등에 대한 관심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들을 보면서 미국 사람들은 평등은 반드시 자유를 희생시킬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미국인들은 한때 자신들이 평등을 지향한다고 여겼지만, 이제 이들에게 평등은 과도한 국가권력이나 자유의 박탈을 의미하는 낯선 개념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평등이 만약 사람들이 직장에서 민주적 권리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면, 자유는 평등과 양립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 책] 평등해야 건강하다 - 리처드 윌킨슨

 

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주장을 담은『평등해야 건강하다』. 이 책은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환경이 스트레스성 질병과 사회적 갈등, 우울증과 같은 병을 불러오고 있음을 한 사회에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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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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