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해야 건강하다 - 리처드 윌킨슨


24쪽
몇 세기 전만 해도 잘먹고 잘사는 부자들이 뚱뚱했고 먹을 양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말랐었다. 하지만 질병 구조가 변화하면서 이런 양상이 역전되었고,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뚱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31쪽
우리는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구속당하고 고문당하며 실종되는 인권 침해의 사례들에 대해서는 쉽게 분개한다. 하지만 건강 불평등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낳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어떤 무자비한 정권이, 건강 불평등으로 인해 줄어든 빈곤층의 수명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강제로 감금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빈곤층의 높은 사망률은 감금보다 더 심한 사형 집행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건강 불평등을, 매년 정부가 자의적으로 상당수의 국민을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인권 침해로 취급할 필요가 있다.

32쪽
만약 어떤 사람이 감자 튀김과 도넛을 너무 많이 먹어서 수명이 단축되었다면, 그들의 삶은 짧았지만 적어도 달콤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이들의 수명이 단축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우울증이나 불안처럼 생애 전체를 억누르는 사회적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44쪽
1879년 프랑스혁명 당시에 자유는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봉건 귀족과 지주들의 독재에 굴종하거나 종속되지 않은 해방의 상태를 의미했다. 원래 자유는 서열 제도가 양산해 낸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정신이었다. 

49쪽
사회 통합의 정도, 서로 신뢰하는 정도, 그리고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에 관여하는 정도는 삶의 질을 풍요하게 하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이런 특성들은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으로 불렸는데, (......) 현실에서 불평등이 조금만 개선되더라도 평등의 순기능을 상당한 정도로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70쪽
다시 말해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 이유는, 그 사회의 나머지 구성원들은 술을 별로 안 마시는데 유독 일부 구성원들이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그 반대였다.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 사회에서는 어김없이 구성원 대부분이 32개 사회의 전체 평균 음주량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다. 따라서 그 반대의 경로로 즉, 각 사회의 평균 음주량을 통해서도 그 사회에 알코올 중독자가 얼마나 많을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75쪽
일차적으로 계층 간의 건강 격차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정도가 달라서 생긴 것은 아니다. 의료 서비스가 무료인 영국에서는 오히려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의료 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질병에 더 자주 걸리는가이다.

76쪽
바로 물질적 요인만이 아니라 심리사회적 요인들이환율(일정 기간에 특정 인구 집단에서 특정한 병에 걸린 환자의 비율)이나 사망률의 격차를 매우 정확히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자기통제력의 부족, 우울증, 절망감, 적대감, 신뢰의 부족, 사회적 지지의 부족, 취약한 사회적 관계,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 가정 불화, 업무 스트레스, 노동 강도에 미치지 못하는 사회적 물질적 대가, 근친의 사별, 비혼과 이혼 상태, 고용 주거 불안정 모두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78쪽
어떤 요인이 물질적인 요인이고 어떤 요인이 심리사회적인 요인인지를 구분하려면 다음과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그 요인이 의식적 무의식적 인식이나 인지적 과정을 통해서 건강을 악화시키는가? 아니면 반대로 그 요인을 인식하거나 인지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건강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가? 예를 들어 대기 오염, 감염성 미생물, 비타민 부족과 같은 문제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요소들은 건강을 직접적으로 악화시키는 물질적 요인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고용 불안정이나 주거 불안정은 오직 우리가 고용 상태와 주거 상태 때문에 불안을 느낄 때에만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들 때문에 적대감이나 우울함을 느끼거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이런 상황들로 말미암아 생기는 우리의 감정이라면, 비록 이에 대한 해결책이 물질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요인들은 심리사회적 요인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점이 중요하다. 즉, 심리사회적 스트레스의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물리적인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오히려 정신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며, 세계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를 깨닫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건강에 대한 심리사회적 영향력을 강조하다 보면 현실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자주 듣게 된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의 경험이며, 그런 경험을 바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실제 현실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무엇을 바꿀지를 판단하려면, 사람들이 세계를 자신의 주관에 따라 어떻게 구성하고 경험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만 한다. 심리사회적인 요인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94쪽
히스패닉의 역설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주로 자신들만의 거주 지역에 모여 살면서 좀 더 넓은 지역 공동체와는 구분된 언어를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히스패닉은 자신들이 다른 집단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에 경험할 수도 있었던 열등감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이들은 가난한 미국인으로 존재하기 이전에, 미국이라는 커다란 사회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에 살고 있었다. (......) 로세토Roseto 주민들이 이탈리아어를 사용했던 시기에, 이들의 식단이나 생활 습관이 별로 좋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건강 수준은 주변의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하게 높았다. 그러나 로세토의 후세대들이 점차 영어를 사용하게 되고 로세토가 미국 사회에 완전히 편입되면서부터, 건강 상태는 점차 악화되었다.

112쪽
현대 사회에서 생활수준이 점점 나아지면서 기본적인 물리적 욕구들은 거의 충족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안전한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래의 식량에 대한 걱정도 많이 감소했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지리적, 사회적 이동량이 증가하면서,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걱정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119쪽
우리는 이제 사회적 불안, 수치심, 우울, 폭력이라는 감정들이 모두 사회적 비교에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73쪽
길리건은 두 권의 저서를 통해 존중의 상실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일관성 있게 강조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심각한 폭력 행위 중에서 모욕감, 굴욕감, 경멸감에서 출발하지 않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147쪽
소득 분배와 건강이 관계가 있다면 틀리없이 두 변수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나빠진다는 2장의 내용과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나빠지면 건강이 악화된다는 3장의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런 논의들은 소득 불평등과 건강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부연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해 보면, 사회적 관계의 질이 소득 불평등과 건강을 잇는 연결 고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87쪽
사회적 지위에 인간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 주는 몇 가지 생물학적 지표가 있다. '백의고혈압'도 한 가지 예이다. 이것은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환자의 혈압을 직접 측정할 경우, 기계로 측정하거나 간호사처럼 서열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이 측정할 때보다 수치가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의사 앞에서 환자들이 더욱 긴장하게 되는 이유는 의사가 일반적으로 환자들보다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185쪽
물론 어떤 사람들은 치욕스러운 상황에서 화를 내거나 폭력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운 것으로 인정하면서 주눅이 들 수도 있다. 마치 원숭이 무리에서 서열이 낮은 개체가 그런 것처럼,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서 "순종적이고 유순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시당했거나 멸시를 당했다고 느꼈을 때, 이와는 반대로 폭력을 행사한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의 치부를 인정하는 데 '실패'한 행동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사람들에게 열등감이라는 불명예를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192쪽
사망 원인을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놀랍게도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낮게 나타났다. 자살과 폭력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갈등이 많은 공격적인 사회에서 무슨 일이 잘못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비난한다. 그러나 사회질서가 안정되어 있고 도덕적 권위가 높은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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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불평등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주장을 담은『평등해야 건강하다』. 이 책은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환경이 스트레스성 질병과 사회적 갈등, 우울증과 같은 병을 불러오고 있음을 한 사회에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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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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