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쪽
부사관 후보생들은 커트머리, 사관후보생들은 조금 더 우아하게 보여야 한다면서 짧은 파마머리로
49쪽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괴롭힐 용도로밖엔 이용되지 않는 이런 상황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답답하고 화가 났다.
50쪽
군대라서 남녀 차별이 없을 거라는 건 나 혼자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제도적으로 이미 여군은 남군을 보조하는 것으로만 정해져 있었다. (.......) 여군 후보생은 처음 선발하는 면접에서부터 단정함 이상의 미모를 주요 조건으로 따졌다. 앞에서 말한 파마머리 말고도 여군 후보생들은 일과 교육 시간에도 하의가 스커트인 정복을 입게 하였고, 내무반 밖에서는 꼭 화장하고 다니기를 요구했다.
마치 미스코리아라도 양성하듯 우아함과 신비성을 요구하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늘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화장하는 게 귀찮았지만 화장을 하라고 위에서 하도 지시가 내려와 후보생들은 빈 캐비닛에 루주 하나를 보관해 놓고는 아침마다 돌아가면서 발랐다. 후보생들이 맨 얼굴에 다른 화장은 하나도 안 하고 모두 똑같은 색의 루주만 칠한 채 학과 출장을 나가는 모습은 우리가 봐도 희극적이었다.
65쪽
군기를 잡는 것과 기를 죽이는 것은 다르다.
83쪽
여군도 결혼은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전역을 해야 했다. 그것이 규정이었다. (......) 부사관은 아예 결혼조차 할 수가 없다. 여군 부사관은 자격 규정 자체가 미혼으로 한정돼 있었던 것이다.
85쪽
나의 군인 정신은 나라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군이고 문서 쪼가리들이었다.
86쪽
회식에 가면 여성은 무조건 최상급자 주위에 앉히려고 한다. 마치 접대부를 앉히는 식의 그런 일을 중간 간부들이 알아서 한다.
91쪽
사격은 매우 예민하고 감각적인 운동이다. 떄문에 당시 사격단 지휘부는 선수들 개개인의 음식 취향이나 생리 주기까지 꼼꼼히 분석하면서 기록 관리를 했다. 여성은 생리가 오면 여러 가지 신체적, 정서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누구는 극도로 불안해지는가 하면 반대로 생리 때에 오히려 평소보다 차분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생리가 오면 꼭 어떤 음식을 먹어야 안정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선수는 생리 기간 때 사격 점수가 평소보다 5점 이상이 높아지기도 했다.
98쪽
나는 힘든 훈련을 받을 때면 붕대로 가슴을 칭칭 동여매곤 했다. 훈련받는 데 불편하기도 했고, 괜히 남자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 여군 중에는 간혹 머리를 아예 빡빡 미는 사람이 있는데 나와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101쪽
처음 여군 사관후보생에 지원하여 학과 시험에 합격한 후 면접을 치를 때가 생각난다. 면접 복장은 규정상 정장에 스커트를 입어야 했는데 나는 스커트 정장이 없어서 그냥 바지를 입고 갔다. 면접장에는 중령급 이상의 고급 장교들 5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바지를 입은 나를 보더니 왜 스커트를 안 입었느냐고 나무라고는 바지를 걷어 올려 보라고 했다. 흉터가 있는지, 각선미는 어떤지를 보는 것이었다.
193쪽
군 생활이야 다 비슷하겠지만 병영 생활의 분위기는 부대마다 다르다 .아무리 군대라도 일을 만들고 시키는 건 어쨌거나 사람이 하는 일이다. 때문에 부대 지휘관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군 생활이 편할 수도 있고 힘들 수도 있다. 사병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봐도 대개는 훈련이나 영내 거주 등 군 생활의 기본을 못 견뎌서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지시나 모욕적인 대우 같은 일상적인 환경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건 지휘관의 의지만으로 얼마든지 개선할 수가 있는 것이다.
213쪽
군 규정상으로는 군인이 암 같은 위중한 병에 걸리면 진급은커녕 군복을 벗어야 한다. 일단 발병 사실이 알려지면 설사 완치했다 하더라도 이 규정을 적용받는다.
246쪽
대전병원의 진료부장과 개인 면담을 했는데, 내가 유방 양쪽을 모두 절제한 것을 두고 양쪽에 다 병변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환자의 의무 기록도 보지 앟고 면담을 하는 게 한심했다. 한쪽만 문제가 있었다고 하자, 그럼 왜 양쪽을 다 절제했느냐면서 정신과적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겠다고 한다.
248쪽
그럼에도 나는 내 안의 선한 욕망들을 믿고 싶다.
18쪽
후배가 바라본 피우진 중령
윌슨러닝코리아 LAG그룹장 김은경(예비역 여군 대위)
그리스 신화에 보면 아마조네스(Amazon의 복수형)라는 여자 무사들이 나온다. 전투의 신 아레스와 님프인 하르모니아의 자손으로서, 남자가 태어나면 이웃 나라로 보내거나 죽여 버렸다. 그리고 여자만 남아 활을 쏘기에 편하도록 어렸을 때 오른쪽 유방을 도려내 버리고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스, 테세우스와 같은 남성 영웅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끝내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실레이아가 죽으면서 패배를 맛본 비극적인 여전사들이다.
(......)
유방암 수술을 받으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암보다도 유방 절제 자체가 더 충격적이라는데, 피우진 선배님은 평소 군사 훈련을 받거나 비행하는 데 가슴 때문에 불편했다며 양쪽을 다 절제했다. 그러고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고 도리어 시원해하니 전생에 아킬레우스 손에 죽은 아마조네스의 여왕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까.
[네이버 책]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 피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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