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사전, 김소연


120쪽
좋아하다
호감에 대한 일차적인 정서이면서도 정확하게 분화하지 않은('분화되지 않은'이 아닌) 상태를 뭉뚱그릴 때 쓰기 좋은 말이다. '좋아한다'는 고백은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호감이 어떤 형태인지 알기 싫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126쪽
매력
한 존재가 가진 결핍과 과잉, 모자라거나 지나친 성향들. 그것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호할 때, 이 낱말은 제법 용이하게 쓰이곤 한다. 누군가의 모자란 점과 지나친 점을 곱게 보아줄 때, 매력은 날개를 펼친다.

137쪽
우리가 지닌 오감 중에서 유일하게 채록되지 않는 냄새. 채록할 수는 더더욱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당신의 체취. 채록하자마자 사라지고야 마는 체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채록하려 한 자는 그 체취를 평생토록 감각할 수 있다. 엄마의 분 냄새와 아빠의 스킨 냄새를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해낼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와 뺨을 비비고 껴안고 잠들어본 자만이, 누군가 몸을 빼내고 떠나간 후 빈 베개에 코를 부벼본 자만이 체취의 사무침에 갇힌다.

145쪽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 속에는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습니다',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다 나았습니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우리는 가장 좋은 순간을 믿기 어려워하고, 그렇기에 그 순간에 '거짓말처럼'이라는 수식어를 앞장세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두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두고 '거짓말처럼 아름다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57쪽
차이 때문에 타자가 멀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멋지게 보이는 느낌. 그럴 때 우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멀어지거나 기댔던 등을 세워 앞으로 당겨 앉는다. 꼭 그렇게 자세를 바꿔서 대화의 심적거리에 환기를 두게 된다. 농담을 잘하는 사람은 대화를 하며 상대방을 그네에 태운다. 다가올 때마다 등을 힘껏 밀어 높이 띄워준다. 마주 앉은자리보다 훨씬 높고 먼 곳으로 가게 한 다음, 더 크게 자신 쪽으로 오게 하기 위해서다.

190쪽
사랑에 빠졌을 때에, 이기심은 비로소 자기를 사랑해줄 사람을 얻은 것이지만, 자기애는 자기가 사랑할 사람을 한 사람 더 얻은 것이 된다. 

191쪽
어린아이는 표정이 다양하다. 그리고 명명백백하여 때로는 과장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육체가 오로지 감정의 충복일 때에 가능한 일이다. 

191쪽
반드시 연인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와 아주 많이 친밀해지면 누구나 그 사람의 귀여운 구석을 발견하게 되고, 그 어떤 심오했던 사람들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유치한 면모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정이 들게 된다.

197쪽
머그잔의 질감을 제대로 알려면 보는 것보다는 만져보아야 하며, 더 자세한 속성을 알려면 두드려도 보고 깨뜨려도 보아야 한다. 그 모든 감각들을 동원하면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에 사실적이지 않게 되고, 그러므로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처럼 우리는 여기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이 진실보다 더 애매하다. 사실에는 진실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진실은 언제나 매복해 있다. 매복해 있기 때문에 불쑥불쑥 드러나며, 드러나지 않을 때도 많다. 사실처럼 입체적인 각도를 이뤄낼 수도 없다. 육안으로 볼 수 없고 심안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은 몇 가지 단서로 추적이 가능하지만, 진실은 단서를 들이댄다고 해서 추적할 수도 없다. 진실은 켜켜이 쌓인 것들을 풀어헤쳤을 때에 오히려 산만해진다. 진실은 언제나 덩어리째 존재해야만 형상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사실은 낱낱이 분석할수록 명징해지는 측면이 있지만, 진실은 분석하고 나면 형체가 흐트러지고 종합했을 때에 오히려 명징해지는 속성이 있다.

200쪽
솔직함은 자기 감정에 솔직한 것이고, 정직함은 남을 배려하려는 것이다. ...... 솔직함은 가리지 않는다. ...... 정직함은 가리는 것이 있다. ......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더 믿게 되는 것은 정직함이지만, 진실로 더 믿게 되는 것은 솔직함이다. 또한 솔직한 행동은, 하는 사람은 편하고 대하는 사람은 불편할 때가 많다. 정직한 행동은, 하는 사람은 조금 불편해도 대하는 사람은 편하다.

204쪽
착한 사람은 불의를 보고 화낼 줄 모르지만 선한 사람은 불의를 보면 분노한다. 착함은 일상 속에서 구현되고, 선함은 인생 속에서 구현된다.

210쪽
연약한 개인의 목소리를 강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접대하고 연대한다. 그 관습이 접대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천대를, 연대하지 않는 자에 대한 적대를 낳곤 한다.

217쪽
참회 없이 이 기이한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유령으로 배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74쪽
십대는 감정을 일일이 실천해내는 무모한 맛으로 사는 거다. 네가 미리 겁먹을 만치 이 세상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사람들이 떠벌이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요란하지도 않다.

 

 

[네이버 책] 마음사전 - 김소연

 

마음사전

마음의 뉘앙스를 담아 표현한『마음사전』. 이 책은 시인인 저자가 마음의 바탕을 이루는 희로애락애오욕에 갖혀 있는 마음의 실마리를 찾아 정리한 것으로 시인의 감성과 직관을 담아 특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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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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