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60분>이 고발한 국회의원의 땅테크를 두고 방송 취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접했다. 미디어 전공, 부동산 종사자라는 그는 해당 방송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비판이 타당한지 들여다봤다.
안 지켜도 되는 법이 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유명무실화된 농지법'을 언급한 대목. 국민들 대부분이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국회의원들도 안 지켜도 된다는 궤변.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크게 불법 증여를 했다거나 큰 불법이 있는 줄 알았다. 대부분이 거의 유명무실화된 농지법 위반 정도만 있을 뿐이다.
부동산 투자 관련업자로부터 '유명무실화된 농지법'이라는 말을 들으니 안타까움이 더하다. 실제 업계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법문이라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궁금하다. 관리 감독 기관이 실제로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는지, 거래 당사자들도 개의치 않는지. 아울러 유명무실화된 법이란 게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 경우 사실상 법적 제재가 전혀 가해지지 않는지도 궁금하다.
큰 불법과 작은 불법은 없다. 불법과 합법, 둘 중 하나다
농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제정된 농지법이 현재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큰 범죄와 작은 범죄는 있을지언정 불법에는 큰 불법과 작은 불법이 따로 있지 않다. 몇 개의 조항을 몇 번 위반했는가를 따질 순 있다. 흉악위법, 악질불법, 극악불법이란 말을 들어 본 적 있나? 흉악범이란 말은 들어 봤을 거다. 각각 죄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지칭 대상이 다르다.
<추적60분>도 '엄청난 불법과 편법'이라는 표현 대신 '수많은 불법과 편법'이라는 표현을 썼다. 1개의 조항을 어겼더라도 불법은 불법이다. 그에 따른 피해자의 심적 고통이나 물적 액수, 사회에 미치는 파장에 따라 형이 달라져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또한 전후 사정을 고려해 형을 면할 수도 있고, 피해자나 대중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불법 행위가 적법, 합법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들의 한숨 소리가 더 안타깝게 들린 이유가 있다. 방송에서 거론된 한 지역. 얼마 전까지 내가 살던 곳이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곳 주민으로, 소유지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두 필지 중 한 곳은 임대한 상태. 혹시 이렇게 개탄하고 있는 내 가족이 그들과 같은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지 임대 사실에 대해 확인해 봤다. 농민은 해당 법안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농지법의 취지가 외지인들로부터 투기 목적의 토지 매입을 막기 위한 것인 만큼,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경우에는 다른 토지를 매입해 임대할 수 있다는 거다. 따라서 농민은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할 필요도, 농지취득자격증명서를 발급 받을 일도 없다고 한다. 행정 절차의 규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적어도 규정상으로는.
네 가지 때문
아니, 돈 벌어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뭐가 문젠가? 국회의원, 공무원, 판검사는 돈되는 땅을 사면 안 된단 말인가?
이 방송은 내용이 문제다. 그러면 땅에 투자한 사람은 모두 투기꾼이고 도덕적이지 못한 건가? 필자처럼 부동산이 업인 사람이 투자를 하면 투긴가? 도대체 경제학적으로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뭔지 좀 알려 달라!
문제를 바로 볼 필요가 있다. 자기가 번 돈으로 자기 재산을 불리기 위해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사회,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그야말로 온당한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다. 문제는 다음의 4가지다.
① 소유주를 꾀어 토지를 취득한다. [공권 남용]
꾄다는 건 투자와 투기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정부 정책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본인의 공직을 사유 재산 불리기에 이용하고, 거짓말까지 동원해서 그 땅을 본인 소유로 만들어 이익을 취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어서다. '추적60분'에서 의원 토지와 그 외 토지의 공시지가 상승률을 비교, 분석한 것도 이러한 의혹에 개연성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금액의 시세차익을 부각시킨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② 매입 후 말을 바꾼다. [국민 기만]
거짓말의 내용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골프장 개발 계획이 머릿속에 있긴 하지만, 사실대로 털어놨다가는 가뜩이나 팔 생각이 없어 보이는 땅 주인을 설득할 여지가 완전히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둘러대고 보자는 심산. 누가 봐도 얍삽한 짓이다.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상대로, 그것도 국민의 녹을 먹는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이 서민들을 상대로 이러한 꼼수를 부리고 있는데, 언론이 가만히 두고만 본다면 그건 일종의 직무유기다. 언론인은 이를 국민에게 알릴 의무와 권리가 있다.
③ 당초 개발 및 건설 목적을 위해 주민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돈을 뿌린다. [금품 매수]
제작진은 골프장 건설에 대한 주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국회의원의 부인이 대표로 있는 한 골프장 업체를 취재했다. 이 골프장은 주민을 조용히 밤에 불러내서는 신문지로 둘둘 만 현금 뭉치를 건넸다. 그리고 누가 묻거든 빨래비누라고 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동의해 준 주민에게 당사자와의 협의를 거쳐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보상금을 지급했을 뿐이라는 업체측의 말은 거짓이었다.
당사자에게 의사를 묻기는 커녕 현금 천만 원을 빨래비누로 알고 집으로 들고 가게끔 했다. 엄연한 매수다.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이 주민이 알고 받아와 놓고 취재진에게 태연히 거짓부렁하는 것으로 보이나? 돈 욕심에 받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영 찜찜해서 도로 갖다 논 걸까, 이분이?
④ 허위로 작성한 농업경영계획서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 받는다. [위법 행위]
농지법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손 치더라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만큼은 엄연한 현행법을 마땅히 지켜야 한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산을 500미터나 올라야 하는 위치에 묘목 몇 그루를 심어 놓고, 100% 자기 노동력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적어 넣은 서류, 골프장 부지 매입 과정에서 임야는 법인 명의로 살 수 없어 허위로 신고하고 개인 명의로 사들였다는 업체의 설명, 어느 모로 보나 사회질서를 위해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 측이 할 짓은 아니라고 본다.
국회의원이 그렇게 법을 우습게 아는데 어느 누가 법을 지키려 하겠나. 법을 지키면 나만 손해다, 등신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같은 그릇된 의식을 심어 주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안 지킬 거면 법을 개정하든지 만들어 논 법을 지키든지,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반인들도 보통 다 그렇게 한다는 식의 발언은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나서라면 모를까 - 사실 그때도 연금 지급 중지감이다 - 지금 뱉을 말은 아니다.
국회의원이 땅을 많이 가졌다고 도덕성이 떨어진다는 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땅 보유와 도덕성은 무슨 관계인가?
그는 몰랐나 보다. 거짓말은 도덕성과 아주 깊은 관계라는 걸. 공권 남용, 국민 기만, 금품 매수, 위법 행위, 모두 도덕성이 부족해 벌이는 일들이라는 걸.
비난의 자격
내가 땅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오르지도 않을 땅을 사겠나? 대부분 개발 호재가 있어서 향후 5년, 10년 후에는 몇 배가 뛰길 바라고 사는 거 아닌가?
땅을 샀다면 당연히 땅값이 오르면 좋다. 몇 년 후 가치가 몇 배로 뛰길 바라기도 한다. 23년 전 가족이 거주지를 옮길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지만 땅값 상승이 기대되는 몇몇 후보지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어른들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누구나 그렇게 땅을 사지만 '술수'를 부리지는 않는다는 거다. 업종을 있는 그대로 적어 허가를 받고, 정당한 방법으로 주민 동의를 구한다. 어차피 땅을 일궈 벌어먹고 살아야 하기에, 이왕이면 가치가 올라갈 땅을 선택한다. 그리고 실제 자기 노동력 100%로 업을 꾸려 간다. 이것이 투기와는 다른 '투자'다.
선거할 때 뭘 보고 국회의원을 뽑나? 내 집 옆에 도로를 놔 준다거나 내 동네에 전철을 놔 준다고 하면 당장 그 사람을 찍어 주지 않겠나?
찍어 주지 않는다! 적어도 내 땅값 올릴 목적으로 투표를 하진 않는다. 투기를 목적으로 매입한 땅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투자를 목적으로 땅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사는 지역의 일꾼을 뽑는 일이기 때문에 내 땅값에 미칠 영향보다 올바른 생각이 박혔는지, 정치적 신념이 나와 얼마만큼 일맥상통하는지를 먼저 따진다. 땅값이 크게 오른다고 해서 단박에 이 땅을 팔아 버리고 또 다른 개발 예정지를 찾아 나설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이로운 일을 도모해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어 주는 국회의원이 당연히 더 좋다. 투자와 투기는 이렇게 다르다. 반 고향이 된 이 마을을 큰돈 받고 떠날 궁리만 하는 투기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회의원이 땅 투기로 재산을 불린 데 대해 의혹을 제기한 제작진은 이런 주민의 마음을 헤아렸다고 본다.
본인들도 그러면서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을 증식하는 것을 금기시하나?
자산 증식을 금기시한 적 없다. 그 과정이 정당하고 합법적이었는가를 살펴보자는 거다. 일반인에 대해서가 아닌 공인(公人)에 대해서. 재산 증식이 제1의 목표라면 투자자, 기업가, 투기꾼으로 나설 일이지 왜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국회의원으로 앉아 있냐 이 말이다. 투기꾼으로 나서서 몇 년 간 그만큼의 시세차익을 냈다면 제작진은 이 내용을 다루지 않았을 거다. 방송이 된다면 시사 프로가 아닌 정보 프로에서 취재에 나섰을 거다. 부동산 정보 수집에 들이는 노력이나 다양한 노하우에 초점을 맞춰 나름의 애로사항부터 보람, 극적인 사례들을 재구성해 그야말로 이슈가 될 만한 이야기를 전개하다 훈훈하게 마무리했을 것이다. '추적60분'은 '다큐멘터리3일'도, 'VJ특공대'도 아니다.
대한민국, 이래저래 최고
정말 대한민국은 우습게도 자본가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맞다. 근데 혹시 이것도 알고 있나. 대한민국 자본가들처럼 세금 적게 내는 나라도 없다는 것.
국회의원이 돈이나 땅을 많이 가졌다고 뭐라 하는 건 대한민국이 최고일 것이다.
국회의원의 부정부패 수준도 대한민국이 최고일 것이다.
※ 국회의원 땅테크 고발했더니, 차라리 땅테크 비법을 알려 달란다 Link
※ 국회의원들의 땅테크 성공스토리 - 19대 국회 땅 추적 보고서 Link
※ '내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라' 외치는 다른 나라 부유층 Link
막돼먹은 강자씨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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