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와 습도가 최악의 빌런 자리를 다투는 장마철. 답답함을 씻어보고자 찜질방으로 향했다. 동네 작은 불가마 사우나. 아줌마들의 '썰'은 끊임이 없다. 전세로 2~4년마다 이사를 다니며 목욕탕을 전전하다 보면 궁금해진다. 지역 불문, 규모 불문이다. 아주머니들은 지인들끼리 왔기 때문에 열띤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그저 그 안에서는 누구와도 대화에 열이 붙는 것인지. 오늘도 '사우나 아줌마들'은 '그냥 40대 아줌마'인 나를 압도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카페 옆 테이블 이야기는 생전 귀에 안 들어와도 사우나 안의 대화는 신기하리만치 귀를 잡아당긴다. 과연, 그냥 아줌마는 끼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선망하는 것인지.
세 분이 납시었다. 유 씨(가명이다. 이름도 성도 모른다. 그들끼리도 모를지도 모른다.)가 말한다. 아들이 결혼을 전제로 2년간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고 다른 친구를 만나더니 6개월 만에 날짜를 잡았다는 소식이다.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외모가 출중하여 아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는 썰. 외모가 출증한 며느리를 감사히 맞이하는 시어머니 모드와 아들의 능력을 흡족히 바라보는 어머니 모드가 섞여 있다. 알고 보니 둘은 고등학교 동창인데 아들은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을 가고 여자는 사회생활을 하다 항공사에 취직했다가 10여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는 스토리가 이어진다. 아들 자랑에 목마른 엄마. 겸손을 곁들였다는 점에서 가상하게 들어준다.
정 씨 아줌마 차례다. 딸'도' 몇 년 전 회계사 자격증을 따서 일반 회사를 다니다 국회에 들어갔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 '도'가 의문이다. 앞의 이야기에 '도'를 붙일 만한 꺼리가 무엇인지 감을 못 잡겠다. 그래서 더 빠져든다. 뒤에 그 근거를 알려주실까? 집중의 필요를 느낀다.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쓰레기라는,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라는 둥 어이없는 지시를 내려 견디기 어려워하다 결국 국회 근무지를 떠났다는 스토리를 소개한다. 음, 그래도 '도'는 왜 끌어왔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딸'도' 왕년에 잘나갔었다? 그래서, '도'?
차라리 살 얘기(3킬로가 쪘네, 1킬로가 늘었네, 어차피 줄었단 얘기는 없는), 살 안 찌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맥주 안주 레시피 퍼레이드, 김장에 쓸 맛난 새우젓의 원산지 겨루기 따위는 훗 하는 미소쯤 품을 수 있었건만. 자식을 두고 자랑 아닌, 자랑인 듯, 자랑 같은, 이처럼 겉도는 대화라니. 그 이면의 헛헛함이 비쳐 안타깝다. 상대와 비슷한 감정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증언' 보태기는 생존 본능이라고 한다. 같은 무리에 속해 있음을, 나 역시 너와 다르지 않음을 계속해서 어필해야 한 편이 되고 그래야 조직의 힘을 등에 업고 낙오의 위험을 낮추어 보려는 본능의 발현. 본능에 따랐으니 부디 안정감이나마 챙겨가면 좋으련만 한증막을 나서는 세 분의 모습은 영 허무해 보인다. 훈훈하지 못하고 화끈거리기만 한 대화는 한증막의 열기 탓이었을까, 남들 눈에 '잘나가는' 자식 '썰'만 들이민 탓이었을까? 이왕 본능을 따르려거든 본능에 '충실'하자.
'적성'도 걸고넘어질 참이다. 국회 일자리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는 정 씨의 딸. 그런데 사례에서는 '쓰레기' 동료 혹은 상사가 거론된다. 적성이란,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 또는 그와 같은 소질이나 성격'(출처: 네이버 국어사전)을 말한다.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는 회의 문화에서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사람은 상사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걸 최고의 능력으로 치는 조직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술 따르기'와 같은 지시 같지 않은 지시를 내리는 조직을 떠날 때는?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거나 위력을 동원한 성추행을 눈감는 조직을 떠날 때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이꼴저꼴 보기 싫어서,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같은 표현을 써줘야 하지 않을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건 얼핏 무색무취인 듯 들리지만 사실 말흐리기다. 내부고발은 못할지언정 조직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때그때 정확히 짚었음 싶다. 떠나면 그만, 내 알 바 아니다 덮지 말자.
2023년 7월 16일 일요일
김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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