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여름휴가를 다녀와 4일간 출근, 내일부터 2차 휴가를 보낸다. 2박 3일과 3박 4일은 차이가 크다. 보통은 1박 2일, 길어야 2박 3일의 여행을 즐겨온 터라 3박 4일 여행이 힘에 부친다. 거제도와 송정 서핑지에서 놀다 마지막 날 밤을 해운대 (남편) 누나 집에서 지냈다. 토요일 낮 집에 도착했는데 하루면 풀릴 줄 알았던 여독은 어제, 수요일까지 나를 괴롭혔다. '마술'이 겹친 데다 예정에 없던 산책로를 가장한 등산로를 오른 것이 화근이었을까, 송정 해수욕장에서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보낸 반나절간 입은 일광화상 탓이었을까. 양쪽 편도선이 부을 대로 부어 유튜브를 뒤졌다. 화상으로 피부가 손상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증상이 나타난단다. 3박 4일, 마술, 등산, 파도, 화상. 이들이 합세하여 몸은 엉망. 붓기와 몽롱함에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당장 내일, 금요일 아침 제주도 비행기를 탈 예정. 이 상태로 괜찮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두 뼘으론 어림도 없을 만치 부어오른 종아리를 부여잡고 난감해했다. 이어 오늘, 최근 기상시간으로 자리잡은 새벽 다섯 시. 습관처럼 눈을 떴다. 아, 태풍. 태풍 '카눈'이 올라온댔다. 몸이 무거워 운동에 꾀가 날 때는 궂은 날씨가 더러 야속하고, 자주 고맙다. 핑계 보따리를 제공해주니까. 일단 누워서 눈만 뜬 채 검색. 샤오미 미밴드 날씨는 비. 네이버 김포 날씨는 구름. 어제 무거운 몸에 털어넣은 적지 않은 소주량의 무게를 이중으로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침대를 벗어난다. 창문을 열어 손을 뻗어본다. 상당히 적극적인 의지의 표명. 비가, 내린다. 부슬부슬. 다시 고민. 밖으로 나가 걸을 것인가, 거실 워킹패드에 오를 것인가. 이쯤되면 반은 성공. 벌써 뿌듯하다. 다시 누워 유튜브를 때리거나 사천성(넷마블 게임)에 돌입하는 선택지는 몰아낸 것이므로.
여독과 감기, 마술을 이유로 매일 만보 걷기 도전을 4일이나 접어두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이틀째 고삐를 쥐는 중. 워킹패드에서 만보를 찍었다. 신통치 않다. 여전히 몸은 천근만근. 밖에서 걸을 때보다 땀도, 흥도, 적다. 운동은 열심히 해도 플러스 1, 생전 안 해도 마이너스 1. 플러스 10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어지간해선 마이너스 10으로 추락하지도 않는다. 건강 면에서나 다이어트 면에서나. 쾌락주의적 측면에서의 효과가 제일인 듯 싶다. 약간의 고통 이후의 '보람', 그리고 쾌락의 '배가'. 몇 달 전부터 만보 걷기에 도전하면서 보람과 배가의 맛을 음미 중이다. 훌륭하다. 맛도, 나도.
'생리전증훈군'은 꽤 고달프다. 10년에 한번 쯤 산부인과를 찾아 물어본다. 방법이 없느냐고. 생리전증후군의 원리는 이렇다. 배란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 그에 따른 몸의 반응. 원리는 간단하나 몸은 간단치 않다. 호르몬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몸의 반응은 천차만별. 의지와 무관하다. 호르몬의 변화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얼마나 받아들이느냐를 두고 몸 안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식욕이 폭발하기도, 몸 전체가 부어오르기도,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구내염이 돋기도, 거스러미가 일기도 한다. 몇 십년 째 매달 경험하면서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긴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독한 수준이다.
어제까지 그랬다. 그랬으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독한 기운에서 하루아침에 벗어난다. 말 그대로 '마술'이다. 마술처럼 한 달에 일주일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태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때가 되면, 마술처럼 풀려난다. 마술 첫날 느끼는 무거움만큼 마술 아닌 첫날 느끼는 가벼움도 극적이다. 지금의 컨디션이라면 이번 제주 여행은 매우 산뜻할 전망이다. 이때 카눈. 태풍으로 오늘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 모두 이륙 취소. 인생, 기똥차다!
생리전증후군. 해결법은 있다. 호르몬제 투여. 감내하고 감내하다 10년쯤 되면 이 해결법을 까맣게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산부인과를 찾는다. 명쾌하지만 불가능한 방법을 듣고는 다시 감내하기에 돌입한다. 모야모야병 환자에게 호르몬제 투여란 그림의 떡. 죽을 각오로 먹어야 하는 떡이다. 혈액을 응고시킬 수 있고, 혈관이 막힐 수 있고, 혈관이 막히거나 얇아져 있는 모야모야 환자는 죽을 수 있다. 생리전증후군을 겪으며 느낀다. 후, 살아 있군!
2023-08-10 목요일
김포 하성로터리 인근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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