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쪽
'썩는다' '부패한다'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현상이다. 그런데도 절대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것이 돈이다. 돈의 그 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작아도 진짜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이런 진리를 깨달은 우리 부부는 돈도 '부패'하게 하고, 경제도 '부패'하게 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69쪽
일(노동력)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다. ......
이스트를 사용해 누구라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빵 값이 싸지고 빵집 노동자는 싼 값에 계속 혹사당하게 된다. 또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단순해져서 빵집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빵집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과 수고를 들여 빵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정당한 가격을 매겨야 한다. 제빵사는 본인의 기술을 살린 빵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79쪽
넓은 의미에서 보면 발효도 부패에 포함되며, 이 두 가지 모두 미생물에 의한 유기물의 분해현상이지만, 인간에게 유용한 경우에는 발효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패라고 부른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균의 작용을 통해 자연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108쪽
장사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곳을 우리 부부가 선택한 이유는 가쓰야마에 숨어 있는 커다란 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아사히가와 강과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일본 술 양조장이 바로 그 보석이다.
발효와 양조 문화가 면면히 이어져온 이곳은 분명 균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장인들이 사는 곳이라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넘친다. 또 우리가 빵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고택이 죽 늘어서 있기도 하다. 여기라면 우리의 빵을 예전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132쪽
"비료를 안 준 작물은 살기 위해서 흙에서 양분을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작물 스스로가 자기 안에 숨은 생명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살아보려 한다는 거야. 그 생명력이 자손을 남기기 위한 과실이나 씨앗으로 결실을 맺는 거지. ...... 우리같이 자연재배를 하는 농사꾼들은 바로 그런 매커니즘 때문에 작물에 강한 생명력이 깃든다고 믿는다네."
" 비료도 농약도 안 쓰면 농사꾼은 무슨 일을 하죠?"
"...... '자란다'는 게 포인트야. 비료를 줘서 키우는 게 아니고 자라게 하기 위한 땅을 만드는 거지. 환경을 만들어주는 작업, 그게 자연재배의 핵심적인 일이야."
137쪽
천연균은 작물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본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생명의 활동을 잘 따른 음식을 선별해서, 자연의 힘으로 억세게 살아가는 것들만을 발효시킨다. 천연균은 살아가는 힘이 없는 것들을 부패시킨다.
138쪽
균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화려한 방식으로 수확했는지 하는 상표가 아니라 그 작물이 자연의 활동에 따랐는지 여부다. ......
"방법은 하나예요. 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죠. 자연환경에 지극히 가깝게 만들어줘봐요. 플라스틱 용기도 쓰지 말고요." ......
균의 마음 그대로 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따르는 방식이기도 하다.
146쪽
요컨대 균과 재료는 모두 외부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난 그 고장 것끼리 어울려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다.
173쪽
시골에는 도시의 불합리함은 없지만 그만큼 편리함도 없다. 생활을 꾸리기 위한 조건은 도시보다 까다롭다. 돈만 있으면 되고, 힘들면 남에게 맡기면 되는 생활이 시골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176쪽
자연 속에서 작물을 키워주는 생산자에게는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는 그 재료를 정성껏 가공해 빵을 만들며, 고객에게는 정당한 가격으로 판매한다. ...... 우리도 생산자의 생각을 빵에 반영하고 싶고, 생산자에게도 우리 빵을 이해시키고 싶다. 만든 상품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 눈에 보이면 생산자의 마음자세와 일하는 방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178쪽
'마을 조성'이라거나 '지역 활성화' 같은 명분을 내건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 지역의 바깥에서 보조금을 끌어와 도시에서 유명인을 불러 불꽃놀이 같은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고, 재료를 조달해 지역 특산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지갑을 불리는 사람은 이벤트를 벌인 도시 사람들이고, 판촉과 마케팅에 능한 도시의 자본이다. 사용된 보조금도 도시에서 온 사람들 손으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바깥에서 비료를 퍼와서 속성 재배해 지역을 억지로 키우려 해본들 지역이 잘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비료를 투입하면 할수록 지역은 말라갈 뿐이다. 토양이 메마르면 작물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랄 수 없어 비료를 필요로 하게 된다.
193쪽
'다음번 투자를 위해 이윤은 꼭 필요하다.'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결국 생산규모를 키워서 자본을 늘리려는 목적 때문에 나온 말이다. 동일한 규모로 경영을 지속하는 데에는 이윤이 필요치 않다. ...... 이윤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미, 즉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우리는 종업원, 생산자, 자연, 소비자 그 누구도 착취하지 않을 것이다.
210쪽
개성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든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진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원래 가진 인간성의 차이가 기술과 감성의 차이, 발상의 차이로 이어질 때 나타나는 것이며, 필연적인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221쪽
기술을 잇는다 해도 그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기술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려받은 기술을 발휘하기 위한 자연도 함께 계승하는 지속 가능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224쪽
빵에 대해 더 파고들고 기술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빵만 보이고 세상이 안 보이게 되면 어떤 방을 만들어 제공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음식이나 술, 공예품, 음악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자극을 받아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고, 지금보다 나은 재료가 없을지 안테나를 높이 세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찾아가고, 다양한 책을 읽을 시간도 필요하다.
227쪽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주제넘은 소리다. 다만 우리는 사람이 자랄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려 한다.
231쪽
우리는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지키고 싶어서, 생활과 일이 하나가 된 인생을 살고 싶어서 빵이라는 무기를 들었다. 천연균과 자연재배를 만나서 작은 빵 뒤에 펼쳐진 발효라는 이름의 대우주와 그 매력을 알았다.
232쪽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 돈을 쓰는 방식이야말로 사회를 만든다.
[네이버 책]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와타나베 이타루
'몽자크의 책갈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잡기-2022-066] 교양 브런치 - 강준만 - 별 셋 - 1203 (0) | 2022.12.03 |
---|---|
[책잡기-2022-065]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 박상규 - 별 셋 - 1130 (0) | 2022.11.30 |
[책잡기-2022-063] 월든 - 헨리 데이빗 소로우 - 별 다섯 - 1123 (0) | 2022.11.23 |
[책잡기-2022-062]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 홍은택 - 별 셋 - 1119 (0) | 2022.11.19 |
[책잡기-2022-061] 오늘도 휘게 - 샬럿 에이브러햄스 - 별 둘 - 1116 (0) | 2022.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