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쪽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머리로 생각해낸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숨 쉬는 공기 중에 있었다고나 할까.
78쪽
하지만 종교라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한 일들로 점철된 듯했다. 가령 기도서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두려워하는 존재를 어떻게 사랑한단 말인가?
78쪽
무엇을 느끼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감정이 명령으로 생기는 건 아니었다. ...... 올바른 자질을 갖추고 합당한 감정을 갖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옳은 것과 가능한 것은 결코 일치하지 않는 듯했다.
111쪽
총을 든 백인인 내가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 무리 앞에 서 있었다. 겉보기에는 내가 연극의 주인공이었지만, 실제로는 뒤에 있는 노란 얼굴들의 의지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우스꽝스러운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백인이 폭군이 되면 그가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라는 사실을.
124쪽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고, 거기서 결코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다스리고, 미숙한 단계에 정체되거나 삐딱한 심기에 갇히는 것을 피하는 게 작가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초기에 받은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글을 쓰겠다는 충동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다.
125쪽
생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는 글, 적어도 산문을 쓰는 동기를 크게 네 가지로 본다. 이 동기들은 작가마다 존재하는 정도가 다르고, 한 작가라도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정도가 달라진다. 그 네 가지 동기는 다음과 같다. 1) 더없는 자기중심주의 ...... 2) 미학적 열정 ...... 3) 역사적 충동 ...... 4) 정치적 목적
131쪽
내가 할 일은 내 안에 뿌리내린 호불호를,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근본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과 화해시키는 것이다.
133쪽
책을 쓰는 것은 소름끼치게 진 빠지는 투쟁이다. 고통스러운 질병을 한바탕 길게 앓는 것과 같다. 저항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무슨 악령에 씌지 않고서는 절대 떠맡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그 악령은 본능이다. 아기가 관심을 끌기 위해 악을 쓰고 울어대는 것과 같은 본능이다.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지워버리려는 부단한 투쟁 없이는 읽을 만한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134쪽
내 작업 과정을 돌아보니, 내가 무기력한 책을 쓰고 미사여구와 의미 없는 문장과 장식적 형용사와 객소리에 빠졌을 때는 예외 없이 내게 정치적 목적이 결여됐던 때였다.
166쪽
인간은 '대비'라는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행복을 묘사할 수도,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는 듯하다. 천국이나 유토피아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 천국은 무한한 휴식의 장소, 황금으로 뒤덮인 곳으로 묘사됐다. 그때는 보통 사람들이 과로와 빈곤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 하지만 '영원한 행복'을 묘사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했다. 행복이 영원해지는 순간, 대비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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