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쪽
'내 취향의 책'을 찾는 노하우가 필요한 시대다. 내가 찾은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방법은 단순하다. ...... 한 30페이지 정도 읽어봐서 재미있으면 사서 읽곤 한다. 가끔 실패할 떄도 있지만 그 정도 읽어서 읽을 만했던 책은 마저 읽어도 후회 없는 편이다. 짜샤이가 맛있는 중식당은 음식도 맛있더라. 예외 없이. 신기하게도.
84쪽
책은 도끼일 수도 있고 심심풀이 땅콩일 수도 있고 잠을 재워주는 수면제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책마다 사람마다 다양한 용법이 있기 마련이다.
85쪽
나이를 먹을수록 하루도 짧고 일 년도 휙휙 지나가고 남아 있는 나날이 벌써 손에 잡히는 것만 같다. 내일이 없는 사람마냥 여가가 생겨도 그저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먼저 이리저리 찾다가 오히려 아무 재미도 없이 흘려보내고 말 때가 많다.
114쪽
내가 감히 이렇게 책도 쓰고, 신문에 소설도 쓰고, 심지어 드라마 대본까지 쓰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저 두 마디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내가 김영하도 김연수도 황정은도 김은숙도 노희경도 아닌 걸 잘 알지만, 뭐 어때?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는 나만의 '풋내기 슛'을 즐겁게 던질 거다.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은 거들 뿐.
123쪽
인간 심리라는 것이 묘해서 가장 바쁠 때 오히려 여가에도 독서나 운동, 글쓰기 등 생산적인 일을 하게 되고, 한가할 때는 그냥 소파에 늘어져 티브이만 보게 된다. '상대적 선호의 법칙'이랄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하기 싫을수록 그 외의 모든 일들이 평소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132쪽
그런데 80년대 대학가의 조급함은 정답을 정해놓고는 신입생들을 그곳으로 빨리 이끌려 했다. 그것은 독서가 아니라 학습이다. 독서란 정처 없이 방황하며 스스로 길을 찾는 행위지 누군가에 의해 목적지로 끌려가는 행위가 아니다.
143쪽
소개팅을 생각해보면 된다. 딱 내 취향의 재치 있는 말투로 조곤조곤 작지만 흥미로운 화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과, 뭔가 거창하고 훌륭한 얘기이긴 한데 백만 번은 이미 들은 듯한 얘기를 진부하고 뻔한 말투로 반복하는 사람 중에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153쪽
나는 존 스튜어트 밀, 로크, 루소를 통해서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를 배운 것이 아니라 비틀스, 존 레넌, 짐 모리슨을 통해서 배웠다.
167쪽
책 수다도 많이 떨고 여기저기 독후감도 올리고 하다보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의 답은 '대충 읽는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 위주로 읽는다'다. 편식 독서법이랄까. ......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부위는 천차만별. 난 내 취향의 책을 골라서, 그 책 중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은 휙휙 넘기며 읽는다.
175쪽
즉각적인 반응이 특징인 뉴미디어 시대에 멈추어 생각하게 만드는 독서의 특징은 큰 의미를 갖는다.
178쪽
평생 책을 즐겨 읽었지만 자기가 쓴 책을 읽는 느낌은 뭔가 다르다. 그건 두세 살짜리 아이가 방금 싼 큼지막한 자기 똥 한 덩이를 내려다보며 뿌듯해하는 마음에 가깝다. 엄마! 고구마 똥 쌌어! 엄청 커!
184쪽
좋은 글은 결국 삶 속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문장 하나하나가 비슷하게 뛰어나더라도 어떤 글은 공허하고, 어떤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192쪽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관습에 따라, 지시 받은 대로, 조직논리에 따라 성실하게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악의 실체였다.
195쪽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204쪽
시대는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양한 인간들의 오욕칠정을 풍부하게 담아낸 고전은 거울이다. 그 앞에 서는 이들은 누구나 자기의 모습을 발견해내고 마는 것이다.
219쪽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다. 오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감이야말로 가장 냉혹한 범죄자일 수 있다.
228쪽
인간이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유희의 축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내곤 했다. ...... 미래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258쪽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야기하는 교수님을 보며 든 두 가지 생각. '아, 아름답다' 그리고, '아, 그런데 쓸데없다'. 꺠달음의 순간이었다.
259쪽
쓸데없이 노는 시간의 축적이 뒤늦게 화학 작용을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네이버 책] 쾌락독서 - 문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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