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불가능한 기면병(기면증), 장애 아니니까 보상 無

 

서른 살 A 씨가 어디론가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곧바로 졸기 시작한다. 버스가 덜컹거리고 시끄러워도 고개는 더욱 더 깊숙히 떨궈진다. 버스에서 내리는 건 까맣게 잊었다. 보다 못한 취재진이 A 씨를 깨웠다.

 

A  30세 남성, 신종플루 예방접종 부작용 피해자 

거의 항상 지나친다. 아침에 버스 타서 네 정거장 만에 내려야 되는데, 매번 못 내리고 멀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회사엔 늘 지각이다. 그전에는 지각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다.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스타일인데, 지금은 그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다. 이제 아예 돗자리를 들고 다닌다. 길을 걷다가도 졸음이 쏟아지면 그냥 자 버린다.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수시로 졸았다. 처음에는 단지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수시로 졸음이 몰려오는, 이른바 기면증이라더라. 어느 날 생전 안 하던 지각을 해 병원을 찾았다. 그때 처음 이 병에 대해 알게 됐다. 남들 보기엔 좀 웃길 수도 있다. 지각을 했다고 병원에 가는 사람은 없으니까.

 

인식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기 때문에, 잠든 시간이 예를 들어 30분이면 30분이 공중에 떠 버리는 거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내가 오늘 뭘 했는지도 잘 모른다. 필름이 끊기는 거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운전 중에는 짧은 신호 대기 틈에 잠이 들기도 한다. 뒤에서 막 경적을 울려 대도 못 일어나니까 경찰까지 왔는데, 아침 시간대라 음주운전을 의심했는지 음주측정기를 대고 불어 보라 하더라. 작년에만 교통사고가 열 번이나 났다. 그런데 이렇게 자는데도 늘 피곤하다. 오히려 밤엔 잠을 잘 못자기 때문이다. 한두 시간마다 잠에서 깨고, 잘 때는 자주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을 꾼다.

 

012345678

김지현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  기본적으로 램수면(얕은 잠) 장애이기 때문에 그런 증상들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 굉장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월요일 밤, 집에서 TV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한참을 웃던 A 씨가 갑자기 픽 고개를 떨군다. 모든 근육에서 힘이 빠지는 기면증의 또 다른 증상인 '탈력 발작'은 기분이 좋아지거나 화가 날 때처럼 감정의 변화가 있을 때 주로 나타난다.

 

A   30세 남성, 신종플루 예방접종 부작용 피해자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연체동물처럼 풀린다. 모든 근육의 힘이 다 풀려 버리는 거다.

 

홍승철  가톨릭대학교 성 빈센트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신호등을 건너다가 오랜만에 친구를 우연히 만난 한 환자는 너무 반갑고 기쁜 나머지 탈력 발작이 일어나 길 한가운데에 쓰러져 친구가 업고 병원에 온 사례도 있다.

 

A 씨는 왜 이런 희귀한 기면병에 걸린 것일까? 그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3년전. 회사에서 단체로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맞은 뒤 3주 만이었다. 처음엔 A 씨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인정 받았다. 실종플루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기면증이 인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A 씨는 어렵게 부작용 피해로 인정 받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보상이 있는 건 아니다.

 

A 씨의 가족   기면증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장애도 아니라고 하더라. 외국은 장애로 인정이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장애로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배려나 혜택도 없다.

 

A   30세 남성, 신종플루 예방접종 부작용 피해자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보니 멀쩡하게 잘 다니던 대기업도 그만둔 상태다. 앞으로 살아갈 걸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차라리 예방접종 부작용이 아니라면 좀 덜 억울하고, 심적으로 지금처럼 힘들진 않았을 텐데, 참 난감할 따름이다. 책임과 보상을 도대체 어디에 물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중생인 B양도 기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B 양의 어머니   전에 살던 동네는 인도와 차도가 구분이 없던 데였는데, 대형트럭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도 졸면서 걷기 때문에 인식을 못하는 거다. 정말 많이 위험했다. 2009년도에 예방접종을 했으니까, 2009년 이전과 이후에 기면병 발생 빈도 추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역학조사를 나라에서 직접 나서서 진행해 줬으면 좋겠다.

 

성적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B양 증세가 신종플루 예방접종 부작용 때문인지는 심의를 맡길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신증플루 예방접종 때문에 기면증이 생겼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 중국과 핀란드 등에선 신종플루가 유행했던 시기에 기면증이 4~5배 급증했다는 논문도 있다.

 

홍승철  가톨릭대학교 성 빈센트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신종플루 백신을 맞았던 사람들 중에 기면병에 걸린 사람들이 더 증가한 걸로 생각된다. 어떤 경로, 어떤 매커니즘을 통해 기면병이 발병했는지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심장 정지, 후유증에 대한 보상 無

 

작년 10, 태어난 지 한 달 된 C 씨의 아들은 서울의 보건소에서 B형간염과 BCG 예방접종을 맞았다. 그런데 주사를 맞자마자 갑자기 아들의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숨을 쉬지 않았다.

 

C   소아 예방접종 피해자의 부모   그때 이미 청색증이 왔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랗게 확 변하더라. 숨도 멎고, 심장비대도 있는 데다가 폐동맥 고혈압이 가장 심했다. 그게 터지면 곧 사망할 수 있는데,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하니...

 

C 씨는 아이를 데리고 보건소에서 급히 나와 근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아이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처럼 40일을 버티고 다행히 살아났다. C 씨 아들의 경우 그나마 보건소에 있을 때 부작용이 발생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꽤 오랫동안 심장이 멈춰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생길지도 모를 후유증에 대해서는 전혀 보장 받은 바가 없다.

 

C   소아 예방접종 피해자의 부모   퇴원하고 나서도 계속, 항상 불았했다. 병원에 있을 때도 괜찮다가 갑자기 심장 정지가 왔기 때문에 안심할 수가 없다.

 

예방접종 후유증으로 장애 1급 판정, 역시 보상 無

 

실제로 나중에 후유증 때문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평소 여느 아이들처럼 밝고 해맑아 보이는 중학생 D 군의 자는 모습을 지켜봤다. 조용히 자던 D 군이 갑자기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다. 다리가 뻗뻗하게 굳고 온몸에 마비가 온 것이다.

 

D 군의 아버지   화면상 보이지는 않지만, 잘 보면 이때 눈도 뜨고 있다. 의식만 없을 뿐이다. 이렇게 마비가 올 때는 뇌파도 상당히 복잡해진다.

 

경기가 끝나자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이 든다. 그리고 14분 뒤, 또다시 발작이 시작된다. 이번에도 온몸이 한참동안 경직됐다 풀렸다. 그리고 15분 뒤, 또다시 몸이 마비된다. 난치성 뇌전증, 이른바 난치성 간질이다. 태어난 지 7개월 되던 해 DPT 예방접종을 맞고 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16년 째 고통을 겪고 있다.

 

D 군의 어머니   16년 동안 한 번도 아들하고 떨어져 자 본 적이 없다. 항상 팔베개를 해주고 자는데, 그 고통을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다. 차라리 손가락이 벴다면 약이라도 발라줄 텐데, 이 병은 그냥 지켜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아들이랑 같은 백신을 맞은 다른 아이가 4개월 뒤에 사망하면서 우리도 이 부작용에 대해 알게 됐다. 모 제약회사 제품이었다. 그런데 제약회사, 의사, 보건당국에서 책임을 못 지겠다고 하더라. 우린 나라에서 예방접종 하라고 해서 한 죄밖에 없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예방접종 부작용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일부 치료비 외엔 어떤 보상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D 군의 상태는 해가 갈수록 나빠졌다. 지능과 인지능력도 떨어졌고, 간질도 난치성으로 악화됐다. D 군 부모는 8년 동안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예방접종의 부작용으로 보이긴 하지만, 백신 자체의 안전성이나 보건소의 과실을 입증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몇 년 뒤, D 군은 장애 1등급을 받았고 또다시 소송해 이번엔 승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다시 항소했고, 16년째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D 군의 어머니   부모들이 정말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맞힐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게 하려면, 우리가 끝까지 이 일을 놓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이다.

 

최근 5년 간 3,970여 명의 예방접종 부작용 신고자 가운데

정부 보상을 받은 피해자는 220여 명으로 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백신의 부작용이나 병원의 과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방접종의 함정 | 2013-04-07 | 시사매거진2580 Link

 

Posted by 몽자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