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석 달 사이 과도한 업무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세 명의 사회복지 공무원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입만 열면 복지 강화를 외치고 있는 요즘, 복지정책의 최전선은 어떤 모습일까?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하루
오전 8시, 경력 13년 차인 사회복지 공무원 A 씨는 하루 300통 넘게 쏟아지는 상담 전화로 일과를 시작한다. A 씨가 다른 직원 두 명과 함께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 대상자는 무려 9천여 명. 그중에서도 막무가내 민원인들은 그녀를 더욱 지치게 한다. 긴급상황도 수시로 발생한다. 집에서 점심을 싸오지만 그마저도 못 먹기 일쑤다.
저녁 6시가 넘으면 동료들 모두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서 밀린 전산작업을 시작한다. 게다가 복지행정업무 정보시스템인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 자주 오류가 나 일 처리는 한없이 더디다. 주말도 없이 이어진 야근이 벌써 두 달째다. 지난달엔 초과 근무만 100시간을 했다. 고3, 고1 두 딸의 엄마지만 정작 본인 가정의 복지는 포기한 지 오래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건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 역시 A 씨처럼 연일 격무에 시달렸다. 두 달 전, B 씨는 38살의 나이에 늦깎이 공무원이 됐다. 그런데 그가 미처 업무를 파악할 새도 없이 산더미 같은 일이 쏟아졌다. 유서에는 고인이 느낀 절박한 고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는 숨지기 전 자신의 공무원증을 불태웠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기초수급자, 장애인, 노인, 한부모가정 등의 기존 일에, 올해 들어 무상교육이 확대되고 저소득층 교육비 신청까지 더해지면서 업무가 폭증했다. 심지어 국토해양부의 임대주택공급, 소방청의 재난취약가구 안전점검, 방송통신위원회의 장애인방송 제작지원까지 무려 13개 부처 292개 업무가 복지라는 두 글자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에게 집중된다. 소위 깔때기 현상이다. 이러다 보니 정작 담당자조차 내용을 모르는 상황도 벌어진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 교수 曰 사회복지 전담 인력이 OECD 국가들의 경우 평균 12명이다. 우리나라는 겨우 0.4명이다. 양적으로 이렇게 열악한데다가, 정부가 많은 복지정책을 급격히 쏟아내고 있어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기계처럼 돕고 싶진 않았다
예비신부로 신혼집까지 계약해 둔 사회복지사 C 씨는 근무하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성악을 전공해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며 그녀는 사회복지사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실제 업무는 낮에는 민원 전화, 밤에는 컴퓨터 서류 작업의 연속이었다.
C 씨의 전 남자 친구 曰 처음에는 집도 이렇게 저렇게 꾸밀거라면서 들뜬 모습도 보이고 했는데, 언젠부턴가 나 안되겠다, 괴롭고 힘들어서 못 하겠다, 차라리 사라지면 어떨까, 죽고 싶다,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의 좋은 면만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거다. 동사무소에 싱크대가 있는데 거기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 울곤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정책은 정부가 내놓고 욕은 사회복지사가 먹고
찾아가는 복지를 하기엔 현장의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대다수의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찾아오는 복지만도 버겁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사는 지치고 대상자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사회복지 공무원 수를 2천 3백여 명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사회복지사들은 사람 수만 늘리는 미봉책이 아니라 보건소처럼 복지 업무만 전담하는 별도 조직을 신설해 복지 전달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수경 사회복지행정연구회 회장 曰 시간이 부족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어 줄 수도, 손을 잡아 줄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결국 열심히 일해도 불친절한 공무원이 돼 테러를 당하고 욕을 먹는다.
올해 우리나라는 복지 예산 100조 시대에 들어섰다. 예산도, 또 그만큼 정책의 가지 수도 늘어났지만 정작 복지의 손발 역할을 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가슴은 격무에 짓눌려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 우리는 깔때기 | 2013-03-31 | 시사매거진2580 Link
대한민국 그림자 MONZAQ
'대한민국 그림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대가 벌이는 성매매, 범죄자도 피해자도 십대 (1) | 2013.04.10 |
---|---|
예방접종 때문에 장애1급이 됐는데도 정부는 16년째 보상 거부 중 (0) | 2013.04.08 |
자살로 혼동, 타살로 오해, 은폐되는 자기색정사 (0) | 2013.03.28 |
쉬쉬하는 사이 비극은 반복된다 - 친족성폭행 (0) | 2013.03.25 |
성범죄자 1000명 중 7명, 100명 중 단 1명만 감옥에 가는 게 우리나라 (0) | 2013.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