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쪽
"모두 나를 쳐다 봐!"가 질투의 정서라면, "너만 나를 봐주면 돼!"는 경쟁심의 정서다. 애정결핍은 '사랑의 양'이 아니라 '사랑의 질'에 결부된 문제다. 불특정 다수에게 많은 양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애정결핍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처럼 더 큰 애정결핍에 시달릴 뿐이다.

217쪽
그 사람과 직접 만났을 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생긴다면 사랑이다.

219쪽
논리구조상, '사랑'이 원인이고 (사랑을 유지하려는) '의지'는 결과인 셈이다. 이는 너무 자명하지 않은가? 사랑을 해서 사랑의 의지가 생기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의 의지가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 그러니 의지 부족 때문에 사랑이 빨리 끝난다는 말은 얼마나 황당한가. 이는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말한 오류에 불과하다.

233쪽
'대담함'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도해보는 것으로 시작되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으로 완성된다.

248쪽
기독교의 신과 스피노자의 신, 두 가지 '신' 중 어느 쪽이 인간에게 더 유익할까? 단연 스피노자의 신이다. 기독교의 신은 인간을 단순한 피조물로 전락시킨다. 즉 인간을 끊임없이 주인을 찾아 헤매야 하는 예속적인 인간으로 고정시킨다. ...... 스피노자의 신은 다르다. 인간이 신은 아니지만 신의 속성을 가진다. ......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성해나갈 수 있는 인간은 예속되지 않는다. 자유롭다. ...... "신을 넘어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라!"

259쪽
그는 왜 이렇게 크게 또 자주 후회하는 걸까?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자면, 과도하게 "자기 자신을 자유롭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무한한 자유가 있다는 그 과잉된 자의식이 후회의 진짜 원인이다. ...... '후회'를 잘 다루는 방법은 정당한 후회를 하는 것이다. 어떤 슬픔이 닥쳐왔을 때,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던 부분만큼만 후회하면 된다. 이는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님을,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조건과 상황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능하다.

270쪽
'희생'을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겨우 '슬픔'을 줄이는 데서 멈춘다. 하지만 '헌신'하게 되면 '슬픔'(희생)을 줄이고 동시에 '기쁨'(경탄+사랑)을 크게 한다. '헌신'보다 더 큰 자기 이익은 없다. ...... 경탄스러우면서 사랑하는 존재를 찾아야 한다.

282쪽
'오해'(멸시, 자기비하, 거만)는 '오해'(과대평가)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오해 때문에 삶이 힘들 때, 오해로부터 벗어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때 우리는  더 큰 오해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차라리 과감하게 오해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과대평가'라는 기쁨의 오해 속으로 말이다. 

288쪽
진정한 '자기애'가 있는 이들은 화장, 옷, 신발, 성형수술 같은 겉모습 뒤로 숨지 않는다. '자기애'가 없는 이들만 그런 겉모습 뒤로 숨는다. 이는 당연하다. 자신을 사랑하는(자기만족, 자기애) 이들은 위축될 일이 없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은 쉽게 위축되니까.

289쪽
'어둠'(단점, 무능, 추함)에 대한 칭찬은 반드시 사랑이다. 오직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상대의 어둠마저 밝게 보이니까 말이다. ...... '어둠마저 밝히는' 칭찬을 흠뻑 맞고 자란 아이는 '자기애(자기만족)'를 갖고 있다. ...... 오직 '어둠마저 밝히는' 칭찬만이 '자기이해'를 넓힌다. 

310쪽
지혜로운 삶은 '용기'와 '관용'이 있는 삶이다. ...... 일차적으로 '용기'를 가지고 '나'의 기쁨을 크게 하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용'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지 않고 기쁨을 나눠주면 된다. 그렇게 '나'에게 되돌아올 기쁨을 크게 하면 된다. 

315쪽
'감당할 수 있는 불행'(넘어지거나, 버스가 오지 않거나, 흙탕물이 옷에 튀는 불행)이 별일 아닌 이유가 무엇인가? ...... 작은 불행이기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기에 작은 불행이다.

328쪽
이런 공통개념을 가진 이는 이해 못 할 일이 적기 때문에 '나쁜 감정'(탐식, 짜증, 분노, 질투)에 덜 작용 받게 된다. 그래서 '행복'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다.

329쪽
'욕심'을 억제하기 때문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지혜로움)을 누리기 때문에 자연스레 '욕심'이 억제되는 것이다.


[네이버 책] 스피노자의 생활철학 - 황진규

 

스피노자의 생활철학

『스피노자의 생활철학』은 〈더 나은 ‘나’를 위해〉, 〈더 편안한 ‘마음’을 위해〉, 〈더 성숙한 ‘관계’를 위해〉, 〈더 작은 ‘슬픔’을 위해〉, 〈더 큰 ‘기쁨’을 위해〉 등 수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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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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