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생활철학 - 황진규


27쪽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불가사의한 것들 중 하나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타고난 무지를 상태를 유지하는 편이, 전체구조를 파괴하고 새로운 구조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쉬웠기 때문이다." (<에티카>, 제1부, 정리 29, 부록)

28쪽
...... 더 나아가 노숙자,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 지성인은 그네들이 모두 불운이라 할 만한 연결과 마주침의 과정으로 그리된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또 누구에게나 그런 연결과 마주침이 닥쳐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인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생산하는 자연)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타인들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32쪽
자유로울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라는 것을 잘못 '정의'했기에 자유롭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달릴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곳을 향해 달렸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46쪽
인간은 그러한 외부 원인을 모르기에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오해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 의지는 '자유원인'이 아니다. '필연적 원인'이다. 그러니 마음속으로 의지를 수백 번 다진다고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 자신의 의지를 불러일으킬 원인을 찾아나서야 한다. ...... 강한 의지는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따라 흐르는 것이다.

57쪽
어떤 외부원인으로 인해서 자신의 의욕과 욕망이 생겼는지를 물어야 한다.

72쪽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스님의 이 말처럼, 세상의 모든 자연물이 어떤 것을 위해 존재하는 '목적원인'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과잉된 자의식을 조금씩 덜어가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때, 타인 역시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다.

73쪽
자본주의는 자기부정을 양산한다. 어떻게 양산하는가, 완벽한 모델을 통해서다. ...... 하지만 자본주의는 자기부정을 '양산'하지만 '탄생'시키지는 못한다. ...... 그러니 자기부정에 시달리는 이들이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자기부정이 최초로 탄생하는 곳은 어디인가?

97쪽
나쁜 기억은 그때 자신의 신체 상태에 크게 영향받았다는 사실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99쪽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것이다. 신체에 각인되는 새로운 기억, 그 기억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외부 물체들을 피해의식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128쪽
어떠한 감정이든 그것이 내면에 고여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온 감정들을 차분히 응시하고 적절히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감정을 긍정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다. 우리에게 주어진 감정들을 긍정하는 것만이 감정을 잘 다루는 유일한 방법이다.

138쪽
우리는 당당하게 삶의 기쁨을 좇아야 한다. 어쩌면 그것은 수행일지도 모른다. 삶의 주인이 되는 수행.

143쪽
스피노자는 욕망(충동)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삶의 활력이 커지고 그 반대일 때 삶의 활력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153쪽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연물(양태)은 작은 자연(신)이다. 즉, 인간(자연물) 역시 작은 '실체'(자연)라고 할 수 있다. ...... 한 조각의 행동방식(양태)으로 한 사람(실체)를 규정하는 것은 오해다. ...... 하나의 행동방식은 하나의 양태일 뿐이기에, 드러난 양태 모두가 그 사람이기에, 한 사람을 섣불리 예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을 보게 된다. 

161쪽
알콜 중독은 술의 기쁨 때문에 발생한 사달이 아니었다. 절망 때문이었다. 절망, 그것은 중독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다. 중독의 원인은 기쁨이 아니라, 절망의 토양 위에 뿌려진 기쁨이다. 기쁨은 아무 잘못이 없다.

165쪽
불행한 현실 자체와 절망은 아무 상관이 없다. 절망은 불행한 현실을 외면할 때 찾아오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현실을 직면하고 맞설 때 절망이라는 환상은 사라진다. ...... 중독으로부터 해방이란 무엇인가? 어떤 대상을 완전히 끊는 것인가? 아니다.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는 상태가 중독으로부터 해방이다. ...... 중독으로부터의 해방은 절망이라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181쪽
스피노자의 말은 옳았다. "공포 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도 없다." '희망' 대문에 '공포'에 휩싸이고, '공포' 때문에 희망을 갖게 된다. 야박하지만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182쪽
벤야민의 통찰은 번뜩인다. 누군가를 알려면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해야 한다. ...... '그 친구는 늘 내 편일 거야' ...... 우리의 사랑은 모종의 '희망'과 함께 있다. ...... '희망 없는 삶' 그 자체로는 삶을 버틸 수 없다. '희망 없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 삶'이어야 한다. ...... 행복한 삶은 동서고금을 막론해 하나다. 지금을 사는 것!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을 사는 것. ...... 지금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희망 없는 삶, 정확히는 희망 없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193쪽
스피노자에 따르면, 감정은 그 자체로 억제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반대되는 다른 감정에 의해서 억제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 그렇다면 '경멸'의 반대되는 감정은 무엇일까? '경탄'(놀라움)이다. ......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첫사랑을 만났을 때 경탄에 빠졌다. ...... 오직 '경탄'의 대상을 찾았을 때만 '경멸'의 대상으로부터 눈을 떼게 된다. ...... 이제 왜 냉소적인 사람들이 더 자주 조롱을 일삼는지도 알 수 있다. 냉소적인 이들은 어떤 것에도 크게 감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자주 '경멸'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200쪽
스피노자의 '신'은 내재적 원인이다. 즉, 세상 전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서 세상 만물을 만들어내는 그런 존재가 '신'이다. 그 신은 '자연'이다. 정확히는 자연 그 자체, 달리 말해, '자연'이 '자연'되게, '자연'스럽게 하는 어떤 힘, 스피노자는 그 '자연'을 '자연'되게 하는 어떤 힘이 바로 '신'이라고 말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세상 밖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계절을 바꾸고, 꽃, 눈, 바람, 파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세상 안에 있는 자연 그 자체가 바로 자연현상(계절변화, 바도, 바람) 혹은 자연물(새, 꽃, 눈)들을 만든다. ...... 자연 자체(신)는 무한하다. ...... 자연 자체가 신이라면, 신이 피조물(자연물)을 만들어도, 유한자로 전락할 일이 없다. 무한히 만들어지는 자연물 자체가 바로 신(자연)인 까닭이다. '신=자연'일 때만, '신은 만물을 창조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신은 무한하다'는 신의 본성에 그 어떤 모순도 없이 '신'일 수 있다. 스피노자의 신 해체 결론은, '신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 결론은 이것이다. '신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네이버 책] 스피노자의 생활철학 - 황진규

 

스피노자의 생활철학

『스피노자의 생활철학』은 〈더 나은 ‘나’를 위해〉, 〈더 편안한 ‘마음’을 위해〉, 〈더 성숙한 ‘관계’를 위해〉, 〈더 작은 ‘슬픔’을 위해〉, 〈더 큰 ‘기쁨’을 위해〉 등 수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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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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