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지겨움, 김훈



40쪽
늙어서 표정을 잃어버리는 노인들이 있고, 늙어도 표정이 넘치는 노인들이 있다. 그래서 노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생애의 지도이며 궤적이다. 나의 늙음은 어느 쪽인가를 따져보는 일은 진땀 난다. 늙기란 이토록 힘든 사업이다.

99쪽
동서남북은 인간이 현실의 방향을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의 토대를 이루는 자기중심적 시선이 나에게는 인간의 몽매, 그 자체로 느껴진다. 동서남북이란 오로지 물리적 방위 개념이고 거기서 파생된 언어는 위태롭다. 내가 너의 동쪽에 있을 때 너는 나의 서쪽에 있는 것이다. 나의 동쪽이 너의 서쪽이다. 남쪽, 북쪽도 이와 같다. 오른쪽, 왼쪽이 모두 이와 같고, 위와 아래, 앞과 뒤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나는 이 사태를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113쪽
아마도, 자연을 거스르는 것들의 강력함은 그 외형과 구조의 견고함에 의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 강력함은 허약함을 내장하고 있지만, 이 내장된 허약함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일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거대한 허약함을 드러낸다. 자연에 포개지는 것들의 외양은 늘 엉성하고 헐겁다. 그 헐거움은 강력함을 내장한 헐거움이지만, 이 내장된 강력함도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견고하다 혹은 헐겁다는 인간의 말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말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128쪽
명백히 잘못된 것들을 고쳐나가는데, 이처럼 막대한 손실과 갈등을 대가로 치루어야 하는 것이 이른바 발전의 원리인 것인가. 어째서 인간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에 따르지 않고, 아니라고 뻗대어가면서 한 시대를 허송세월하는 것일까. 인간의 말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던 인간들이 어째서 한바탕 '본때'를 보이고 나면 비로소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기어이 '본때'를 보여야 명백히 그릇된 일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그 '본때 보이기'는 또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다른 길은 정말로 없는 것인지, 말의 힘과 말의 소통능력으로 현실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는 없는 것인지......

235쪽
패배의 맥락으로 축구를 볼 때는 개별적 인간이 잘 보이고, 승리의 맥락으로 축구를 볼 때는 인간의 집단이 먼저 보인다.

258쪽
인용이 객관성을 담보한다는 발상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263쪽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떄도 있었지만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 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거다.

 

 

[네이버 책]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현장의 기록!소설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의 세설, 제2권. 저자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칼럼과 에세이 50여 편을 모았다.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해온 저자 특유의 직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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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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