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쪽
이제 이 두 상황을 성찰해보도록 하자. 두 에피소드 모두에 세 명의 인간이 등장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①농인 ②나 ③맹인이, 후자의 경우에는 ①목발 이용자 ②나 ③전동휠체어 이용자가 함께 있었다. 통상적인 범주와 구분법대로라면 누구와 누구가 한 부류의 인간으로 분류될까? 두 경우 모두에서 당연히 (내가 제외되고) ①번과 ②번의 인간이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잠시 장애라는 범주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생각해보자. ①번과 ③번의 인간이 한 범주로 묶일 정도로 정말 그렇게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
...... 농인과 맹인은 중간에 무언가 매개가 없으면 서로 의사소통하기 어렵다. ...... 밖으로 이동할 때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은 목발 이용자와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아니라, 목발 이용자와 나였다. ...... 요컨대 일상생활의 경험이라는 맥락에서든 몸의 차이라는 기준에서든,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로 묶일 만한 객관적인 기준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74쪽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이때 특정한 관계란 다름 아닌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이며,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64쪽
동일한 손상을 지닌 동일한 사람이, 버스 타기라는 동일한 행위를, 어떤 경우에는 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버스를 탈 수 없음'의 원인이 과연 그 사람의 몸에 존재하는 손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원인이란 일정한 경과를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손상이라는 요인은 그대로인데 버스를 탈 수 있기도 하고 탈 수 없기도 하다면, 문제의 원인은 그 사람의 몸이 아니라 바로 버스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37쪽
현재 어떤 장애인이 시설 입소를 선택한다고 할 때, 이는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문화적.경제적인 압력과 조건 때문이지 시설에서의 삶이 좋아서가 결코 아니다.

139쪽
"죽게 만들고 상게 내버려두는" 권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근대사회로 넘어오며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8, 278~279쪽)

140쪽
푸코가 명시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국가권력의 성격 변화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되면서 생산자와 생산수단이 분리된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前자본주의 시대는 기본적으로 생산자인 농민들이 생산수단인 토지에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식량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알아서 먹고사는 자급자족적인 성격의 사회였다. 군주의 입장에서 이것은 그냥 살게 내버려두는 것에 가까웠으므로, 능동적 권력은 죽게 만드는 칼의 권리를 통해 행사되었다. 한편 자본주의로의 전환기를 기점으로 생산자는 생산수단에서 분리되어 무산자가 되지만, 이들 중 고용이라는 매개 과정을 거쳐 자본가가 지닌 생산수단에 간접적으로 결합되지 않는 대중, 즉 상대적 과잉 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이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근대적 권력은 이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 있고, 살게 만들 때 능동적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근대적 의미의 사회복지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51쪽
이처럼 사회 전체를 '경쟁'과 '기업'이라는 키워드에 따라 재편해온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통치 체제는 종신고용 관행의 철폐, 능력별 급여 도입,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복지 축소에 따른 사회보장의 개인화 등과 같은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무한경쟁의 환경을 조성해왔다. 또한 그런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체들은 마치 시장에서 기업이 도산하며 퇴출되듯 가차 없이 사회 바깥으로 내쳐진다. "죽게 내버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통치 메커니즘은 단지 근대적 규율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 즉 시장의 원리와 욕망을 내면화한 채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기의 위험을 관리하는 '자기-경영적 주체'를 만들어낸다. 자기개발서의 적극적인 탐독, '스펙'을 쌓기 위한 시간 쪼개기 형태의 자기 투자, 외모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형수술 및 피트니스fitness-즉 인위적인 적합화-의 대중화, 조기교육과 사교육 투자의 지속적인 증대는 개인과 가족 단위에서 실행되는 자기-경영적 주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280쪽
횡단주의를 실천할 때 유의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옮기기의 과정이 자기중심을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자신의 뿌리내리기와 일련의 가치들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옮기기의 과정이 타자를 동질화하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횡단에서의 동행은 다른 (소수자) 집단의 구성원들과 일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달리 내리면서도 자신과 양립할 수 있는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는 이들과 해야만 한다. 요컨대 횡단의 정치가 추구하는 정치적 조직체는 통 큰 단결을 통해 동질적인 하나가 되는 '공동체共同體'가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공-동체共動體'

304쪽
자본주의의 형성기, 즉 본원적 축적기는 토지에서 쫓겨났지만 새로운 공장 체제의 임노동 관계에 편입되지 못한 소위 '부랑자vagabondage'가 대량으로 양산된 시기였다. ......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구빈원救貧院이다. 서구 사회복지의 역사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바로 그곳. 한영사전에서 '구빈원'을 찾으면 두 개의 영어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poorhouse'이고, 다른 하나는 'workhouse'이다. 구빈원이 운영되던 시기에 실제로 더 많이 쓰인 단어는 'workhouse'였다. 즉 구빈원이란 실상 부랑자들을 일정한 훈육의 과정을 거쳐 임노동 관계로 편입시키기 위해 국가가 운영한 강제노동 수용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일정 시점이 지나자 국가는 효과적인 훈육을 시행하고 나태를 방지하기 위해 구빈원의 수용자들을 분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핵심 목표는 일할 수 없다고 간주된 사람들을 일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서 분리하는 것이었다. 구빈원 밖에서의 구제 조치를 폐지한 영국의 1834년 <개정구빈법>은 빈민들을 분류할 때 아동, 병자, 광인, 심신 결함자defective, 노약자the aged and infirm를 특별히 중요한 다섯 개의 범주로 설정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the disable-bodied(일할 수 없는 몸)'라는 꼬리표를 부여했으며,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잔여적인' 방식으로 'the able-bodied(일할 수 있는 몸)'라는 꼬리표를 부여하고 그들을 노동능력자로 간주했다. 노동능력자들은 그대로 구빈원에 남겨졌고, 아동들은 근대와 더불어 출현한 공교육 시스템(학교)에 맡겨졌으며, 아동을 제외한 나머지 네 범주의 사람들은 별도의 시설로 보내졌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이 네 가지 범주의 사람들이 장애인을 구성하게 되며, 그들이 보내진 별도의 시설이 바로 장애인 수용시설의 기원이 된다. 일할 수 있는 몸을 선별하기 위해 일할 수 없는 몸을 명확히 규정하고자 했고, 이로부터 '장애인'이라는 개념이 '발명invention'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근대사회로의 전환기에 생겨난 장애인이라는 범주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적 노동 체제에서 배제당한 사람들, 즉 '불인정 노동자unrecognized worker' 집단을 가리킨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311쪽
데카르트 이래로 서양 근대철학은 주체/대상, 인간/비인간(자연) 이분법에 근거해 세계를 파악해왔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우주의 중심이라는 나르시시즘적인 인간중심주의는 인간/비인간(자연)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을 다시 인간다운 인간(인격체person)/인간 이하의 인간(비인격체non-person)으로 가른다. 즉 인간중심주의는 자연과 환경을 대상화할 뿐 아니라 인간 이하의 인간에 대한 타자화와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 민족(중심)주의가 타민족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자민족 내에서도 순수한 혈통과 오염된 혈통을 가려내는 민족정화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318쪽
마이클 올리버는 소비자주권주의가 일종의 슈퍼마켓 모델에 기초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슈퍼마켓 모델에서는 공간에 대한 접근성과 장애인을 고려한 물건의 적절한 배치는 물론, 결정적으로는 슈퍼마켓이 어떤 물건을 판매할지를 소비자가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권과 통제권이 실현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320쪽
독거노인이 고독하거나 고립된 삶을 사는 것은 주변에 의지하고 의존할 수 있는 사람, 제도, 코뮨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321쪽
서인도 제도 카리브해 동쪽의 섬나라인 바베이도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율적임을 증명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반드시 타인으로부터 지나치게 자립[독립]적일 필요는 없다. ...... 왜냐하면 집단의 조화는 구성원들 각각의 기여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구성원이 타인으로부터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 베네틱테 잉스타 * 수잔 레이놀스 화이트

325쪽
낸시 프레이저 또한 '의존'이라는 용어의 계보를 페미니즘적으로 재구성한 논문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기까지만 해도] 의존은 비정상과 반대되는 정상적인 조건이었으며, 개인적 특징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였다. 그러므로 의존에는 어떤 윤리적 낙인도 찍혀 있지 않았다. 영국 사전에서든 미국 사전에서든, 적어도 20세기 초반 이전에는 이 용어에서 경멸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사실상 전-산업사회에서 이 단어에 관한 주된 풀이는 긍정적이었으며,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기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의미가 오늘날의 '믿을 만하다dependable'라는 단어를 파생시켰다"고 지적한다. 프레이저의 지적을 따라 우리는 '의존의지'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dependence'나 'reliance'가 '신뢰신용'이라는 의미를 함께 지닌다는 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357쪽
자본 축적을 기본으로 하는 기업에서 '착취'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환상인 것처럼, 통제적 권력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시설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 역시 환상이다. 
...... 시설과 성년후견제도 모두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제도들이 궁극적으로는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보호'하려 한다는 점이다.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8)

363쪽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운동에 접근할 수 있다. 하나가 상식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상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 그 상식이란 '규범적 원칙', '지배적 이데올리기', '법-대전제'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374쪽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매커니즘은 '활동→가치→대가'가 아니라 '활동→대가→가치'다. 즉 어떤 활동이 가치 있으면 대가가 제공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활동이 대가를 바등면 그것이 가치 있는 일로 간주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은 가치 없는 일로, 조금 버는 일은 가치가 적은 일로 여긴다. 반면 억대 연봉을 받는 일은 매우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379쪽
원칙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하고도 보편적인 것으로 제시되어야 하므로, 원칙과 현실 간에는 늘 일정한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간극을 방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소하려 할 때 해석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지게 되며, 그 과정에서 규범적 원칙이 갖는 함의와 실제적 적용 또한 갱신된다. 즉 한 사회의 규범적 원칙과 괴리되는 현실의 '인정질서'에서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하며, 이를 자각한 사람들이 좀 더 정의로운 인정질서를 수립하고자 투쟁을 시작할 때 역사적 발전과 진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381쪽
즉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의 문구나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같은 원칙을 그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로 치부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믿을 때, 이런 원칙과 모순되는 사회 현실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양자를 연결할 때, 그래서 그런 규범적 원칙, 지배적 이데올로기, 법-대전제에 '부응하여' 행동하고 그 결과들을 도출해내려고 집단적으로 시도할 때 저항과 봉기가 발생할 수 있다.

383쪽
따라서 앞서 제시된 '활동→가치→대가'라는 노동에 대한 규범 내지 통념과 모순되는 현실이 존재한다면, 즉 1) 동일한 유형의 활동을 수행하는데도 누군가는 그 가치가 인정되어 대가를 받고 누군가는 그 가치가 인정되지 않아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2) 자신의 활동이 스스로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데도 사회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3) 누군가의 활동이 사실상 가치가 없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데도 대가를 제공받는다면, 이는 인정투쟁이 촉발될 수 있는 충분한 전이론적인 사회 현실과 근거, 즉 불인정과 무시를 수반하는 도덕적 경험이 된다.

385쪽
또한 영국 신경제재단 소속 연구원들의 분석에 따르면, ...... 병원 청소노동자는 임금 1파운드당 10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고 ...... 보육노동자는 임금 1파운드당 8~9.50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반면, ...... 투자은행가는 1파운드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때마다 7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파괴했다고 한다. ...... 청소노동자와 보육노동자의 활동에 대해서는 적어도 그 사회적 가치만큼 대가를 지불하고, 투자은행가의 소득은 사회적 가치의 파괴를 메울 수 있도록 대규모의 환수를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더 상식적이고 정의로우며 우리 사회의 규범에도 맞지 않을까?

392쪽
공통자원commons이란 '우리 모두에게 상속'되었거나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집합적인 자원, 따라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로 전환될 수 없는 자원을 말한다. 전자의 예로는 공기, 물, 토지, 숲, 바다 등과 같은 자연의 창조물을, 후자의 예로는 언어, 문화, 음악, 예술, 학문, 지식, 인터넷, 공원, 광장, 의료서비스 등과 같은 사회적 창조물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공통자원은 해당 공동체 전체의 자원이기에 구성원 모두에게 '상품'이 아닌 '선물'로 주어져야 한다.

395쪽
첫째, 노동[근로]은 헌법의 정신에 따라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일 뿐만 아니라 교육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라는 것. <대한민국 헌법>은 제32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라고 노동에 대한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다음 2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라고 노동을 의무로 적시한다. 둘째, 어떤 것이 이처럼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민간(시장)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며, 공적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

 

[네이버책] 장애학의 도전 -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차별받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들의 해방을 위한 여정!장애인을 비롯해 인간의 위계에서 가장 후미에 위치한 이들의 자리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장애학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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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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