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쪽
상식과 상식이 견제할 때는 몰상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하나의 상식만이 존재하는 사회가 비상식적인 사건을 낳을 뿐이다. 부자 되기가 다른 상식을 모두 먹어 치우고 유일한 상식으로 등극하면, 상식은 괴물이 된다. 부자 되기라는 상식은 부동산 거품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내가 사둔 아파트의 가격은 하락해서는 안 된다는 자폐적 사유가 자라는 온상이 된다. 지배적인 상식의 괴물에게 바쳐질 제물이 될 위험에 처하고 나서야, 순진한 믿음과는 달리 모든 상식이 정의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40쪽
최소한의 비용으로 상층의 과시적 소비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느라 '면세점 100퍼센트 활용법'과 명품 아웃렛 정보 수집에 두뇌 활동의 대부분을 할애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를 지향하던 유권자는 소비자로 변화한다. 유권자일 때 유효하던 1인 1표제라는 민주주의의 놀라운 평등은, 소비자로 변화하자마자 구석에 처박힌다. 유권자는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축적된 부를 단죄하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지만 소비자로 변화한 우리는 자본주의의 승자와 패자로 분리된다.
유권자가 소비자가 되는 사회에서, 소비주의는 개인의 무거운 선택을 가벼운 선택으로, 정치투표장에서의 고민을 백화점에서의 고민으로, 정치적 권리인 자유를 경쟁하는 브랜드 중 무엇을 고를 것인가의 자유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부자들의 불법 상속에 무관심해지고, 쇼핑몰에 습관적으로 북적대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투표율은 낮아지고, 고객상담실에 전화를 걸어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공적인 일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법이다.

50쪽
맥도날드화는 진보처럼 보인다. 합리화의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낡은 것들은 녹아내린다. 합리화의 비를 맞고 화려한 꽃들이 활짝 피기를 기대했지만, 합리화 그 이후 펼쳐지는 풍경은 모노톤이다.

107쪽
만약 덴마크와 스웨덴이 신 없는 사회에 가깝다면, 그 나라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115쪽
대학이 졸업생에게 제공하는 최고의 선물은 지식과 교양이 아니라 동창회라는 패거리에 가입할 수 있는 멤버십이다. 

127쪽
실업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불우이웃'을 선의의 감정에 따라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과 달리,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 사람을 실패로 몰고 간 실업이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협하는 보편적 위험이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는다.
공감은 동정이라는 따듯한 감정으로 냉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가릴 수 있다는 낭만적인 태도와도 거리를 둔다. 동정의 다리 위에선 이따금 불우이웃돕기 모금이나 자선바자회가 열리지만, 공감의 다리 위에선 복지라는 제도의 나무가 자란다. 공감이 복지를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복지는 공감에 제도의 옷을 입힌 것이다.

141쪽
매너를 지킬 때 자부심을, 지키지 못할 때 수치심을 느끼는 문명인에게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146쪽
여행 가이드에게 여행은 직업상의 업무이기에 취미가 아니지만, 은행원에게 여행은 직업과 관계없는 취미일 수 있다. 취미는 직업의 의무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활동이기에, 직업적 노동과 달리 몰입과 열광을 만들어 낸다.

149쪽
누군가 자동차를 새로 구입했다고 하자. 차종의 선택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이다. 붉은색 자동차를 골랐다면, 그 사람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견과 관심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 사회에선 타인이 선택한 자동차의 색조차 논쟁의 대상이 된다.  취향은 개인의 개성이 발휘되는 영역인 한 본래 수평적이다. 하지만 개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성의 영역인 취향에 대한 참견이 끊이지 않는 이중적인 사회는 수평적인 취향을 수직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기호의 문제인 취향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뀌어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취향 전쟁은 이렇게 시작된다.

192쪽
임금노동이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과도 같은 무게감을 지닌다면, 그 운명에 맞서는 방법 중 하나는 임금노동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을 거창한 말로 표현하면 연대라 한다. 연대가 지배적인 사회에선 거대한 공통분모에 주목하고 복지라는 수단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는 임금노동이라는 굴레를 헐겁게 해 주지만, 연대라는 단어를 살해한 사회에선 누구나 자신만의 예외를 꿈꾸며 임금노동의 세계로부터 혼자 탈출할 궁리를 한다.

211쪽
인정투쟁은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비로미터와도 같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정투쟁이 폭력, 고문, 폭행 등 개인의 신체적 불가침성에 대한 반작용뿐인지, 아니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인지에 따라 그 사회의 성숙도는 가늠될 수 있다.

221쪽
개인에 대한 관심은 나의 이익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개인이라는 작은 단위 속에서 반복되는 사회라는 커다란 단위에 대한 생각이다. 개인에 대한 관심을 나의 이익에 대한 생각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개인을 언급할수록 탐욕스러워지지만, 자기 속에서 사회를 발견하는 사람은 개인을 언급할수록 품이 넓어진다.

232쪽
편안함은 때론 사유의 독이 되기도 한다. 익숙한 곳은 낯설게 보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습관적인 사유를 반복하게 만든다. 

263쪽
기계의 책 읽기는 합격이나 취업 같은 실용적인 목적과 결합될 때, 그 합격의 영광의 순간을 위해 억지로 참아내는 과정이지, 독서의 즐거움이나 깨달음의 황홀함과는 거리가 멀다. 

[네이버책]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상물정의 사회학

세속이라는 리얼리티를 향한 사회학자의 사회학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세상물정의 사회학』. 이 책은 세속을 살아가는 사회학자인 저자가 사회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벙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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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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