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자의의 진가 - 잔소리

 

술이 좋아 친해졌고 평생 술친구로 지내자며 결혼에 합의했지만, 따로 마실 때는 내 술버릇이 문제가 됐다. 나는 술에 취하면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린다.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고도 자고, 의자에 쪼그리고 누워서도 잔다. 술은 무지 좋아하지만 주량은 평균 이하다. 일도 중요하고 술도 좋아하기 때문에 빨리 먹고 최대한 일찍 들어가 자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술도 즐길 수 있고, 일에도 지장이 없다. 10~11시에 퇴근하는 직장 덕분에 빨리 마시기의 달인이 됐다. 사실 원래 성미가 급하긴 하다.

 

남편은 이런 내가 늘 걱정이었다. 술 먹느라 늦게 들어와서가 아니라, 먹다 잠들어 무슨 일이 생길까 봐서다. 늦은 시간에 먹기 시작하기 때문에 한 잔만 마셔도 자정이 넘는다. 교통편은 택시. 설상가상으로 차만 타도 잔다. 버스, 지하철, 택시,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날 잡아 잡수 하며 널브러질 때까지 마시진 않는다. 아무리 취해도 용케 택시는 잡아탄다. 하지만 택시 안에서까지 잠을 참는 건 무리다. 술까지 먹은 판국에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말똥말똥하게 앉아 있을 순 없다. 여지없이 잠이 든다. 몇 번이나 그는 나를 택시에서 끄집어내야 했다. 그때마다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택시에서 잠드는 것, 특히 여자가 술까지 먹고 야밤에 택시에서 잠드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라며 그것만은 피해 달라고 부탁했다. 잔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번 반복하지도 않았고, 그 일을 약점으로 물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정말 간절해 보였다. 건드리면 엉엉 울어 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의 진심은 전해졌다.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험한 꼴 당하지 말라고 하는 부탁이었기 때문에,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속으로도 조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미처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택시에서 잠들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사람을 쉽게 믿는 성격, 웬만해선 의심하지 않는 성격 탓이다. 남편의 진심은 충분히 전해졌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내 생각은 이랬다. 막돼먹은 택시 기사는 극히 일부다, 술에 취해 잠이 들어도 대부분은 도착하면 깨워서 집에 들여보낸다, 세상이 험해졌다고 해도 아직은 택시에서 곯아떨어져도 될 만큼은 믿을 만하다.

 

이후 술버릇을 뜯어고치려는 시도는 없었다. 남편도 더 이상 잠들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부탁하지 않았다. 다른 대책을 마련했다. 택시는 알아서 잘 타기 때문에 타는 것까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한 가지만 더 하면 됐다. 택시 기사가 남편의 전화를 받거나 걸 수 있게끔 타자마자 기사를 바꿔 주고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 놓는 것이다. 남편도 덜 불안할 수 있고 나도 오히려 맘 놓고 편히 잘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상황이 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비싼 휴대폰을 1년동안 네 개나 잃어버린 것이다.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머리로. 일하는 목적은 돈이 아닌 행복에 있었고,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만큼 핸드폰에 들어가는 돈이 아깝지도 않았다. 무슨 일을 당하는 것보다 당연히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게 백 배 천 배 다행이었다.

 

남편의 간곡한 부탁을 듣고도, 핸드폰 네 개를 잃어버리고도 달라지지 않던 생각이 한 건의 대형 사고를 겪으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택시에서 자꾸 잠이 들고 걸핏하면 전화기를 두고 내려서, 술자리를 일찍 끝낸 한 날 버스를 탔다. 버스는 여러 사람들이 복작대는 데다가 보통 기사가 종점에서 깨워 내보내기 때문에, 안전하기도 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버스에 올라 남편과 한 차례 통화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을 놓았는지, 기사가 내 존재를 모를 만큼 뒷자리에 눕다시피 앉아 아예 숙면을 취한 모양이었다. 잠에서 깨 보니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공영 차고지에 주차된 버스, 그리고 그 안에 갇혀 버린 나! 문은 죄 잠긴 상태였다. 요즘 버스에는 창문도 없다. 기사 쪽 자리에 유일하게 뚫어 놓은 창문이라곤 쥐구멍 만해서 혼자선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 중 통화 30. 얼마 있음 배터리도 나갈 판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미 공영차고지에 와 있다고 했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안 나타나기에 경찰을 대동해서 공영차고지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통화는 됐지만 내 위치를 알릴 방법이 없었다. 남편과 경찰은 수십 대 가운데 내가 타고 있는 버스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드디어 극적인 상봉! 통화한 지 한참 만의 일이었다. 남편과 경찰의 도움으로 쥐구멍을 간신히 빠져나왔다. 부부가 나란히 경찰차를 타고 귀가했다. 매우 애틋하게.

 

누군가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며 혀를 찰 것이다. 얼마든지 한심하게 봐도 좋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진 말았으면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두어 시간 남편과 경찰을 고생시킨 것만 빼면, 그리 끔찍한 사건은 아니었다. 다친 데도 없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 단지 버스 안에 갇혀 겁을 좀 먹었을 뿐이다. 그 공포가 좀 크긴 했다. 어딘가에 갇힌다는 게 그렇게 공포심을 자극할 줄 몰랐다. 잠깐이지만 난생 처음 감금의 공포를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공포의 순간이 효과가 있었다. 남편이 왜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제서야 사고의 위험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경험한 건 잠깐이지만, 얼마든지 더 끔찍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단 몇 시간 만에 굉장한 걸 얻은 셈이다. 다소 황당한 에피소드지만,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 준 소중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이후 다시는 취한 상태에서 밤에 혼자 버스나 택시를 타는 일이 없다. 그게 다가 아니다. 남편과 같이 있지 않는 한, 아예 밖에서 술을 안 마신다.

 

그 일은 나보다 남편에게 더 악몽 같은 기억이다. 당시 걱정하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 치를 떤다. 버스를 탔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올 기미는 안 보이고, 전화도 받질 않으니 많이 답답하고 불안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사과 따윈 하지 않았다. 그도 사과하길 바라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만큼 부질없는 말도 없다. 그저 다시는 같은 악몽을 겪지 않도록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면 된다. 당시의 기억은 끔찍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도 그 일을 참 다행으로 여긴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안 됐을 일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내가 술 먹고 아무 데서나 잠이 들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는 지금쯤 폭삭 늙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애태우느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그날의 일은 우리 둘 모두에게 한 가지 문제를 뿌리째 뽑아 준 일이자, 상대를 위해 억지로 자신을 바꾸거나 뜯어고치지 않고도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안겨 준 감사한 일이다. 물론 이렇게 최악의 순간을 경험하라는, 그때까지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스스로 깨닫고 필요성을 느껴야만 진정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의 성향은 변하지 않지만 습관이나 버릇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성향이 맞는 사람을 택해야 하는 이유, 사소한 습관이나 버릇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인과 다르다고 상대의 습관을 고약한 것으로 매도하는 건 이기적인 처사다. 건강이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거나 엄청난 대가를 치뤄야 할 만큼 치명적인 게 아니라면, 굳이 그 습관을 뜯어고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의 성향에서 비롯된, 상대적인 강점에서 비롯된 습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대의 습관이 보다 치명적이라면 잔소리할 시간에 머리를 굴려라. 스스로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면 문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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