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자의의 진가 - 잔소리

 

잔소리란 말이 생긴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상대를 위한답시고 늘어놓는 얘기가 하등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거부감만 키워서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게 잔소리다. 도움이 될 만한 얘기도 상대가 원할 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해야 좋은 조언이 되고 충고가 된다. 본인이 돕고 싶을 때, 본인 입장에서 말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 내뱉는 말은 전부 다 잔소리다. 끊임없는 잔소리로 상대의 말과 행동이 바뀌었다며 뿌듯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안하지만 그 쾌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잔소리, 즉 강요의 부작용이 언제 쏟아질지 모른다. 아마 이전의 자잘한 삐딱선이 그리울 정도로 후회막급일 것이다.

 

박 군과 최 양은 평범한 20대 커플이다. 모든 연인이 그렇듯, 그들도 둘만의 문젯거리가 있었다. 박 군이 술만 먹으면 나이트에 가서 카드를 긁는다는 것이다. 물론 예사롭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최 양 입장에선 영 못마땅한 일이었다. 몇 번 잔소리를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며칠 괜찮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최 양은 결단을 내렸다. '박 군의 카드를 모조리 압수하자!' 주머니에 신용카드가 없으면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으니, 어떻게든 그 습관이 고쳐지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박 군도 최 양의 말을 따랐다. 나이트를 즐기지만, 최 양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드나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문제는 해결된 듯 보였다. 강제적이긴 하지만 분명 효과는 있었다. 박 군은 술이 들어가도 습관처럼 찾던 나이트행을 포기했다. 문제는 그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데 있었다. 이제 박 군은 기억을 잃을 만큼 만취한 상태에서 나이트를 찾는다. 친구와 같이 가면 하루 이틀 내로 갚겠다고 말하고 일단 친구에게 결제를 부탁한다. 혼자일 땐 카드가 없으니 구세주가 나타나기 전까지 죽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누르고 있던 욕구가 폭발한 탓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나이트로 향하는 것이다. 종종 갈 때보다 씀씀이도 커졌다. 한동안 안 갔다는 보상 심리 때문에 더 큰 금액을 서슴없이 써 버린다. 취한 상태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주의를 줘도 먹힐 턱이 없다.

 

나이트를 가고 안 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양쪽 모두 같은 일로,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문제다. 최후의 방법을 동원했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골머리 앓는 최 양, 한편으로는 무의식 중에 저지른 일이라 본인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최 양 눈치를 살피는 박 군. 박 군은 오히려 억울하다. 평소 최 양이 요구하는 대로 잘 따르다가 한 번 실수했을 뿐인데, 그간의 노력까지 뭉개 버리는 최 양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지는 것이다. 결국 둘 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더는 해결책도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의 잘잘못은 덮어 둔다 치더라도, 앞으로가 걱정이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대부분은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생각에 구속을 더 강화한다. 당장 오늘,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위치 추적 앱을 다운 받아 언제든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설정해 둔다. 술자리엔 가능하면 동행한다. 당연히 같이 즐기진 못한다. 먹고 마시러 간 게 아니라 감시하고 자중시키러 갔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를 돌려줄 생각 따윈 없다. 철저하게 동선을 파악하고 손발을 묶어 두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엄청난 착각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로가 상대를 많이 봐주고 있다는 생각만 키울 뿐이다. 수고스럽지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도 상대를 위해서, 이를 허락하는 것도 상대를 사랑해서 하는 희생쯤으로 여긴다.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해서 하는 일은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게 만든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심지어 본인조차 모르다가도 어느샌가 불쑥불쑥 보상 심리가 튀어나온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사랑하는 사이든 사무적인 사이든, 어떤 관계에서나 마찬가지다.

 

방법은 하나다. 본인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낭비, 또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은 나쁜 습관이란 생각이 들면,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안 가게 되어 있다. 굳이 잔소리하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평화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 부부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우린 그 문제를 이렇게 뿌리 뽑았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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