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개똥철학 - 기대와 도리

  

앞서 '사랑하다'의 한 가지 사전적 의미를 확인했다. ①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다. 더불어 두 가지 뜻이 더 있다. ② 남을 돕고 이해하다, ②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 지금껏 내가 '우정'이라 표현한 감정은 이 두 가지를 합한 것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여기서 '우정'이라 말하는 감정이다.  

 

사랑에 기대와 소유욕이 있다면 우정에는 의리가 있다. 항간에는 무식하게 덮어놓고 지키도록 강요하는 게 의리인 양 부르짖었지만, 의리란 본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도리',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 길'이다. 마땅하다는 건 당연히, 으레, 응당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의리에는 상당 부분 자의(自意)가 반영돼 있음을 시사한다. 의무적으로 혹은 상대의 바람 때문에 억지로 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의지로 행한다는 얘기다. 스스로 생각해 볼 때 도리상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지킨다는 점,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리가 깃든 우정은 기대로 가득한 사랑보다 더 순수하고 고차원적이라 할 수 있다.

 

기대와 도리는 묘하게 닮아 있다. 차이는 그 대상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다. 상대로부터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자 하는 게 기대라면, 역으로 내가 상대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는 게 도리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과 내가 행하는 것이 기대와 도리의 차이점이다. 대부분 갈등은 자신의 도리는 다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만 기대를 품을 때 발생한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만 생각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사장은 직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에 비해 그가 회사에 더 큰 이익을 안겨 주길 기대한다. 고용주로서의 도리는 뒷전이다. 직원은 사장에게 더 많은 월급, 더 많은 혜택을 기대한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사에 이바지하는 건 그에 마땅한 혜택이 주어진 다음 생각해 볼 문제다.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흔한 일이다. 매달 생활비를 벌어 오는 건 남편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고 아내인 자신이 생활 전선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몇 년간 임신과 출산으로 고생했는데, 이제 막 숨통이 틔었는데, 당연히 그 정도 여유는 누릴 자격이 있지 않나 싶다. 남편도 출산 전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고생했지만 남편은 계속해서 고생하는 게 당연하고, 본인은 조금이나마 편해지는 게 당연하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이다. 반드시 생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상대의 고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루하루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면 그동안 갓난쟁이 돌보느라 소홀했던 남편에게 좀 더 신경을 쓰는 게 도리다. 집안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고 생각하면, 이는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지 본인의 부담이 줄었다며 혼자서 쾌재를 부를 일이 아니다. 충분한 휴식도 분명 집안에 도움이 되는 호재로 작용한다. 추가로 주어진 여유 시간을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본인도 당당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남편도 이를 막을 이유가 없다.

 

<지상의 별처럼>이란 영화가 있다.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가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서 문제아 취급을 받다가 그의 미술적 재능을 알아보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고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도, 밖에서 돈을 버는 아빠도, 부족한 것 없이 뒷바라지하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꾀만 피우는 아들이 더 불성실해 보인다. 아이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남들은 잘만 읽고 쓰는 글자를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어서다. 부모조차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자 아이는 생각한다. '어디가 좀 모자란 놈보다는 차라리 말썽쟁이가 되는 편이 낫겠다!' 계속해서 장난치고 까불며 말썽꾸러기를 자처한다.

 

아이의 부모는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것으로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첫째 아들을 보면서 문제는 둘째 녀석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자식의 고민을 들어 주고 이를 감싸안는 게 부모로서의 마땅한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경제적이고 물리적인 여건을 충족시켜 줬다며 모든 문제를 아이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아이의 문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본인이 부모로서 도울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알아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난 내 도리를 다했으니 너도 내 기대에 부응하라'는 식이다. 영화로 볼 때는 그들만큼 몰지각한 부모가 있을까 싶겠지만, 사실 많은 부모, 선생들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본인만 모를 뿐이다. 시험 성적, 성실성, 집중력 등 일반적으로 아이를 평가하는 기준 그대로 내 아이, 주변 친구를 저평가했던 경험은 없는지, 그들에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기대의 반대는 실망인 동시에 만족이다. 상대에 대한 기대를 갖기보다 자신의 도리에 충실하고자 애쓴다면 관계는 자연히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른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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