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두 개의 구슬 - 대등
짤막하게 신상을 공개한다. 남편의 키는 167센티미터. 몸무게는 60킬로그램. 1979년 5월생이다. 나는 168센티에 56킬로, 1980년 2월생이다. 참 고만고만하다. 손발 크기도, 허리 사이즈도, 헤어스타일도, 죄 거기서 거기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는 남자 평균치, 나는 여자 평균치의 마지노선에 걸쳐 있다는 것.
비슷한 신체 조건은 우리 부부를 더욱 대등하게 한다. 시각적인 이미지는 중요하다. 한눈에 봐도 남자임을 알 수 있는 큰 키, 우람한 덩치, 그을린 피부, 덥수룩한 수염은 또래 친구라 해도 왠지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여자의 작은 키, 왜소한 몸집, 새하얀 얼굴, 길고 고운 머릿결은 아무래도 상대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성별에 맞는 남성스럽고 여성스러운 신체적 특징은 각자를 고정된 성 역할에 치중하게 한다. 본인의 타고난 강점과는 상관없이, 상대의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 때문에 남자는 더 남자다운, 여자는 더 여자다운 역할을 요구 받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중성적이다. 성격은 물론 외모까지. 스스로를 남자답게, 그리고 여성스럽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도 이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이성(異性)적인 외모에 매력을 느낀다. 완고하고 차가워 보이는 나와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이런 이미지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모습이자 실제 각자가 풍기는 분위기다.
일반적인 성적(性的) 이미지와 다른 외양은 재미난 에피소드를 제공한다. 찜질방에 가면 카운터 직원 때문에 배꼽을 잡는다. 여성복 한 벌을 자신 있게 집어들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남편을 다시 돌아본다. 망설임 없이 떡하니 여성복을 두 벌 내놓는 경우도 있다. 이젠 일종의 놀이가 됐다. 결혼 초 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간호한답시고 옆에서 얼쩡대는 나를 보고 옆 침대 환자가 묻는다. "둘이 남매인가?" 3년쯤 지나자 남매에서 한 단계 올라섰다. 이젠 쌍둥이냐고 물어 온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우리의 대등한 관계를 짐작하는 것이다. 남자는 남자다울 때, 여자는 여자다울 때 바람직한 부부상, 조화로운 남녀 관계가 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다른 콤비 - 두 개의 구슬 - 존중
동지(同志).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은 사람을 말한다. 뜻이 같다고 해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내 방식을 상대에게 요구할 권리도, 상대의 방식에 나를 억지로 끼워맞출 의무도 없다. 서로가 합의한 목적이나 뜻을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마땅히 각자의 방식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부부도 일종의 동지다. 대부분의 부부는 동지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 즉 목적이나 뜻을 잊고 사소한 것에 집착해서 관계를 망쳐 버리곤 한다. 일명 소탐대실이다.
부부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정하는 규칙들이 있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잠은 꼭 같이 자기로 하는 것. 어른들에게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충고다. 이 철칙이 꽤 효과가 있다는 부부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다. 갈등의 원인을 곧바로 확인하거나 해결하지 않고 성관계로 서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 싸움은 보통 같은 이유로 반복된다. 상대의 부주의, 씀씀이, 버릇, 말투 등이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한쪽이 스스로를 바꾸거나 다른 한쪽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는 한, 늘 같은 이유로 싸움을 반복한다.
갈등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포기와 인정,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같은 일로 또 싸우는 어리석은 짓을 멈출 수 있다. 거슬리는 상대의 습관을 묵묵히 봐줄 수도 있지만, 참으면 언젠간 폭발하게 되어 있다. 지혜로운 방법은 상대에 대한 인내가 아니라, 포기와 인정을 '존중'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나와 다른 무언가가 발달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하고 거슬리는 습관도 버릴 게 없다.
평소 싱크대를 관리하는 내 방식은 수세미는 지정된 통에, 음식찌꺼기가 남은 그릇은 싱크대 바깥에 따로 두는 것이다. 물론 나만의 방식이다. 그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결혼 초에는 싱크대 그릇들 사이에서 수세미를 찾아야 한다거나 음식찌꺼기를 일일이 손으로 건져 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두어 번 참고 넘겼다. 그러다 괜한 불만을 쌓느니 약속을 받아 내는 게 낫겠다 싶어 그에게도 내 방식을 요구했다. 효과는 당연히 없었다. 한두 번 지키다가 이내 본래 습관이 나오고 만다. 쓸데없이 신경만 거슬린다.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는 그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 영 못마땅한 나나, 서로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현재는? 참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존중이라는 묘안을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설거지는 주로 내가 하는 일이다. 그가 수세미를 싱크대에 담그는 경우는 음식을 만들다가 썼던 식기가 재차 필요할 때뿐이다. 내가 그의 요리 솜씨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스피드'가 상당히 주요하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목적과 수단을 새삼 떠올리고 보니, 하찮은 것 때문에 날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미쳤다. 비좁은 싱크대에서 넉넉치 않은 식기로,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에서 신속하게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일일이 정리해 가며 만들자면 내가 높이 사는 신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괜히 싱크대에 파뿌리가 떠다니고 수세미가 그릇 틈에 끼어 있는 게 아니었다. 나름 이유와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빨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의 방식이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내 취향에 꼭 맞는 방식이다. 깔끔하게 싱크대를 닦아 가며 요리하는 한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무얼 하든 두세 시간은 기본으로 잡아먹는다. 영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행복계발 시트콤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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