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대리만족

 

여자들의 샤워법. 머리가 흠뻑 젖을 때까지 샤워기 앞에서 물을 맞는다. 샤워 타올에 바디 샴푸를 덜고 있는 대로 거품을 낸다. 손끝, 귓볼, 발뒤꿈치까지 구석구석 타올로 문지른다. 이하 생략. 남자들의 샤워법. 샤워기를 튼다. 틀자마자 비누를 집는다. 양쪽 팔다리를 비누로 훑는다. 머리에도 두 번 돌린다. 거품이라곤 보이지도 않는다. 샤워기와 싸우기라도 할 것처럼 머리로 들이받는다. 사방으로 물을 튀긴다. 아주 개운하다는 듯 욕실에서 나온다. 이는 나와 그의 샤워법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씻고 나온 그가 제대로 비누칠은 한 건지, 대충 물만 끼얹은 건 아닌지 궁금했지만 뭐라 할 순 없었다. 온몸이 나보다 희고 뽀얀데 뭘 지적할 것이며 뭘 탓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운 놈의 피부가 그저 기특할 뿐이다. 오히려 지적은 내가 받는다. 그렇게 매번 박박 문지르니까 건조한 거란다. 정말 웃긴 녀석이다.   

 

한때 너도나도 아침형인간이 돼 보겠다고 야단하던 때가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생산적인지를 전한 책 한 권의 영향이었다. 이후 반기를 들고 심야형, 저녁형인간의 생산성을 부르짖는 이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일찍 일어나는 것을 부지런한 습관의 대명사로 꼽는다. 공공연한 결론은 어느 쪽이든 자기에게 맞는 패턴을 찾으라는 것. 본인에게 효율적인 방식을 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울러 그 방식은 결혼 이후에도 계속돼야 한다. 한쪽에 다른 한쪽을 맞추는 것, 특히나 아침형인간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억지로 상대를 아침형인간으로 개조하려 하는 것은 상당한 손실을 부른다.

 

하루이틀 적응 기간만 거치면 된다는 것도 믿을 만한 얘기가 못 된다. 근무시간이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였던 직장에 7년을 다녔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형이다. 전날 술을 진탕 마셔도, 출근할 데 없는 백수여도 나는 아침형을 고수한다. 단순한 습관 때문이 아니다. 아침형과 저녁형은 수면 시간이 아닌 활력 시간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11~12시가 된다. 동료들은 대부분 3시쯤 자고 9시쯤 일어난다. 내가 자는 시간은 주로 1시에서 7. 일부러 마음을 먹지 않아도 패턴이 굳어졌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서너 시가 된다는 동료들과 달리, 나는 아침에 일이 더 손에 잘 잡혔다. 남들이 여유롭게 혹은 활동적으로 즐기는 퇴근 후의 시간을 나는 출근 전에 가졌던 것이다.

 

남편이 뭘 하고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보기 좋은지를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다. 자거나 누워 있을 때다. 나는 비록 바쁜 아침 시간을 보내면서 활력을 느끼지만, 그만큼은 침대에 늘어져 있어야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역시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하루종일 동분서주한 사람들, 일의 갈피를 못 잡아서가 아니라 바쁜 일상 자체에서 활력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가만히 누워 쉬라는 게 더 곤욕이다. 누우면 앉고 싶고, 앉으면 여기저기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그 즉시 해결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서 쉬는 그를 보면, 어떤 경지에 오른 것 같아 존경스럽기도 하고 내 몫까지 쉬어 줬음 싶기도 하다.   

 

그는 저녁형인간이다. 하루가 끝나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난다. 에너지가 발휘되는 것이다. 나는 현재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지만, 그는 자기 시간에 맞추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일 때 일의 능률이 극대화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단 하루인 그의 휴일 아침. 나는 절대 그를 들들 볶지 않는다. 일주일 간의 피로를 푸는 유일한 늦잠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양껏 자고 일어나야 남은 시간 즐거운 휴일을 함께 보낼 수 있다. '5분만!'을 외치는 상대를 굳이 깨워 봤자 일어나서 싸우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저녁형인 그의 휴일 기상 시간은 평균 1. 보채지 않아도 1시면 손에 구수한 냄새를 가득 담아 슬금슬금 내 방으로 건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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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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