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대리만족

 

나는 극장 가기를 꺼린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극장에서 보는 건 영 별로다. 나 스스로도 마음껏 즐길 수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가 된다. 남들보다 감정 표현이 과도해서다. 조신하게 감상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공공장소임을 감안해 자제한다고 하는데도 꼭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야 만다. 울고 웃고 놀라는 것, 즉 감정을 이입해 영화에 흠뻑 빠져드는 것은 영화를 보는 목적이기도 하다. 극장이란 공간이 오히려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된다면 굳이 극장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주로 집에서 영화를 즐기는 나는 솟구치는 감정을 최대한 만끽한다.

 

종일 재잘거리는 수다쟁이는 아니다. 말수가 많지도 않다. 다만 '대박', '완전', '제일' 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 그렇게 느끼는 때에만 말을 꺼낸다고 볼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심하게 빠져들고 관련 정보를 죄다 끌어모은다. 좋아하는 음식, 기억에 남는 영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리스트가 머릿속에 박혀 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그에 대해 열광하거나 무시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남편은 반대다. '괜찮다', '나쁘지 않다' 등이 그의 주 표현이다. 자주 쓰는 말에는 그 사람의 평소 사고방식이 묻어 있다. 나는 극단적인 표현을, 그는 중립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는 그는 웬만해서는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 한쪽을 강하게 지지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곡한 표현은 회색분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일상에서는 대개 너그럽고 유연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주로 중립적인 그와 극단적인 나. 취하는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타고난 성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취하게 되는 입장이다. 그 결과 호감 또는 비호감을 살 줄 뻔히 알면서도 잘 바뀌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상황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하지만, 둘의 관계에서만큼은 확실히 득이 된다.

 

'데이트 코스 잘 짜는 남자'는 여자들이 선호하는 남성상 중 하나다. 남자가 의사 결정을 내리고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라면, 여자가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코스를 계획해 둔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다. 누군가에겐 정말 쉬운 일이 당사자에겐 상당한 부담일 수 있다. 무턱대고 남자에게 맡길 일이 아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식당을 선택할 때, 결정은 주로 여자인 내가 내린다.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나는 구미가 당기는 걸 먹을 수 있어서 좋고, 그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다. 극단적이고 중립적인 두 사람이 만나면, 극단적인 쪽이 리드하는 것이 양쪽 모두가 원하는 바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조합은 각자가 편한 방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바람직하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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