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대리만족

 

깨끗한 건 좋은 것, 지저분한 건 보통 나쁜 것으로 통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자기 몸이나 주변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상대를 유별나게 보기는 마찬가지다. 병적인 수준이 아니라면, 오히려 신선하고 엉뚱한 일상의 재미를 더한다. 내 몸 청결에 유난히 신경 쓰는 나는 TV를 보다가 '지저분하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 중국집에 나란히 앉아 제 얼굴보다 기다란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먹는 아이들. 그릇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자 입 주위부터 코, 이마까지 짜장 범벅이다. 어려운 살림에 큰맘 먹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사 먹이는 장면이다. 만약 나처럼 한 입 먹고 입가 한 번 훔치는, 청결이 몸에 밴 아이들이었다면 그토록 짠한 감동은 없지 않았을까?

 

이후 입가에 묻은 짜장은 나에게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재미 삼아 직접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이미 굳어진 습관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법. 묻히고 먹는 사람이 닦아 가며 먹기 쉽지 않듯, 반대의 경우도 잘 안되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지금은 내가 그런 시도를 직접 할 필요가 없어졌다. 남편이 맞은편에 앉아 '소박하고 훈훈한 장면이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갈증이 그를 통해 해소된다. '어쩜 저리도 천진난만하게 묻히면서 먹을 수 있을까?', '뭐가 묻었다는 게 정말 안 느껴질까?', '입 주위는 그렇다 치고 어떻게 이마에까지 튀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한동안 그를 보며 깔깔대면,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 장면을 계속 즐기고 싶은 나는 도중에 간섭하는 법이 없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냅킨을 건네는 정도. 그는 편하게 먹고, 나는 즐겁게 바라보고. 각자 생긴 대로 살면서 다르게 생긴 상대를 반긴다.

 

사소한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웃음거리를 찾아내는 나. 그는 전혀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서 웃는다는 걸 알아서다. 나를 의식하거나 애써 깔끔을 떨지도 않는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건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이 아닌 어설프고 서툰, 조금 풀어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익숙한 자기 방식대로 생활하면서 상대를 만족시킨다는 것. 이는 상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비장의 카드이자 죽을 때까지 유효한 보증수표인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커플들이 기뻐하는 순간을 보면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누군가가 상대의 요구에 따라 애써 본래의 습관을 버린다거나 원래는 무뚝뚝한 사람인데 상대가 원하기 때문에 달콤한 멘트를 건넬 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하는 상대를 보면서도 그 노력이 가상하고 예쁘다며 입이 찢어진다. 상대를 자기 기준에 끼워맞추는 꼴이다. 문제는 지속이 어렵다는 데 있다. 받는 쪽은 행복할지 몰라도 주는 쪽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감정을 쌓기 마련이다. 상대를 위한 일종의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일에서 자기가 했던 희생을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본인의 희생을 접을 것이다. 아예 관계 자체를 끝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무 이유 없이 이별을 통보 받은 쪽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내가 그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지지했었는지.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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