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대리만족

 

남편이 추구하는 인생의 최대 가치는 '자유' '유희'에 있다. 이는 내가 소홀히하고, 그렇기 때문에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나는 그를 통해 유희의 방법을 배우고 유희의 효과를 깨닫는다.

 

우리 관계의 시작은 술친구였다. 노는 법에 서툰 나는 그나마 술이 있어야 논다. 술이 들어가지 않은 뇌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분석하고 연구한다. 20대 초반. 인생에서 노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때였다. 이렇게도 놀아 보고 저렇게도 놀아 보고, 남들 노는 곳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누볐던 때.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그는 신기루 같았다. 참 생각 없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한심하다기보다 신비로워 보였다. 전략을 세웠다. 근심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딴 세상 사람 같은 놈을 가까이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체득하기 위해 시도한 접근. 당시 나는 해당 은행 현금지급기를 통하지 않아 1,200원의 수수료만 떼여도 한 시간을 자책하곤 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며 재차 반성하고 다짐했다. 친구는 닮기 마련이다. 나는 사소한 문제를 웃어넘길 수 있는 배포를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놈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전략은 유효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를 가까이 해도, 14년을 알고 지내도, 7년을 같이 동고동락해도, 도무지 나는 그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몇 년이 흐르고서야 깨달았다. 서로를 닮아 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치의 노력도 않는 상대의 발끝조차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을. 낙천적인 그는 여전히 존경스러운 존재다.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수준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향을 갈아엎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를 아는 지금, 우리는 각자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강점과 약점을 우열이 아닌 다름으로 여긴다. 서로의 다른 생활 습관, 사고방식은 오히려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웃음을 유발하는 우리 부부만의 활력소가 된다.

 

너저분하게 어지러진 그의 방을 보면서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모든 것이 정해진 자리에 박혀 있는 내 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활기차 보이기도 하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풍기기도 한다. 그의 방은 그를 위한 공간이다. 그가 편하고 자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제 기능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깨끗하게 유지한답시고 혹은 그를 위한답시고 청결을 강요하거나 대신 청소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면 그만이다. 허물처럼 벗어 놓은 옷, 펼쳐진 책, 나뒹구는 펜, 모든 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기한 장면들이다. 각각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한 나는 묘하게도 그의 방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오히려 천진난만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그의 사소한 습관이 그에 대한 애정을 키운다.

 

그때그때 상황 및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그는 예상 밖의 일이 닥쳐도 흔들림이 없다. 도리어 '이럴 줄 알고 준비하지 않았다'는 기막힌 발언을 덧붙인다. 그런 뻔뻔함은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2007년 중순에 결혼식을 치뤘다. 당시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은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장만했다. 그러다 2008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터지고 집값 거품이 빠지면서 하우스푸어가 늘기 시작했다. 사태를 파악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결혼할 때 집을 안 샀는지 이제 알겠지? 이렇게 선견지명이 뛰어나다니까! 역시 난 운이 좋아."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온갖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기발한 재치에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낀다. 늘 이유를 묻고 따지는 나로서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기 때문이다. 진중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면이 나와는 달라서 더욱 돋보이는 그만의 매력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웬만한 건 다 별것 아닌 게 된다. 그저 웃긴 것들뿐이다. 발상의 전환을 실천하는 일상은 늘상 이처럼 유쾌하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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