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재능 - 타고난 재능

 

남편은 대인 관계에서 빛을 발한다. 친구가 여럿이라거나 인기가 많은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모임을 주도하지도 않는다. 그의 강점은 분위기 및 상대의 기분을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것이다. 의도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표정으로부터 감정과 생각을 눈치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 편이다. 상대는 그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그는 이 같은 친화력을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본인이 가진 강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성격쯤으로 생각하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재능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생각보다 강점은 일상에서 수차례 반복, 발휘되고 있다.

 

그는 요리로 전업하기 전 접착제를 전문으로 생산, 판매하던 회사에 다녔다. 소속은 영업부. 명동, 을지로 일대의 철물점에 제품을 소개하고 주문 받는 일이다. 영업에는 상품에 대한 지식, 고객의 수요 파악, 시장 분석, 판매 전략 수립 등 여러 가지 능력이 요구된다. 그는 친화력을 무기로 삼았다. 거창한 전략을 세운 것은 아니다. 그저 생긴 대로 하다 보니 얼굴을 들이미는 것으로 승부를 봤다. 그의 친화력이 신규 고객 유치와 기존 고객 관리로 나뉘는 영업의 커다란 두 가지 영역에 모두 강점으로 발휘된 것이다.

 

할당 받은 지역 내의 철물점에 그는 일단 들어서고 본다. 입사 초기 고객과의 첫 대면은 늘 그런 식이었다. 어떤 상품을 어떻게 소개할지, 무슨 얘기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고 주문을 유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둔 바가 없다. 그저 인사만 건네고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30여 분을 앉아 있으면 철물점 사장님이 먼저 얘길 꺼낸다. 어떤 상품이 있는지도 묻고, 입사한 지 얼마나 됐는지도 묻는다. 커피를 주면 감사히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다 나온다. 대부분 몇 십 년 전부터 그 터에서 같은 장사를 해 오던 분들이라, 그는 간간이 '대단하시다', '그러시구나'로 호응하며 그들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드나들었더니 시간이 지나자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오더란다. '요즘은 왜 커피 마시러 안 오냐'부터 시작해, '일을 하는 거냐 마는 거냐'까지. 나이 지긋한 사장님 고객들의 친근감 표시였다. 아버지뻘 되는 고객들의 전화를 받고 불려 가면, 한 시간쯤 그분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다가 일어설 때쯤 주문을 받고 나온다. 주문 받는 시간은 고작 5. 하루 대여섯 군데를 돌며 고객들과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게 그의 주 업무였던 셈이다.

 

영업에 어떤 능력이 더 중요한지, 대상별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그가 친화력을 강점으로 여겨 이를 무기로 고객과의 만남을 추진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 자연스러운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이게 무슨 재능이야?" 혹은 "맞아, 이런 재능이 있어야 되는데!" 전자는 친화력을 타고난 경우, 후자는 친화력보다 분석력, 기획력 등이 뛰어난 경우의 반응이다.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 한때 의류 매장에서 일했던 나는 친화력이 사람을 대하는 직업에서 얼마나 절실한가를 몸소 경험했다. 판매직이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던 내가 그 일에 관심을 가진 건 상품 구성부터 매출 분석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당사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채용 슬로건이 그랬다. 첫 사회생활인 만큼 세상 물정 몰랐던 나는 슬로건 하나만을 철석같이 믿고 계획에도 없던 판매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나의 입사 계기는 시작부터 상사들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옷이 좋아서, 해당 브랜드 옷이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내 가게를 내고 싶어서 등이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자 업무의 주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 '장사(소매)'가 빠진 내 대답에 괜히 태클을 건 게 아니다.   

 

대부분이 단골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100여 명의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친화력이 바닥인 탓이다. 용건 없는 대화, 인사성 멘트, 형식적인 칭찬, 공감하는 듯한 반응. 나에겐 전부 어려운 것들이다. 오히려 혼자 틀어박혀 매출 신장 전략을 짜라거나 매출 감소 원인을 분석하라는 편이 훨씬 재밌고 수월하다. 남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맞는 고객을 나는 큰 숨을 몰아쉬고서야 응대할 수 있었다. 2년 간 주 6, 하루 12시간씩을 꼬박 훈련한 결과 고객 응대에 대한 거부감은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여전히 편한 수준은 아니었다. 겨우 익숙해지는 정도. 약점 개발의 한계다.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영역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상품 기획, 구성, 디스플레이 등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즐겁게 임했고 나름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전체적인 성과와 그에 따르는 보상이 성에 찰 리 없었다. 연봉에 90%의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업무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으니, 나머지 10%에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 봤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 것이다. 내가 가진 강점과 실제 업무 및 현장에서 필요한 강점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그와 나 둘 다 해당 직장을 그만뒀지만 같은 판매직을 두고도 그는 쉬엄쉬엄했던 일로, 나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로 기억하고 있다.

 

그와 나의 180도 다른 판매 경험은 친화력이라는 타고난 재능 여부에 따라 달라진 결과다. 친화력의 원천은 심리적인 경향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구체적인 언행으로 드러난다. 상대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수긍하는 추임새, 공감하는 표정, 상대의 감정 파악, 새로운 발상에 대한 호응, 사소한 것에 대한 칭찬이 강한 친화력의 표현이다. 웃는 인상, 열린 마음, 잦은 스킨십도 상대의 경계심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명심할 것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친화력을 기르고자 해도 타고난 사람을 능가하기는 어렵다는 것. 이는 강점을 살려야 하는 이유인 동시에 사소한 강점도 남다른 재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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