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감
프롤로그
발상의 전환! 책이나 강당에서 영향력 있는 누군가를 통해 전해 들을 땐 손만 뻗으면 이내 닿을 듯한 '그럴싸한 신세계'로 그려지곤 한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게 만드는 희생정신, 목숨 바쳐 불의에 대항하는 확고한 신념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바꿔 놓을 이야기란 생각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그때뿐이다.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현실과 타협하기 바쁘다. 채 30분을 못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행각에는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 '사회생활 좀 할 줄 안다'는 등의 칭찬들이 붙는다.
'돈'으로 버는 돈의 규모가 '땀' 흘려 버는 돈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해지고, 내 삶은 점점 팍팍해져만 가는데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는 '타인들'의 삶은 갈수록 호화롭기만 한 21세기. 상대적 빈곤감은 우리를 자괴감에 빠뜨리는 최고의 악성 분자다. 상대적 빈곤감. 나는 이놈에게 발상의 전환을 대입해 보고자 한다. 무엇이든 생각하는 방식, 바라보는 관점만 바꾸면 다르게 보고 느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 상대적 빈곤감이 아무리 악질이라도 발상의 전환 앞에서는 뭣도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볼 참이다.
같은 과거
15년의 유년기를 각자 보내고 한 고등학교에 진학한 수훈과 상엽. 둘은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고등학교 3년을 포함해 어림잡아 5년을 줄곧 붙어 다닌다. '평범한' 대한민국의 두 아들들은 '평범하게' 대학에도 가고 군에도 다녀온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피 같은 20대. 제대 후 대학 졸업, 취업 전쟁을 연이어 치르면서 옛 친구를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1년에 한 번이 2년에 한 번이 되고,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있어야 그나마 얼굴이라도 볼 기회가 생긴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오늘을 살며 보낸 시간이 그 후로 또 15년. 어느덧 장성한 서른다섯의 아저씨들이 되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며 비슷한 수준의 대학에 진학한 두 놈. 둘은 참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평범'은 '평탄'과 거리가 멀다. 평범한 삶이란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비슷한 사고방식과 생활수준으로 끈끈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생활에 찌들어 한동안 못 본 사이 둘은 꽤 달라져 있다. 우정 전선에는 이상이 없다. 보다 고차원적인 연결고리가 여전히 관계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다만 짐작하지 못했던 서로의 '다른' 모습이 흥미로울 뿐이다. 상엽과 수훈은 이렇게 달라져 있다.
다른 오늘
둘은 모두 유부남이다. 상엽은 2005년 결혼해 현재 아내와 1남 1녀를 둔 가장이다. 아내는 육아와 살림으로 집안일을 돌보고, 상엽은 바깥양반으로서 열심히 돈을 번다. 거처는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결혼 당시 전세로 마련한 집. 얼마 전 부모의 도움으로 '내 집'이 됐다. 실평수 15평 내외의 작은 아파트지만, 부촌도 빈촌도 아닌 '그냥 서울'의 주택가지만, 상엽은 엄연히 2억 8천만 원 상당의 집을 소유한 '자가주택 거주자'다. '내 집 장만'이 그토록 어렵다는, 하지만 누구나 고대하는 대한민국에서 서른 중반에 빚 없이 네 식구의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건 누가 봐도 희망적인 중년의 서막이다.
수훈도 7년 전인 2007년 7월 7일, 결혼식을 올렸다. 아직은 '상팔자'라는 무자식. 수훈 역시 가장이다. 단 두 식구뿐이지만 먹여살리는 건 좌우지간 수훈의 몫이다. 고로 그는 '가장'이다. 거처는 수도권 내 한 다세대주택. 결혼 전 마누라가 살던 월세에 합류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몇 차례 1,000에 40, 500에 20을 오가다 이곳에 정착한 지 4년. 물론 쭉 월세다. 결혼 당시부터 지금까지 참 한결같다. 누가 봐도 '불안정' 그 자체다.
같은 오늘
여엇한 내 집에서 둘째의 돌잔치를 앞두고 있는 상엽. 취미를 살리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돌연 주방 보조 알바를 시작해 최근 가까스로 정규직 자리를 꿰찬 수훈.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 둘의 모습은, 그리고 그 분위기는 어떨까? 대충 머릿속에 비슷한 그림들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는 이렇다.
'인맥'이 아닌 '친구'와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우환이 있어 위로를 주고받을 때도 짠한 마음은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다. 고통의 공감은 오히려 흐뭇하고 따뜻하다. 단둘이 잘 붙어 다니던 수훈과 상엽은 오늘도 오붓하게 둘만 만났다. 진원지도 알 수 없는 유치찬란한 어릴 적 별명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딱 그 또래 모양 놀고 있다. 주제 없는 대화, 가감 없는 속사정, 결론 없는 하소연, 그리고 이유 없는 박장대소. 삼십대 중반의 삶이 그렇 듯 대화는 희로애락을 넘나들며 무르익는다.
분위기에 취해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돌아서면 왠지 모를 허전함이 감도는 게 숱한 '약속'의 뒤끝이다. 진정한 친구와의 허심탄회한 술자리는 바로 그 '돌아서는 순간'에 미묘한 차이를 남긴다. 기억 나는 얘기가 전혀 없어도 마냥 좋다. 그저 '오늘 만나길 참 잘했다' 싶다. 집값 훨씬 저렴한 동네에 월세를 살아도, 서울 시내 복판에 떡하니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도, 기 죽거나 우쭐할 거리가 못 된다. 그런 물리적인 여건을 거들먹거릴 만큼 얄팍하고 부실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의 '존재'가 지닌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려놓은' 대화는 편하고 또 진솔하다.
다른 생각
다른 고민
결혼 10년이 채 안 된 유부남들의 대화. 처갓집과 본인, 시댁과 아내, 즉 장서와 고부간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상엽은 아내가 시댁행을 꺼리는 게 불만 아닌 불만이라고 털어놓는다. 생각 같아서는 식구들과 함께 매주 가고 싶지만 아내가 달가워하지 않는다. 속상한 심정을 애써 누르고 있다. 그야말로 평범한 가정사다. 시댁을 불편해하는 며느리, 둘 사이가 좀 더 친근하고 원만하기를 바라는 아들의 심정. 평범하다고 우습게 볼 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갈등이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비록 사소한 갈등이지만 오랜만에 만나 푸념을 늘어놓을 만큼 거슬리는 무언가를 안고 사는 상엽. 수훈은 안타깝다. 안정적인 직장에, 멀쩡한 자기 집에, 곱디고운 처자식까지, 어느 모로 보나 훤칠한 친구가 생각지도 못한, 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고민을 내비친다. 이때 '다들 그렇게 산다'거나 '고부간에 살가운 집이 몇이나 되겠냐'는 둥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는 건 그저 그런 관계에서나 오가는 멘트다.
다른 위로
가식 없는 진솔한 사이라면 자연스레 이런 얘기가 튀어나온다. 더 심각한 우리 집안의 고부 갈등, 혹은 이상적인 고부 관계에 대한 자기 자랑. 더 가관인 우리집 얘기는 친구의 쓰린 마음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만들어 준다.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상황에서 100만 원을 사기 당한 친구에게 1,000만 원 사기 당한 자기 경험을 들려 주면 위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친구의 고통을 내 마음을 추스리는 데 이용한다고? 단편적으로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십 가지 이야기 속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주고받다 보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위로가 되는 해피엔딩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상적인 고부 관계에 대한 자기 자랑 역시 친구를 두 번 죽이는 처사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일부 유치하고 가식적인 인간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지 몰라도, '내 자랑'이란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그의 가치를 인정할 때라야만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는 내가 낫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상대가 낫다는 걸, 따라서 다를 뿐이라는 걸 확신할 때라야만 가능하다. 'apple'을 '애뻘'로 발음하는 유치원생에게 '한국어 발음은 내가 더 좋지롱!' 뽐낼 수 있는 건 녀석의 영어 발음이 기똥차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른 무기가 있을 때 내 무기에 대한 자랑도 늘어놓을 수 있다. '애플'처럼 정확한 '콩글리시'를 구사하는 유치원생에게 우리말 발음 실력을 재는 어른은 없다.
사람을 '우열'로 구분하지 않고 '다양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현명한 친구라면, 화자의 의도를 머리와 가슴으로 죄 받아들이고도 남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고 오만한 놈이라면, 까짓것 심기 좀 건드려도 된다. 위로와 상생의 훈훈한 의도를 도발이나 무시로 오해하는 건 어디까지나 좁아 터진 놈의 배알 탓이다. 그런 놈에겐 해명할 가치도,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넬 필요도 없다. 거리낌 없이 '애뻘'을 연발하는 다섯 살 난 꼬마. 고것이 혹시 난처해하거나 자존심을 다칠까 봐 미안한 듯 조심스럽게 우리말 발음을 들먹인다면 그보다 더 우스운 꼴이 어디 있겠나! 말투나 표정 등 가시적인 테크닉 없이도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말의 의도를 짚어 보자. 유치원생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우리말 발음에 더 분발하라'도, '우리말 발음은 내가 더 뛰어나다'도 아니다. 친구의 고충을 듣고 그에 비해 바람직한 내 경우를 자랑 삼아 얘기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비난이나 자랑이 아니다. 상대가 가진 다른 장점, 다른 강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재치다. "우리 마누란 내가 가자면 매주라도 토 달지 않고 시댁이든 어디든 기꺼이 나설 텐데. 정말 완벽한 부부지, 집 없는 것만 빼면!" 이런 식이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제대로 작용해서 서로가 윈윈하는 유쾌한 엔딩. 이제 좀 감이 잡히나?
다른 생각
'상대적 빈곤감'은 자유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내달려 온 자본주의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정치인, 언론인, 학자, 기업인, 사회운동가 등 많은 이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해결책 또는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국민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사회 문제에 대한 구성원 개인의 고민과 관심은 각계각층의 전문가 및 권위자를 자극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데 보탬이 된다.
'다르게 생각하기', '발상 전환하기'란 이 같은 '조정'의 일환이다. 사회의 성격이 형성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뼈대를 세우고 그 안의 내용물을 채워 가는 식. 또 하나는 내용물이 무르익어 자체적으로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자동적으로 간판이 걸리는 식이다. 전자는 전문가와 권위자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 후자는 구성원의 가치관이 확고할 때 가능하다. 자본주의는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카드다. 그 카드를 버리라고 다그치느니, 버릴 때까지 멍청히 기다리고만 있느니, 자체적으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편이 빠를지 모른다.
'애뻘' 발음이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말만큼은 날 따라올 수 없다는, 각자가 다른 장기를 가진 것뿐이라는, 돈도 다양한 장기 중 하나일 뿐이라는, '나만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있어야만 '가진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다. 끈끈한 우정, 뜨거운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피를 나눈 부모 형제마저도 원수지간으로 갈라놓는 게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다. '다수'가 아닌 '거액'에 의해 움직여지는 시대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집어삼켜서다. 독창적인 생각으로의 전환이 자본주의를 잘근잘근 으깨 줄 차례다. 뜻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돈이 아닌 다양성, 진심, 휴머니즘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회, 그 고차원적인 풍토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학창시절 찰떡같이 잘 맞던 상엽과 수훈. 당시에도 별반 다를 것 없었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둘. 둘은 여전히 존재만으로도 기쁨과 위안이 되는 친구 사이다. 무지막지한 자본주의도 둘의 우정을 감히 해코지하지 못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자본이 아닌 '인간 존재 자체'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는 상엽이, 어느 면에서는 수훈이 더 행복하다. 서로가 가진 '다른' 행복은 때론 내 고민을 덜어 주기도 하고, 때론 내 행복을 더 감사히 여기게도 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자기 위안, 자기 만족, 혹은 나르시시즘의 끝판이란 생각에 애처롭다면, 보증 한 번 서고 나면 우정이고 뭐고 없다는 막장 스토리가 떠오른다면, 다음 장을 기대하시라. 이제 겨우 '발상의 전환'이란 메뉴의 애피타이저만 공개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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