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감

프롤로그

 

'상대적 빈곤감에 대한 역발상'의 목적은 간단하다. 누구에게나 상대적으로 빈곤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니,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최대한 행복을 누리자는 것. 얼핏 들으면 다분히 상투적인 얘기다. 그래서 미주알고주알 불고 있다. 개인적인 실례를 들어 가며, 매우 친절하게. 역발상을 통한 행복이란 이렇게 누리는 것이다!

 

상대적 빈곤감은 주로 '' 얘기다. 연봉, 아파트 평수, 들고 있는 가방의 브랜드, 타는 차량 등. 요즘은 외모나 학벌, 집안과도 연결 짓는 분위기다. 기사나 광고에서 그렇다. 엄친아, 엄친딸도 이에 속한다. 외모, 학벌, 집안, 재력에만 국한시키던 상대적 빈곤감. 영역을 좀 더 넓히는 것이 역발상의 '시작'이다. 눈에 보이거나 기록으로 남는 것, 남들이 따지는 것에만 목매지 말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본인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자는 얘기다. '상대적 빈곤감''절대적 충족감'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익한 팁이다. 영역을 넓히는 것이 시작, 항목을 세분화하는 것이 끝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게 실은 이렇게 쉽다.

 

월세의 행복

 

생애최초? , 땡큐

 

결혼 경력 7. 우리 부부는 내내 월세살이 중이다. 집도 없고 애도 없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다. 서른다섯 동갑. 최근 1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맞벌이였다. 모아둔 돈도 당연히 없다. 집을 장만할 계획 자체가 없다. 웬 콩가루 집안인가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게 무슨 자랑이냐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린 자부한다. 우리만큼 이상적인 부부도 흔치 않다고. 결코 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다. 나름의 신념과 가치관이 깃든, 그저 조금 다른 생활 방식일 뿐이다. 발상의 전환이 우리 부부를 어떻게 행복하게 하는지 그 얘기를 할 참이다.

 

내 집 마련의 길이 영 없는 건 아니다. 올해 초 새로 부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주택 정책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근로자·서민 주택구입자금대출, 근로자·서민 주택전세자금대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대출, 오피스텔 구입자금대출 등 말만 들어도 내 집 마련의 길이 뻥 뚫린 것 같다. 측근들까지 파격적인 대출 이자 운운해 가며 절호의 기회를 잡으라고 난리다. 혹시 진정한 절호의 기회일까 싶어 은행에 가서 직접 알아봤다. 역시, 아니었다.

 

우리 조건에서 가장 유리한 상품은 생애최초. 욕인지 칭찬인지, 소득도 변변찮고 주택 소유 전력도 없어서 가능하단다. 문제는 우리가 만족할 수 없다는 것. 이자율이 높아서도, 지금의 월세가 너무 좋아서도 아니다. '기회'로 포장된 대출이 '족쇄'가 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에 들어간다. 아무리 소박하게 마음을 먹는다 해도 지금의 집보다는 나은 곳을 골라야 한다. 굳이 더 안 좋은 데로 갈 이유도 없을 뿐더러, 향후 시세가 본전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적어도 3억이 필요하다. 10년 거치로 매달 70만 원씩 이자를 갚는다고 치자. 숨이 턱턱 막힌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도 부담스럽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건 10년 간은 옴짝달싹 못하고 그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10년 뒤 원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특혜를 준다고 해도 '노 땡큐'. 내 집이 생긴다는 사실로 위로가 될 만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월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월세만큼 아까운 돈이 없다고. ''만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월세 역시 무언가에 대한 '값 지불'이다. 우리 부부는 '자유'에 대한 값 지불이라 생각한다. '푸어블로거'를 자처하고 연봉 4천짜리 직장을 미련 없이 그만둔 마누라. 탄탄한 중견 기업을 나와 서른의 나이에 못다 이룬 요리의 꿈을 '알바'로 펼치기 시작한 남편. 둘에겐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을 구속하는 안정적인 미래'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불안정하더라도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오늘'을 원한다.

 

부모님 품? , 땡큐

 

'자유',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현실적, 금전적 손해까지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꽤 까다로운 놈이다. 얼마 전부터 시댁의 제안이 있었다. 시댁 근처의 한 임대아파트에 입주 신청을 해 놓고, 보증금을 대 줄 테니 지금의 월세처럼 관리비만 부담하며 살라는 것이다. 관리비는 전기, 난방을 포함해 평균 월 20만 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우리로선 손해날 게 없는 장사다. 연료비까지 합하면 월 1/2 내지는 1/3까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시설도 더 나아진다.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나는 이미 일을 그만둔 상태고, 남편의 조리직은 얼마든지 해당 지역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다. 걸리는 건 딱 하나다. 부모님의 사정거리에 든다는 것. 시댁뿐만이 아니다. 같은 중학교를 나온 우리 부부의 양쪽 집안은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처가와 시가가 죄 5~10분이면 '상황 종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우린 각자의 부모에게서도 멀리멀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사실 더 부담스러운 한쪽을 굳이 꼽으라면 둘 다 확고하다. 각자, '우리' 부모다.

 

사춘기 아가들처럼 철없이 부리는 객기는 아니다. 이유 없는 거부도 아니다. '그곳에 가면' 우리에게 떨어질 떡고물이 얼마나 되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쌀이며 반찬, 화장품, 휴지 등 사소한 것까지 있는 족족 혜택을 누릴 것이다. 아직 50대 후반들이시라 우리가 '드리는' 도움보다 '받는' 도움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요지부동이다. 몸 편히 누일 수 있는 안락한 집보다, 맘 편히 누울 수 있는 속편한 집이 훨씬 더 좋다.

 

번화가? , 땡큐

 

좋게 생각하자면 끝도 없다. 4년 전 새로 터를 잡은 이 동네는 우리 부부에게 '부부 중심'의 생활을 가능케 한 소중한 곳이다. 시가, 처가와도 차로 한 시간 거리, 서울 복판에서도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 지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 직장 동료와 친구들은 서울에, 동창 놈들과 식구들은 시골에, 적어도 한 시간씩은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사는 2~3년 간은 친구들의 방문이 잦았다. 중학교 동창인데다가 거의 모든 모임에 동행하는 터라, 니 친구 내 친구가 따로 없다. 술친구로 결혼에 골인했기 때문에 술 사들고 오는 친구들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불편해서 외곽으로 도망온 건 아니었다. 그런데 오고 보니 둘만의 시간이 많아져 오붓하고 좋은 게 사실이다. 자유에 목매는 남편과 독립에 목매는 나. 공간적으로 동떨어져 있다는 건 우리를 참 편안하게 한다.

 

서른 즈음에 서울을 벗어났다. 젊은 혈기가 한풀 꺾이는 시점이다. 번화가에 대한 이미지가 '활력'에서 '피곤함'으로 바뀌던 때 이곳으로 온 셈이다. 월세를 줄이기 위해서였지만, 수리산 맑은 공기까지 덤으로 마실 수 있는 운이 따랐다. 우린 참 럭키한 녀석들이다. 당분간은 이곳을 떠날 계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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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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