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사에 MBTI 관련 도서가 소개됐다. 기자는 '이명박, 박근혜, 노무현의 MBTI를 분석함으로써 MBTI에 관한 이해와 흥미를 더했다'며 책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 더불어 이명박을 INTJ로 분류한 저자의 의견을 덧붙였다. 개인적인 생각과 저자의 지론이 충돌하는 순간, 궁금해졌다. 기자의 오해일까, 저자의 오류일까? 아니면 아마추어인 나의 착각일까? 저자는 MBTI '전문가'.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INTJ는 누군가의 주장을, 그가 비록 전문가라고 해도,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는 한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책을 입수해 그 근거를 찾아 보기로 했다.
반론
INTJ에 대한 저자의 왜곡은 이명박의 심리를 분석하면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당시 나온 이 책에서 저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격을 분석하면?'이라는 소제목 아래 이렇게 말문을 연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은 ISTJ와 ESTJ, INTJ를 왔다 갔다 하는 성격이지만 결과적으로는 INTJ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유명인의 심리 유형을 분석해 책에 실으면서 그 첫마디가 '세 유형을 왔다 갔다 한다'라니! 그저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MBTI 성격 유형의 형성 시기 및 요인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적인 결론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융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선천적인 것으로서 발달 정도의 차이는 생겨도 근본적인 유형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MBTI의 이 유형과 저 유형을 왔다 갔다 한다는 식의 표현은 가당치도 않다. MBTI는 논리적인 이론이다. '~일 것 같다'는 표현을 쓸 만한 추측, 감각, 느낌의 영역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첫 문장에서부터 신빙성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국가와 기업을 위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끝까지 현실로 이어가려는 면모를 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신념을 끝까지 이어가는 건 INTJ의 성향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명박이 실제로 국가와 기업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추진한 건지, 개인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신념을 고수한 건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의 목적이 어느 쪽이었는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전형적인 사례나 인용, 결정적인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심리 유형을 파악할 수 없다.
아울러 그는 그 과정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잘 풀어 가는 지적인 머리를 갖고 있다.
이 대목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이명박은 '소통 단절'의 대명사다. 어느 정책 하나 국민 앞에 나와 취지와 목적을 분명히 밝히거나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설득하거나, 상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자신감을 빼고는 INTJ를 얘기할 수 없다. 본인이 신념을 바탕으로 확신에 차서 진행시키는 일이라면, 여럿이 돌을 던진대도 꿋꿋하게 할 말 다 하고 들어오는 게 INTJ다. 그렇게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것 모양 어물쩍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국민이 아닌 참모들을 설득 대상으로 생각한 발상이라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지적 수준이 뛰어나 참모들에게 논리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감정에 호소했는지, 돈으로 매수했는지, 그럴듯한 거래를 제안했는지는 당사자들이 아닌 바에야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잘 풀어 가는 지적인 머리'가 아닌 그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잘 구워삶는 비상한 술책, 또는 뛰어난 수완'을 가졌다고 해도 같은 결과가 가능하다.
권력의 정점에 있거나 향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연일 보도되는 것처럼, 신념이 분명하고 그것을 밀어붙이는 불도저 정신이 높이 평가 받고 있지만 그런 정신은 국가 경영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업이나 서울시장 정도의 직위에서 끝나야 할 정신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국민을 하나의 힘으로 엮어 내야 하는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도 성격에 조금의 변화도 주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면 일정 부분 성격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걸까. 개인적으로 이명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건 사실이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성격에 변화를 주지 않은 걸 탓할 순 없다고 본다. 심리학적 성격, MBTI에서 말하는 '성향'이란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느 유형도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 또는 부적합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각 유형이 지닌 강점이 얼마나 잘 발휘되는지가 중요하다. 그에 따라 본인과 국민이 생각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성패가 갈린다. 이명박이 어떤 유형이든지 간에, 잘못이 있다면 서울시장 때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이명박이 아닌, 그런 성격을 대통령감으로 착각한 국민, 나에게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고, 오직 적과 아군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이명박을 알고 있는 걸까. 그의 주변에 그를 인간적으로 아끼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대체 어떻게 알고 하는 소린지 심히 궁금하다. 국민과 정치인들이 그에 대해 내리는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를 주변 사람들과 형성하는 대인관계인 양 해석하는 건 분명한 오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감성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 내세워야 할 것이다. 물론 장관이나 기타 일을 추진해 가는 사람들은 이 대통령과 같은 TJ들이 할 수 있겠지만, 매우 다양한 욕구를 가진 국민을 통합해 나가기 위해서는 화합을 펼 수 있고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NF 유형들을 대변인과 비서실, 공보실에 집중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냉철함과 칼처럼 예리한 논리로 인한 딱딱함과 적대감이 어느 정도 누그러질 것이다.
'냉철함과 딱딱함,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감성의 정치를 할 수 있는 NF를 측근에 두어야 한다'는 논리도 전혀 설득력이 없다. 기본적으로 개인에게 발달한 기질은 누그러뜨릴 필요가 없다. 아니, 누그러뜨려선 안 된다. 하나의 성향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기도 하고, 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성향은 달라지지 않지만 어떤 성향을 해당 상황에 적용, 발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이명박에게 냉철함이 있다면, 냉철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다른 성향을 참모로 두라기보다는 '온정적인 참모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냉철함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고 논리를 전개하는 편이 더 명쾌하다.
결론
이명박의 심리 유형을 분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그렇다. 사적인 영역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능에 전혀 출연하지 않는 배우를 떠올려 보자. 작품 속 연기만 보고 그의 실제 성격을 짐작하는 건 불가능하다. 영화 속 캐릭터의 심리 유형을 분석하는 사례는 많아도, 배우 본연의 유형을 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측근이 아니고서는, 정식 검사를 진행하지 않고서는, 간간이 드러나는 성향만으로 '유명인'의 심리 유형을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거론할 필요가 있다면, '~ 태도는 A 유형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성'이라는 설명에 그쳐야 한다. 주목을 받기 위해, 단순히 관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유명인의 심리'를 논하는 건 심리학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INTJ 유형이 ~하는(인) 이유 4가지 - 해당 저자가 오해한 INTJ에 대한 반론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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