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고위험군
유가족
한국은 하루 평균 43.6명이 목숨을 끊을 정도로 세계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다. 수년째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최악의 문제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숫자가 250만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
유가족은 일반인에 비해 4배 정도 높은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하규섭 국립서울병원 원장 曰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인간관계가 대단히 밀접한 곳에서 한 명의 자살이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큰집, 작은집, 사촌들을 생각해 보라. 한 아이의 급우만 해도 몇 명인가. 우리 문화의 특성상, 아마도 한 명의 자살이 미치는 영향력은 심각한 수준만 꼽아도 적어도 10~20명은 될 것이다.
목격자와 처리반
공공장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은 또 다른 자살 고위험군을 만들어내는 2차 피해를 낳는다.
2012년 2월, 이씨가 운전하던 버스는 강남대로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정류장을 출발하던 순간, 갑자기 운전기사 이 씨가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는다. 버스 밑을 확인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차를 출발하려던 그 순간 누군가가 버스 밑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씨는 본능적으로 사고를 직감했다. 누군가 버스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다. 그날 놀란 것은 이 씨뿐만이 아니다. 버스 안 승객들과 도심 행인들이 예상치 못한 죽음의 목격자가 됐다. 그날 이후 이 씨의 현실은 악몽이 됐다.
민한홍 ○○ 법무법인 변호사 曰 이튿날 버스 기사를 만났다. 극심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바로 이 버스기사다.
이 씨 당시 버스 기사 曰 버스 바퀴가 머리를 역과했으니 그 주변이 얼마나 낭자했겠나. 손 쓸 방법도, 살릴 방법도 없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퇴근 시간대라 사람도 많았다. 나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는 충격에 머릿속이 하얘졌고, 조금 지나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 그날의 여파는 지금도 상당하다. 사람을 죽였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평생 나를 괴롭힐 것 같다.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 역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2010년 한 해에만 75명이 선로로 몸을 던져 숨을 거뒀다. 스스로 생을 포기한 사람들이 피하려 했던 고통은 기관사에게 전달된다.
윤 씨 지하철 기관사 曰 사고 얘기를 전해 들은 기관사들은 승객이 승강장 펜스 앞으로 조금만 다가서도 극도로 긴장 상태가 된다. 그래서 굉장이 데시벨이 높은 경적도 울리고, 열차를 바로 정차시키기도 한다.
김 씨 지하철 기관사 曰 내 손으로 한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시간이 지나니 원망으로 바뀌더라. 그가 뛰어든 게 왜 하필 내 열차였나 원망스러웠다. 현재 심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사건에 대해 심적으로 치료되고 견뎌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덮으려고만 한 것 같다.
홍진표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曰 119구급대원, 경찰관, 철도역무원 등 자살을 목격하거나 현장을 처리해야 하는 이들은 3~4배 증가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수치를 보인다. 자살 현장이 반복적으로 떠올라 수면장애를 겪을 뿐 아니라 항상 긴장과 초조, 그런 끔찍한 장면에 또다시 노출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친족 간 동반 자살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동반 자살 중 친족 살해 후 자살은 56%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어느 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나선 아이. 아빠는 무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담당 경찰 曰 먼저 목을 졸라 딸을 살해한 후 산에 올라가 본인도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이를 데리고 하늘나라에 가서 잘살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박종익 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 曰 자식을 살해한 다음 부모가 자살하는 심리에는, 부모인 내가 죽으면 자식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소유 개념이 작용한다. 이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으로, 외국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리다. 정신분석학적으로 공격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대방을 향하면 타살, 본인을 향하면 자살이 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살과 타살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살은 타살과 같은 맥락
무차별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체포 후 인터뷰에서 한 범인은 이렇게 말했다.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고. 또 다른 범인은 자살 시도에 실패한 뒤 살인을 저지르면 사형 당하겠지 하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우스이 마후미 교수 니가타 세이료대학 임상심리학연구과 曰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공통점은 고독감과 절망감이다. 그들은 대개 그 자리에서 체포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도망칠 마음이 전혀 없다. 자신의 삶도 끝내고, 동시에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 세상 전체를 끝내고 싶어한다.
보통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소중히 여긴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굉장히 아끼는 나무 블록을 쌓고 있던 중 누군가 그 블록을 망가뜨렸다고 가정해 보자. 망가진 블록을 보고 극심한 슬픔과 고통을 느낀 아이는 망가진 부분을 고쳐 쌓는 게 아니라, 스스로 블록을 몽땅 부숴버린다.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으면 주변을 향해 블록을 던지기 시작한다. 자살은 자신의 블록을 부수는 행동, 살인은 주변을 향해 블록을 던지는 행동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누구든 상관없이 마구 던지는 것이 무차별 살인이다.
고위험군 관리
사회복지사 曰 일반 사회복지사들도 자살 고위험군의 고통을 나누고 도움을 드리긴 하지만, 보다 더 수련을 쌓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 구조상 대부분의 복지관에서는 TO, 보조금, 인건비 등의 문제로 정신보건 사회복지사를 고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박형민 유서분석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曰 유서란 죽음을 결심 선택한 이들이 사회에 보내는 마지막 소통의 몸부림이자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라 생각한다.
온 국민에게 최선의 선택지만 줄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유서를 읽으며 생각한다.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 그 다음 차선의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선택지가 그들에게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들은 죽음보다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거다. 바로 그 지점이 사회와 국가가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점이다.
하규섭 원장 국립서울병원 曰 심각하게 자살을 고려하고 있는 고위험군을 빨리 발견해 예방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미리 검진을 하듯이, 자살을 막기 위해서도 고위험군을 잘 관리해야 한다.
※ 절망 사회의 역습 | 2012-02-26 | PD수첩 Link
대한민국 그림자 MONZAQ
'대한민국 그림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웬만한 전과자보다도 더 죄인 취급 당하는 병역거부자들, 한 해 700명 이상 (5) | 2013.03.06 |
---|---|
국민의 뇌를 좀먹는 스포츠토토, 사행산업 뒤에 숨은 정부의 꼼수 (0) | 2013.03.06 |
평당 타워펠리스보다 비싸지만 감옥에도 있다는 창문조차 없는 집 (0) | 2013.02.28 |
싹 다 쓸어버리고 싶은 퇴폐, 불쾌, 반복 광고 (0) | 2013.02.26 |
연쇄살인보다 슬픈 연쇄자살,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0) | 2013.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