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도 간다

 

법은 '뒷북'이 특기다

 

법은 바르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사회란 여러 '사람들'로 맺어진 관계다. 결국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조절(민법)하고, 잘잘못을 가리는 기준(형법)''인 것이다. 그런데 법은 너무 멀리 있어서, 일반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가 많다. 당최 도움이 안된다. '몰라서'라기보다는 '오래 걸려서'.

 

귀주는 이장과의 앙금을 풀었다. 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치르는 축하 잔치. 그 자리엔 이장도 오기로 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한 경찰이 찾아와 소식을 전한다. 한 달 전 찍은 엑스레이 사진으로 갈비뼈 골절이 확인되어, 이장에 대한 구속 결정이 내려졌다는 거다. 귀주는 내쳐 달린다. 그들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어이가 없다. 그렇게 법에 호소할 땐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때 아닌 개입으로 일을 망쳐 놓는다. 늦어도 너무 늦다. 진짜 도움 안된다. 그들은 이장을 끌고 갔다. 잔치는 망쳤다.

 

먹고살기 바쁜 요즘, '정의'를 챙기며 살기란 참 어렵다. 시비를 가리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한 이치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구속력 있는 법을 통한 정의 실현은 '생활'을 포기해야만 가능하다. 말린 고추를 내다 판 값으로 진정서를 의뢰하고, 북경의 변호사를 만나는 귀주. 당연히 받아야 할 노동의 대가, 업주가 가로챈 임금을 받아 내는 데만도 번거로운 절차를 따르느라 시간과 노력을 적잖이 들여야 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네 이웃에게 법을 가르쳐라

 

귀주처럼, 다소 사소한 피해나 적은 금액을 두고 법의 규정을 따르려는 건 '미련하고 멍청한 짓'으로 치부돼 버린다. 중요한 가치를 오로지 ''에 두고 있어서다. 반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든 법정 싸움이 계속돼도 큰 금액이 걸려 있는 경우에는 모든 걸 걸고 재판에 매달려야 '정상'이다. 유산을 둘러싼 동기간 분쟁 장면이 눈에 선하다. 민사 재판의 경우, 큰 돈이 걸려 있지 않은 건수가 과연 얼마나 될지 정말 궁금하다.

 

사법 관련 문제를 논하자면, 1365일 밤을 새도 부족하다. <귀주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핵심은, 피해의 규모와는 별개로 '정의'를 위해 각자가 '행정절차상의 번거로움을 조금씩은 감수하자'는 거다. 제도적인 개선안이 마련되기까지는 그래야 한다. 1년치든 하루치든 아르바이트비는 일한 만큼 지급돼야 한다. 단돈 얼마가 내 손에 들어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업주의 부당성 문제다. 언론은 '임금 체불 사례 통계 작업'으로 분주하다. 명심하자. 언론의 통계보다 위협적인 건 '피해자의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고발 정신'이다. 임금 체불? 꿈도 못 꾸게 만들어 주자!

 

쿨한 척하다 나라 망친다

 

'빈부 격차'는 정의 실현의 또다른 걸림돌이다. '묻지마 범죄'. 소외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우발적으로, 실은 절대로 우발적이지 않지만, 저지르는 폭행죄를 말한다. 바른 소리를 내뱉는 건 '가벼운 묻지마 범죄' 취급을 받는다. 일종의 히스테리쯤으로 여긴다. 예민하고 옹졸해서, 욕구 불만을 사소한 일에 터뜨린다는 편견이다. 감정노동자들이 고객의 입장에 놓였을 때 쓸데없는 꼬투리를 잡아 상대를 다그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문제는 이에 대한 경계심으로, '쓸데없이 쿨한 척'하는 데 있다. 가진 것이 없을수록 사소한 데 목숨 건다는 둥,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 잡는다는 둥,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너도 나도 쿨한 척, 여유로운 척, 상관없는 척들을 하고 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게 우선인데도,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를 버린다. 객관적인 잣대로 시비를 가리고 사소하더라도 그 죄를 묻는 건, '찌질'한 게 아니라 '용감'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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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 야기> 3-1 예모 토리 Link

<귀주 야기> 3-2 말고 Link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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