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벨레>(2008)

 

감독 데니스 간젤

 

'디 벨레''The Wave(물결, 흐름, 파장)'의 뜻을 지닌 독일어 'Die Welle'를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쓴 것이다. 독일의 영화 감독 데니스 간젤(Dennis Gansel, 1973)의 대표작이다. 간젤은 감독 겸 작가다. 작은 역할이지만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그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건 17살 때. <디 벨레>를 비롯한 <나폴라>(2004), <위 아 더 나잇>(2010)의 작가 및 감독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전쟁,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에 스릴러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 능력이 돋보인다.

 

줄거리

 

고등학교 교사 라이너 벵어(위르겐 포겔 분)는 일주일 간 진행하는 기획 수업의 주제로 원하던 '무정부주의' 대신 '독재정치'를 맡게 된다. 경력에서 밀린 탓이다. 월요일 첫 시간. 각자가 선택한 수업이지만 학생들의 태도도 적극적이진 않다. 학생들은 독재를 막연히 부정적인 것, 히틀러의 잘못, 지나간 과거쯤으로만 여기고 있다.

 

벵어는 학생들이 한 주간 독재정치의 속성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수업을 진행하기로 한다. 의견을 모아 자신을 대표 인물로 정하고, 호칭을 비롯한 발표 규칙을 세운다. '디 벨레'로 이름 붙인 독재정치 반 아이들은 대표자, 로고, 유니폼, 인사법 등 독재정권으로서의 특징을 하나씩 갖출수록 점점 자부심과 결속력을 굳혀 간다. 5일 만에 교사이자 대표자인 벵어를 비롯한 디 벨레의 멤버, 독재정치 반 학생들은 일종의 독재정권을 형성한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에 위험 수위를 직감한 벵어는 토요일에 학생들을 강당으로 불러 모은다. 나치의 잘못일 뿐 독일에서 독재란 다시 없을 거란 처음 생각과 달리, 단 일주일 만에 탄생한 폭력적인 신()독재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한다. 비극적이게도, 유난히도 열성적이었던 팀 슈돌티(제이콥 마쉔즈 분)는 디 벨레의 종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독재에 대하여

 

자유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지금, 독재란 먼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긴 하지만, 나치정권 역시 고약한 개인의 범죄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인 관심이 '독재의 특성'보다 '개인의 악명'에 집중되어 왔기 때문이다. 영화 <디 벨레>는 이 같은 배경에 주목한다. 극악무도한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재가 지닌 매력에 의해, 언제든 독재정권이 다시 도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아울러 다수가 그 매력에 홀린 사이, 해당 집단이 얼마나 끔찍한 결말로 치닫는가를 새삼 경고한다.

 

독재의 매력

 

독재에 관한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30여 명의 고등학생들과 교사 벵어. 벵어는 아이들에게 독재를 실감나게 가르쳐 보고자 수업 방식을 독재식으로 이끈다. 개중에 반발심을 갖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색다른 분위기에 호기심을 보인다. 자유민주주의의 역기능에 회의를 느끼던 아이들. 독재의 매력은 이를 타개하는 묘안처럼 보인다.

 

이름과 로고

중간에 수강 신청 변경을 한 아이들로 북적이는 교실. 이 반의 이름을 정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비전 클럽, 쓰나미, 기본, 중심 등 다양한 의견 가운데 다수결에 의해 '디 벨레'가 선정된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한 학생에게 벵어는 디 벨레의 로고를 부탁한다. 학생들은 기대에 부푼다. 문신, 엽서, 홈페이지 등 로고를 활용해 디 벨레만의 무언가를 추가적으로 만들어 내자는 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엄격한 규율

권력을 만드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규율. 대표자로 정해진 벵어 선생은 또렷한 말투와 바른 자세, 격에 맞는 호칭을 그들 집단의 규율로 삼는다. 아이들은 전에 없던 에너지가 발산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방만한 자유가 낳은 일탈과 나태를 직·간적접적으로 경험해 온 아이들은 엄격한 규율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드레스 코드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흰색 셔츠와 청바지. 그들의 유니폼이 결정된다. 가시적인 빈부 격차를 해소하자는 데서 모아진 의견이다. 같은 옷을 입는다는 건 평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라는 집단의식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각자 자유복을 입었을 때와는 달리, 같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위기에 몰린 상황을 목격하면 그냥 두고보지 않는다. '' 또는 '우리'가 궁지에 몰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맞춰 입은 이후, 학생들은 서로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점차 결속력을 다진다.

 

일심동체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팀(프레드릭 라우 분). 그는 험악한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이용 당하는 약자 신세다. 디 벨레는 그런 팀의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면 디 벨레 멤버들이 나타나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 준다. 대표 인물인 벵어 선생은 집단을 유지키시는 원동력으로 '자부심'을 강조한다. 팀은 디 벨레 결성 이후 활력을 되찾은 듯 만사에 넘치는 의욕을 보인다.

 

모임

디 벨레는 그들만의 파티, 축제 등의 모임을 갖는다. 멤버와 복장을 점검하고, 입장을 철저히 제한한다. 일종의 특권의식으로 굳어지기 시작한다. 원하면 누구든 참석할 수 있도록 입구에서 흰 셔츠를 제공한다. 통일된 차림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고 해도 디 벨레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벵어가 코치를 맡고 있는 교내 수구팀 경기장에도 유니폼을 갖춰 입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액션

'물결'을 뜻하는 이름과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로고. 아이들은 여기에 걸맞는 액션을 추가한다. '디 벨레만의 인사법'이다. 차별화된 제스처는 디 벨레 멤버들 사이에 일종의 암호처럼 퍼진다. 그들만의 약속이 추가될수록 주변의 이목이 집중된다. 독재 수업을 듣는 학생 이외에도 학년을 불문하고 많은 학생들이 디 벨레의 멤버를 자처하고, 그들의 의식을 따른다.

 

독재의 폐해

 

30명 남짓의 독재 과목 반 아이들로 출발한 디 벨레의 인원 수는 점차 불어난다. 원하는 아이들에 한해 입회를 허가하면서,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디 벨레로 똘똘 뭉친다. 반면, 함께 수업을 듣다가 디 벨레를 벗어난 이들도 있다. 카라와 마르크는 교내 커플이다. 둘 사이의 골은 디 벨레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더욱 깊어진다. 마르크는 여전히 그 멤버지만, 카라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독창성 무시

발단은 유니폼을 정하면서부터다. 인기도 많고 성적도 뛰어난 카라. 그녀는 연극에서도 주인공을 맡을 만큼 아이들에게 주목 받던 학생이다. '흰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기로 약속한 바로 다음날, 카라는 가지고 있는 셔츠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소대로 자유롭게 '원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 아이들에게 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도발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대표자도 카라의 의견을 등한시한다. 단지 복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을 이방인 취급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카라는 선동적인 디 벨레의 폐해를 알리는 데 앞장선다.

 

왜곡된 결속력

팀은 자존감을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디 벨레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오히려 남아 있던 자존감 마저 모두 잃었다. '자존감'이란 '스스로를 존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팀은 약자라는 꼬리표를 떼 준 디 벨레를 무기로, 지금껏 숨겨 왔던 폭력성을 과도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위험한 일을 자처함으로써 디 벨레 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허망한 목표밖에 보지 못했던 것이다.

 

토요일 오후, 일주일간의 프로젝트 수업을 마치고 강당에 모인 디 벨레. 벵어가 디 벨레의 해산을 지시하자 팀은 극도로 흥분하며 총을 꺼내든다. '디 벨레는 곧 자신의 인생'이라며 벵어와 학생들을 위협하는 팀. 디 벨레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위기 의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한 학생에게 총상을 입히고 자결하는 비극이 이어진다.

 

미성숙한 어른들이 부른 아이들의 비극

 

비극

영화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디 벨레의 독재가 무르익는다. 위태롭던 상황은 금요일 수업 이후 수구 경기에서 절정에 달한다. 금요일 밤, 벵어는 디 벨레의 해산을 결심한다. 다음날, 아이들은 이미 벵어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다. 예상치 못한 한 멤버의 돌발 행동으로 부상과 사망 사건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절정

흐름상으로는 경기장의 초토화, 강당 무대 위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이 위기와 절정에 해당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직전, 즉 금요일 수업 시간이 가장 가슴 조린 순간이다.

 

프로젝트 수업 첫 시간, 아이들에게 독재의 특수성을 실감나고도 재미나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한 벵어. 실제 독재정권 못지 않게 점점 극단적으로 치닫는 아이들의 양상을 지켜보면서, 마지막 시간에는 독재의 폐해를 논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줄 거라고 벵어에 대한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벵어는 수업 마지막 날에도 디 벨레를 유지했다. 안타깝지만 기대와는 다른 결말이었다. 가외 시간에 따로 아이들을 강당으로 불러 모으긴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책임

고의는 아니지만, 그는 절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마지막 시간을 비워두고 독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 주려는 계획. 벵어에겐 애초부터 그런 계획이 없었다. 독재의 성격을 경험하게 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그 폐해를 모두가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걸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다면?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벵어는 디 벨레의 대표자로서, 그 영향력과 권력을 내심 즐기고 있었다. 아내 및 다른 교사들에 대해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벵어. 그는 독재자의 쾌감에 도취되어 비극에 대한 예고를 감지하기 못했다.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우리 어른들에게는 막중한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 부모와 교사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디 벨레>'독재'에 관한 영화인 동시에, '어른들의 책임감'을 환기시키는 영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검증된 교육, 진심 어린 교육을 시행해야만 한다.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부주의한 어른은 없느니만 못하다.

 

Wickipedia [데니스 간젤] Link

 


더 웨이브

The Wave 
9.2
감독
데니스 간젤
출연
위르겐 포겔, 프레데릭 로, 막스 리멜트, 제니퍼 울리히, 크리스티아네 파울
정보
드라마, 스릴러 | 독일 | 107 분 | -
글쓴이 평점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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