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주인공처럼

 

'중졸'인 귀주도 '정의'를 안다

 

귀주는 자기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답답하리만치 묵묵하고 완고하게 밀고 나간다. 정작 폭행을 당한 남편마저도 그녀를 만류하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는 건 달랑 '진심 어린 사과'가 전부다. 그것만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사과'를 받아내는 게 의외로 만만치가 않다. 공권력은 금전적인 보상을 거론한다. 귀주는 돈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귀주 이야기>는 한마디로 '뚝심 있는' 영화다. 주인공도, 스토리도, 뚝심 있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웅장하고 자극적인 상업영화에 길들여진 탓에, 뚝심 있는 <귀주 이야기>는 다분히 지지부진하게 느껴진다. 얼핏 '심심한 영화'처럼 보인다. 자식이 죽거나, 남편이 실종되거나, 부모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거나, 하는 등의 극적인 갈등 요소 또는 혹독한 사건이 전혀 없다. 이장의 폭행으로 남편이 상해를 입긴 하지만, 입원할 정도도,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도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을, 그저 그런 수준이다.  

 

익숙하면서도 재미를 더하는 극단적인 사건들. 이는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관객은 '저런 상황에서라면 충분히 이성을 잃고 복수심에 이를 갈 법도 하다'며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가 끝나는 동시에 정의감도 사라져 버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들 냉정을 되찾는다. 5분 전까지만 해도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 바쳐 싸울 기세더니, 웬만한 부조리는 못 본 척 넘기는 게 상책인 양 돌변한다.

 

<귀주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마땅한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끈질기게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

 

권리와 의무 중 하나만 있다면, 뒷면 없는 동전이니 개나 줘 버려라

 

귀주의 남편을 폭행한 가해자가 마을 '이장'이라는 건 관료 또는 기득권층의 허식을 지적하고자 한 설정이다. 귀주는 내내 '이장이라고 해도 사람을 폭행할 권리는 없다'고 강조한다. '이장이든 누구든 사람을 때렸으면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이장도 어느 정도 본인의 잘못을 알고 있다. 관련 규정 문건을 보여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자, 아들이 없다는 얘기를 들먹이며 먼저 이장을 인신공격한 남편. 이장은 그런 그에게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사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귀주 남편의 조롱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더 철저하게 위신을 세우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귀주와 아기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사람들의 요청에 이장은 못 이기는 척 그녀를 돕기 위해 적극 나선다. 다행히 위기를 넘겨 산모와 아기 모두 안정을 되찾는다. 남편과 이장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시장에서 국수 한 사발을 든다. 이장은 자기가 산모를 병원에 데려다 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며 너스레를 떤다. 누가 뭐래도, 그는 사적인 감정을 공적 업무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보상액도 마다하고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하는 귀주일지언정, 마을의 일이라면 이장으로서 마땅히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장은 끝내 폭행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귀주는 이장의 사과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란 생각에 마음을 연다. 그녀가 굳이 사과를 원했던 건, 이장의 폭행을 '권력의 남용'으로 봤기 때문이다. 귀주의 생각이 맞았다면, 이장은 권위를 이용해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장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거나 앙갚음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권리와 의무를 함께 실천'한 이장의 행동이 그녀의 마음을 녹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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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 야기> 3-3 무지, 식, 이다 Link

<귀주 야기> 3-1 예모 토리 Link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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