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트 어웨이> 3-3 동반자의 조건

동반자

 

없으면 직접 만든다

 

페덱스 배송품 중 척이 활용한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배구공이다. 불을 붙이려다 손을 다친 척이 흰 배구공을 집어던진다. 냉정을 되찾자 빨갛게 손 모양이 찍힌 공이 눈에 들어온다. 장난 삼아 손바닥 부분에 눈코입을 그리고 보니, 꼭 사람의 얼굴 같다. 공에는 브랜드명인지 상품명인지, 윌슨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이제부터 요놈은 척의 친구, 윌슨이다.

 

그동안은 고작해야 중얼거릴 뿐, 말이란 걸 할 일이 없었다.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구조는 차후 문제다. 척은 섬에서의 생존을 위해 친구를 만들었다. 켈리에 대한 이야기부터 살아 돌아갈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 척은 윌슨과 모든 걸 함께 한다. 누군가 섬 안에 같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척은 점점 희망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무인도 탈출을 준비한다. 인간이란 자고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다.

 

척에게 희망을 되찾아 준 윌슨. 윌슨은 일개 배구공이 아니다. 척을 살게 한 버팀목이자 동반자다. 척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뗏목을 타고 무인도를 떠나 바다로 향하던 중, 척이 잠든 사이 윌슨은 뗏목에서 떨어지고 만다. 멀어지는 윌슨을 뒤늦게 발견한 척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다. 위험을 무릅쓰고 헤엄쳐 보지만, 파도 탓에 결국 둘은 운명이 엇갈린다. 윌슨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서럽게 울어 대는 척. 이 장면이 우스워 보였다면, 작품 감상의 기본인 '감정 이입'에 실패한 것이다.

 

친구는 활력소다

 

가상의 대화 상대를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는 척을 보면서, 그의 심리 유형이 외향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향적인 나라면, 일기를 쓰는 등의 방식을 택했을지 모른다. 혼자 생각하고 말하는 타입인 내향과, 말하면서 생각하는 외향의 차이가 윌슨을 만들어 낸 동기일 수 있다. 외향적 성향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활력을 얻는 유형이다. 척 역할을 맡은 톰 행크스의 심리 유형을 찾아보니 역시나 외향, ENTP다.

 

4년 뒤, 무인도 탈출을 준비하면서 척과 윌슨은 1년 전 자살 시험 기억을 떠올린다. 둘은 더욱 밀접해졌다. 대화는 정말 리얼하고 진지하다. 척 혼자 중얼거리는 수준이 아니다. 윌슨은 척이 잘못하면 쓴소리로, 잘하면 칭찬으로 반응한다. 소꿉장난 내지는 인형놀이 모양새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INTJ)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INTJ)가 생각 난다.

 

대화 중 감정이 격해진 척은 윌슨에게 닥치라며 발로 차 버린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천둥 소리도 들린다. 이내 윌슨이 걱정된다. 울며불며 윌슨을 찾아나선다. 다시 데려온 윌슨의 얼굴이 희미해져 있다. 핏자국이 씻긴 것이다. 척은 일부러 손에 상처를 내 윌슨의 얼굴을 선명하게 매만진다. 화를 내서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능글맞게 한마디 던진다. "I know you. (니 얼굴쯤은 분명히 알고 있다구!)"

 

동반자 간에는 조건이 필요 없다

 

윌슨은 척에게만큼은 함께 고생한 둘도 없는 동지이자 고마운 친구다. 심적으로 위안이 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체는 그저 공일 뿐이다. 척과 함께 물고기를 잡지도, 대신 불을 피우지도 못한다. 물리적인 도움은 전혀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은 윌슨을 각별하게 생각했다.

 

나와 나의 동반자의 일상을 되돌아볼 때다. 무엇이든 상대가 더 많이 해 주기를 바라고, 내 뜻대로 움직여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평생의 동반자가 될 배우자를 결정할 때도 이렇게 생각해 보면 판단이 쉽다. 상대의 존재 자체가 고맙고 기쁜지, '내가 원하기 때문에 바꾼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은 건지, 상대에게 바라는 거라곤 '그냥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 달라는 것'뿐인지.

 

무인도 탈출에 성공한 척은 4년이라는 시간이 켈리와 자신을 갈라놓을 수밖에 없었음을 받아들인다. 인정은 하지만, 그녀의 인생을 존중도 하지만, 켈리와의 이별은 가슴 아픈 일이다. 속상하다. 하지만 척은 끝으로 이렇게 덧붙인다. "4년 동안 그 섬에서 켈리가 나와 함께 있어 줘서 참 좋았어."

 

자발적인 책임 의식이 목숨을 구한다

 

윌슨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갈 동지이자,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었다. 바다로 나간 뒤, 파도와 호우에 시달리면서 뗏목도 점점 망가지고 지붕도 바람에 날라가 버린다. 척과 윌슨도 많이 지쳤다. 결국 윌슨이 뗏목에서 떨어져 파도에 휩쓸릴 때 척은 윌슨을 구하려 발버둥쳐 보지만, 허사다. 윌슨과 헤어지자 척은 노를 바다에 흘려 보낸다. 동반자에 대한 책임감이 사라지면서 희망도 함께 사그라든 것이다. 때로는 '책임감'이 단순한 부담이 아닌, '삶의 의욕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윌슨 외에도 생존의 희망을 부추긴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섬에 밀려 온 배송 박스는 총 여섯 개다. 척은 다섯 박스를 풀어 보고는 마지막 상자를 뜯기 전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 개봉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둔다. 영화 끄트머리에, 그 마지막 상자는 주인에게 무사히 전달된다. 척은 주소지를 직접 찾아간다. 집에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척은 쪽지를 남긴다. '이 소포가 나를 살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척 놀랜드' 적어도 하나만큼은 배송 임무를 완수할 생각이었던 거다. 그 임무에 대한 '책임감'은 척이 '살아 돌아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자발적인 책임 의식이 스스로에게 힘을 북돋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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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스트 어웨이> 3-1 모험보다는 휴먼, 심리에 가까운 ^Link

※ <캐스트 어웨이> 3-2 시간과 인간, 그리고 자연에 관한 메시지 ^Link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