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증오하는 아이들
증오는 사람의 에너지를 바닥낸다.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한 피해자는 증오심 때문에 괴롭다. '한'이 많아 '낙'을 들일 공간이 없다. 지민은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의 피가 자신의 몸에 흐른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피를 싹 다 뽑아 갈아치우고 싶다. 신장이 고장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혜 역시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던 엄마. 둘은 오래 전 이혼했다. 그래서 다혜는 지민의 아픔이 더욱 안타깝다. 부모에 대한 분노로 인생을 망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다혜는 짧게 조언한다. "네 인생의 중심에 아버지를 두진 마."
존속살인
"아동 학대 피해자가 복수를 하면 노인 학대죄가 되는구나. 부모가 딸을 패다가 죽이면 '과실치사'라서 살인죄보다 가볍대. 근데 딸이 자기를 맨날 패던 부모를 죽이면, 이건 뭘까?"
"몰라. 그딴 거 관심 없어. 세상에 부모 자식을 누가 죽인다구."
"언니는 뉴스도 안 봐?"
"그건 어쩌다가 정말 아주 나쁜 사람들이나 그러는 거지. 정신이 이상한."
"덕망 높은 판사님은 절대 그럴 리 없다구? 잘 배운 부모는 좋은 부모고, 나쁜 부모는 다 가난한 무지렁이야?"
존속살인은 뉴스에나 소개되는 딴 세상 얘기 같다. 실제로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은 극히 소수다. 하지만 그 위험성은 앞집, 옆집, 우리집에도 도사리고 있다. 부모의 심장에 칼을 꽂는 상상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생각만큼 드물까? 정신이상자의 도발로만 봐도 무방한 수준일까? 지민의 아빠는 판사다. 근엄하고 신중할 것 같지만, '걸핏하면 딸을 패는 판사 아빠'다. 지민은 때리는 아빠도, 맞을 짓을 했다는 엄마, 오빠도 너무 밉다. 사고 전 엄마를 칼로 찔렀다는 소년범. 지민은 소년범을 이해할 수 있다. 지민 역시 죽이고 싶을 만큼 아빠가 미우니까.
타살
별 희귀한 뉴스가 미디어를 들쑤셔도, '존속살인'은 당연히 남의 얘기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살인은 용납될 수 없지만, 살인과 같은 엄청난 죄를 범한 근본적 원인은 찾아볼 필요가 있다. 소년범의 범죄 전력을 들은 지민은 그의 살인은 부모 탓이라고 말한다. 부모 죽이는 게 다른 사람 죽이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라고. 소년범은 엄마를 죽이는 데 실패해 상우와 또래 친구를 살해했을 거라고. 자기도 아빠를 죽이고 싶지만 아직 못 죽였다고.
자살
다혜는 지민의 말에 가슴이 철렁하다. 보통 말, 생각뿐이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는다며 극단적으로 치닫는 지민을 달랜다. 픽션, 논픽션 할 것 없이 범죄, 스릴러가 아무리 판을 쳐도 '살인' 역시 남의 얘기다. 그래서 무시무시하게 치솟은 수치가 바로 자살률이다. 부모도, 남도 해칠 수 없어 자신을 해치는 끔찍한 일이 갈수록 늘고 있다. 현재는 33분에 한 명 꼴이다.
꼭 목숨을 끊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신 난 나를 죽이고 있다'고 말하는 지민. 목숨과 몸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지민은 자기 인생을 팽개치고 있다. 때릴 걸 알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더 심하게 반항하고, 맞아서 푹 꺼진 한쪽 머리를 희화하한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다혜 역시 사고 이후 1년 사이에만 벌써 두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접근
누구보다 아빠를 이해하고 싶은 건 지민 본인이다. 신장 이상으로 아빠의 신장을 이식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지민은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한다. 친부모가 아니라면 때리는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다. 결과를 내보이자 돌아오는 건 역시 구타다. 허구한 날 자식을 때리는 아빠. 맞을 짓을 했다며 절대 편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 지민은 진심으로 궁금하다. 친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에게 그토록 폭력을 휘두르는지.
부모는 기가 막히다. 여태껏 먹이고 입힌 딸이 가출했다 돌아와서는 유전자 검사 확인서를 들이민다. 잘되라고 훈육한 것뿐인데, 부모를 우습게 여기고 있다. 지민은 진심을 전하는 데 실패했다. 지민의 부모도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 없이, 더 심한 폭력으로 대응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미성숙한 어른과 그 어른을 보고 자란 아이들의 비극이다.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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